권력의 심장부에서 권력을 향해 쏘다
권력의 심장부에서 권력을 향해 쏘다
  • 백영주
  • 승인 2023.02.13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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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1808년 5월 3일’,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 ‘게르니카’
고야 作, ‘1808년 5월3일’.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5월은 전 세계적으로 각종 행사, 기념일 등이 많은 축제의 달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등 챙겨야 할 날이 많아 정신없다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그 많고 많은 날들 중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면 뜻 깊게 생각해야 할 날이 있으니, 군화에 짓밟히면서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꽃피웠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던 5월18일이다.

그렇다면 1808년 5월3일의 스페인은 어땠을까, 조국을 침략한 프랑스군에 맞섰던 시민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현장을, 고야는 그림으로 남겼다.

왕의 측근이었으면서도 초상화로 우둔한 왕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고야가 그림 속 시대정신을 절정으로 드러낸 작품이 바로 ‘1808년 5월3일’이다.

프랑스 군대는 1808년 스페인을 침공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해 나폴레옹의 형이 스페인의 왕위에 올랐다. 영국군이 개입해 다시 페르난도 7세가 왕위에 오르는 1814년까지 스페인 전역에서는 반도전쟁이라 불리는 대 프랑스 전쟁이 발발했다.

미구엘 감보리노의 판화 구도를 차용한 ‘1808년 5월3일’은 프랑스 군이 스페인 시민들이 일으킨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처참히 학살한, 인간의 폭력성이 날것 그대로 표출된 이 사건을 토대로 그린 것이다.

고야는 ‘유럽의 폭군에 맞선 우리의 숭고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그림으로 그려 영원히 남기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 그림에 열정을 듬뿍 담았다. 이런 영웅적인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중앙의 남자를 흰 셔츠에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형상을 모티브로 그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마네 作,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이 작품은 이후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고야가 프랑스군의 무자비함과 스페인 국민의 당당한 저항을 그린 지 약 50년 후 프랑스인인 마네가 이번에는 프랑스인인 막시밀리안 황제가 멕시코 정부에 의해 총살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과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고 매우 간결하게 황제의 최후를 묘사하였다. 이 때문에 그림을 보는 관람자는 오히려 더 섬뜩함을 느낀다. 유일하게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총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화면 왼쪽의 사수에게는 어떠한 긴장감이나 죄책감도 찾을 수 없다. 그림이 전달하고 있는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비인간성이 도리어 휴머니즘을 불러일으킨다.

피카소 作, ‘게르니카’.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로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킨 대작으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독일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피카소는 이 비보를 접하고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을 지었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 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시·공간이 다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고야는 이 존엄성이 철저히 무시된 1808년의 학살 현장을 그림으로 남기며 후손들에게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역사가 반복돼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게르니카’를 낳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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