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유머에서 다다이즘의 선두로 발돋움하다
유치한 유머에서 다다이즘의 선두로 발돋움하다
  • 백영주
  • 승인 2023.03.13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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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마르셀 뒤샹
뒤샹 作, ‘샘’, 1917.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덩그러니 놓인 변기 앞에서 당시의 비평가들은 비난을 퍼붓는 것 이외에 어떤 것을 할 수 있었을까, 뒤샹의 ‘샘’처럼 ‘유치한 유머’라는 혹평을 받았던 미술품도 드물다.

하지만 ‘샘’은 아이디어의 승리와 다다이즘의 시작으로 후세에 전달됐으며, 그 자체로 미술의 혁신을 이뤘다.

한 화가가 뉴욕의 철물점에서 평범한 소변기를 구입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입체주의 화가였던 뒤샹은 1913년경부터 회화를 단념하고 레디메이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뒤샹은 R.Mutt라는 가명으로 서명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레디메이드를 미국독립미술가협회의 연례전시회에 제출했다.

뒤샹은 ‘리처드 뮤트’라는 가명으로 비밀리에 협회를 가입했고, 모든 회원은 전시회에 출품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협회는 표절과 상스러움을 이유로 ‘샘’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이 추한 물건은 작가가 아닌 배관공의 작품이었다. 뒤샹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행동으로 현대미술의 권위를 부정했다.

뒤샹 作, ‘자전거 바퀴’, 1913.
뒤샹 作, ‘자전거 바퀴’, 1913.

평범한 화가로 출발한 뒤샹은 1913년에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그리고 저속도 촬영사진에 영향을 받아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선보였다. 이후 뒤샹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추상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입각해 레디메이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량으로 생산된 일상용품을 선택하고 그것을 미술품으로 정의하면서 아름다움, 독창성 등을 지닌 전통 미술에 도전했다. 다다이스트들은 부르주아들만이 향유하는 엘리트 문화로써의 예술을 무너뜨리려 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사물들을 미술관, 박물관 속으로 집어넣어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들의 작전은 ‘샘’, ‘자전거 바퀴’ 등의 레디메이드 작품에서 비롯됐다.

뒤샹의 파격적인 시도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고 있다.

뒤샹은 피카소와 함께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샘’은 지난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달러에 낙찰됐다. 뒤샹의 작품 중 최고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엄밀히 말해 ‘샘’을 제작한 사람은 배관공이다. 하지만 평범한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예술로 승화시킨 것은 뒤샹이다.

이게 바로 개념예술이다. 기술적 요소는 작가의 발상을 전달할 때 필요한 요소일 뿐, 중요한 것은 작가의 사상이나 생각을 전달함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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