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그리고 아름다운 연인
태초의, 그리고 아름다운 연인
  • 백영주
  • 승인 2023.04.29 2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뒤러 作 ‘아담과 이브’
뒤러 作, ‘아담과 이브’, 1507.

[대전=뉴스봄] 벡영주 갤러리봄 대표 = 인류 최초의 연인은 누구일까? 기독교적 입장에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아담과 이브를 들 수 있다. 하지만 태초의 인간인 동시에, 어리석음으로 신의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 인류에게 고통을 줬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게 태반이다. 하지만 뒤러의 그림 속에서 이들은 부드럽고 밝은 분위기의 남녀로만 보일 뿐이다.

뒤러가 두 번째로 이탈리아를 방문한 직후 완성한 이 ‘아담과 이브’는 에스파냐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그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이브가 뱀, 즉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禁斷)의 과실을 따먹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으로, 누구의 의뢰로 그려진 작품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세기 독일미술에는 아담과 이브를 그린 작품이 거의 없으며, 있다고 해도 종교적 상징에 불과했는데 뒤러는 이를 대형 화면에 유화로, 등신을 정확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된다.

아담과 이브의 시선은 서로 상대편을 향해 있지만 두 사람은 각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데, 이 어둠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인체의 모습은 아름답게 형상화돼 있다. 아담은 금단의 과실이 달린 나뭇잎을 들고 자신의 앞을 가리고 있으며, 이브는 한 손에는 금단의 과실을 잡고 있고 다른 손에는 화가의 서명판을 쥐고 있다. 이 서명판은 1504년에 그린 판화이자 또 다른 ‘아담과 이브’의 생명의 나무에도 걸려 있다.

뒤러 作, ‘아담과 이브’, 1504.

지금은 화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판매나 유통에도 관여하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뒤러처럼 자신을 작품 안에서까지 적극적으로 드러낸 화가는 흔치 않았다. 이런 점으로 미뤄 볼 때 뒤러는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던 화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504년과 1507년의 ‘아담과 이브’는 아담과 이브를 그린 많은 그림 중 그 묘사와 인문학적 깊이로 손꼽히는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500년 전의 판화와 유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이 작품의 비밀은 수학에 있다. 뒤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가장 이상적인 인체 탐구에 매료되었으며 수학적 측정을 통해 최고의 비례를 정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그림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같은 독일 화가인 한스 발동 그린이 1524년에 그린 ‘아담과 이브’는 뒤러가 그린 것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왠지 아담과 이브보다는 신화 속에 나오는 제우스나 비너스와 같은 웅장한 느낌이 든다. 늘씬한 팔등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일반적인 종교화와는 달리 생생한 건강미를 느껴질뿐더러,

1531년의 아담과 이브에게는 에로틱함까지 느껴진다. 점점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보인다.

다시 뒤러의 그림으로 넘어와서, 1504년의 빽빽한 배경과는 달리 1507년의 아담과 이브는 오로지 그 두 사람이 그림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어 더더욱 두 연인의 다정하고 위험한 순간이 뇌리에 박힌다.

원죄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이 아닌 밝고 경쾌한 표정, 발걸음 등으로 인간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찬양한 것이 이 그림이 유명한 이유가 아닐까.

한스 발동 그린 作,‘ 아담과 이브’, 1524.
한스 발동 그린 作, ‘아담과 이브’, 153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