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색채 속에 담긴 긍정의 힘
밝은 색채 속에 담긴 긍정의 힘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09.22 2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마티스_달팽이
마티스 作, ‘달팽이’, 1952.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필자가 런던에 갈 때는 항상 비가 내렸다. 운치 있게 느껴졌던 템즈강과 세인트폴 대성당도 비에 젖은 신문지처럼 단조롭게 느껴질 때는 테이트 모던에 들어가곤 했다.

3층 전시관에 가면 런던의 회색빛 하늘과 늘 내리는 듯한 부슬비를 잊게 해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화사하고 쨍한, 태양 빛을 가득 담은 색채. 전시된 마티스의 그림이다.

20세기 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마티스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 거침없는 붓 터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녔다. ‘모자를 쓴 여인’이나 ‘붉은 화실’ 등에서 선보인 원색의 대담한 배치와 보색관계를 절묘하게 살린 기법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그만의 타고난 색채감각이 돋보인다.

마티스는 말년에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고 나서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하지만 질병도 화가의 예술혼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새로운 기법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 그림을 그리는 대신 채색된 종이, 즉 색종이로 형태를 만들어 붙이기 시작한 것. 침대 위에서 붓이 아닌 색종이를 오려 나가며 마티스는 본인의 자유분방한 색채 감각을 다시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추상적이고 소박한 양식의 이 새로운 미술형식을 마티스는 매우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회화나 조각 작품들보다 이 종이 오리기를 통해 훨씬 더 높은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티스는 조수들에게 과슈를 칠한 색종이를 만들게 했다. 까다로운 ‘색채의 마술사’의 주문으로 주황색만 17종이 나왔다고 한다. 마티스는 “가위는 연필보다 한층 감각적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색종이 그림 작업을 계속해 ‘달팽이’처럼 거대한 크기의 작품을 제작했다.

원래 이 작품에는 ‘현실에 뿌리박은 추상적 패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초록·빨강·노랑·파랑·분홍·검정 등의 색으로 달팽이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표현했으며, 색종이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배치돼 달팽이의 껍질을 연상시킨다.

마티스 作, ‘말, 기수, 그리고 광대’, 1947.

1947년에 마티스는 20개의 종이 오리기 작품을 추린 선집에 글을 덧붙여 책을 출판했다. ‘말, 기수, 그리고 광대’, ‘칼을 삼키는 사람’, ‘칼을 던지는 사람’ 등 다수가 서커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라서 처음에는 ‘서커스’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재즈음악의 열광적인 양식으로부터 많은 착상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재즈’로 결정했다.

이 종이 오리지 작품 안에서는 병을 얻은 슬픔, 우울 등의 감정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평화롭고 낙천적인 분위기마저 감돈다.

불우한 처지에 놓였을 때 이를 비관하며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만들어낸 다른 예술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마티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예술을 자기만의 치료법으로 삼아 새로운 예술영역을 창조해 낸 것이다.

위기마저 제2의 도약으로 바꿔낸 긍정적인 마음이야말로 태양을 머금은 듯 눈부신 색채의 비결이 아니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