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리의 월급은 얼마나 됐을까?
조선시대 관리의 월급은 얼마나 됐을까?
  • 구태경 기자
  • 승인 2019.08.0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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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박물관, 8월의 문화재 녹패(祿牌) 전시
대전시립박물관, 8월의 문화재 전시 '송상기의 녹패' 모습.
대전시립박물관, 8월의 문화재 전시 '송상기의 녹패' 모습.

[대전=뉴스봄] 구태경 기자 = 대전시립박물관에서 8월 ‘이달의 문화재’로 조선시대 월급명세서 녹패(祿牌)를 선정해 한 달 동안 전시한다.

녹패란 관리들에게 내린 녹봉 지급 증서로 녹봉(祿俸)은 국가에 대한 봉사의 댓가로 관리에게 지급한 것으로 쌀(米), 포(布), 전(錢)등 현물로 지급됐다.

녹봉에 대해 녹패를 내린 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는데 1036년(정종2)에는 ‘백관(百官)에게 녹패를 사여(賜與)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녹패의 발급은 초기에는 삼사(三司)에서 담당하다가 후에 이조(吏曹)와 병조(兵曹)가 맡았다.

녹패의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법제화됐으며 녹패에는 발급기관, 수령자의 품계와 관직, 이름, 녹과(祿科, 녹봉등급), 발급연도 등이 기록됐다.

녹패에 적힌 녹과를 기준으로 지급증인 녹표(祿標)를 발급받았으며 관원은 이를 가지고 발급기관인 광흥창(廣興倉)에서 녹봉을 받았다.

녹표에는 날짜와 내역, 그리고 입회한 감찰(監察)과 광흥창 관리의 서압(署押)이 있다.

이달의 문화재로 선정된 녹패는 은진송씨 송상기(宋相琦)의 녹패로 송상기는 은진송씨의 대표 인물인 제월당 송규렴(霽月堂 宋奎濂)의 아들로 문장에 능하고 학식이 풍부해 대제학, 대사헌 등 요직을 지내고 이조판서가 된 인물이다.

전시하는 녹패는 1714(강희(康熙) 53) 9월에 발급됐으며 당시 송상기의 품계가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이며 관직은 사헌부대사헌, 홍문관대제학 등을 겸임했음을 알 수 있다.

녹패에 붙여놓은 녹표를 통해 당시 9월 녹봉으로 쌀 1석(石) 13두(斗), 콩 1석 1두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녹봉은 관료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고 조선시대 녹봉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그 시대의 관료제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녹패는 경국대전 등 법전에 실린 녹과의 규정과 실제가 어떠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외에도 형태가 다른 당하관(堂下官)이하 관리의 녹패와 1980년대 월급봉투를 전시해 녹패에 관한 기본상식과 관료와 녹봉제도 변천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며 “또한 지금은 보기 힘든 월급봉투를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로 대전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코너가 마련돼 있으며 자료에 대한 기증기탁, 수집 제보는 상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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