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자아의 몰아(沒我)에 응축된 선비시인의 격조(格調)
[평론] 자아의 몰아(沒我)에 응축된 선비시인의 격조(格調)
  • 류환
  • 승인 2020.05.1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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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우봉(又峰) 임강빈 시인의 시론 (후편)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전편에 이어> 5. 선생과 관련된 시집 ‘바람, 만지작거리다’와 정년퇴임기념문집 ‘채우기와 비우기’를 열어보고 선생의 글에 신뢰성을 잃지 않도록 유념을 기한다.

다만 앞서 그동안 선생을 기록한 몇 편들의 평론과 해설들이 있지만 필자는 가급적 다른 시각에서 논점을 살펴보며 헤아리고자 한다.

이는 무엇보다 그동안 선생이 발표한 시집들을 모두 보관하지 못해 탐독하지 못한 게으른 핑계도 있다는 자각과 궁핍 그리고 궁금했던, 유년기 및 성장기, 가족사, 자녀들이 바라본 부모, 문학관, 인생관 등과 바깥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 등을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생의 장남인 임창우(59, 용남중학교 교사)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뒤 결정한 판단이다.

선생은 1931년 충남 공주군 반포면 봉명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차남으로 태어난다. 아주 어린 시절 기억에도 없는 위에 형님이 사망해 큰아들로 알고 유년기를 보내며 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을 잃는 것은 슬프고 애타는 일로 가슴이 메어지지만 의술이 좋지 않았을 그때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드물지 않게 겪는 일로 종종 부딪치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형의 얼굴과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책자엔 장남으로 성장했다고 기록된 부분도 있지만 이는 무방할 것으로 이해된다. 같이 놀았던 추억이나, 기념사진, 흐릿하게나마 보았던 기억조차 없으니 당연하다. 게다가 “할머니(선생의 모친 정순모鄭順謨)마저 병세가 악화돼 7세에 잃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고 장남 임창우씨는 떠오르는 기억을 술회한다.

선생은 1950년 공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봄 공주사범대학에 입학하지만 6·25사변으로 휴교하고 1951년 5월에 대학에 복교한다.

당시 이재복, 이원구, 교수의 지도로 동인회 시회(詩會)를 창립하며 시작(詩作)에 들다가 김구용, 정한모, 장서언, 김상억 시인 등과 만나 문우의 동기부여를 맺는다.

그러나 당시 “군청 공무원이셨던 할아버지는 새 할머니를 맞았다”고 말하며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의 가정을 “아버지께서 챙기고 꾸려나가는 역할도 책임지는 몫이었다”라며 임창우 장남은 회상한다.

이때는 “가정이 넉넉하면 서울로 올라가서 서울대학교를 다니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은 그나마 지역에 머물며 공부를 했었다”, “당시 아버지의 여러 가지 고민과 곤비했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며 희미한 과거를 떠올린다.

‘오늘의 문학사’ 리헌석 발행인이자 시인, 문학평론가로부터 우봉(又峰) 임 선생의 부친(임영순 任瑛淳) 또한 “대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간 서예계를 오가며 서예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었다”는 전언을 들어 느끼는바 집안 모두가 예인으로 이어지는 일가임을 직감한다.

6. ―장남인 본인(임창우)이 바라본 아버지는 가정에선 어떤 분이었는가?

“사춘기적 학창시절을 회상해보면 가정엔 소홀했던 것 같다. 사소한 문제나 가정사에는 별로 상관을 안 하셨다. 어머니께서 필요하시다 해도 어디에 못 하나 형광등 하나 바꾸지 못하셨다. 그러나 어머니 또한 큰 불평을 하지 않으셨다. 약주를 이따금 드시고 밤늦게 들어오시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틈이 나시면 책을 보시거나 글을 많이 쓰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본인과 누님(62, 창숙 장녀) 그리고 동생(55, 창준 막내) 삼남매다”

―교육자로, 시인으로 자녀들에게 교육방법이나 훈육은?

“칭찬은 가끔 해주셨는데 조용하시고 훈계나 별다른 가르침은 없었고 스스로 알아서 성장하고 공부하도록 했다. 일체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처음엔 아버지처럼 교단에 계시다가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신 누님을 어릴 적에 많이 예뻐하셨다.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아버지를 많이 따랐다”

―생전에 선생이 자녀들에게 당부하거나 특별히 가훈처럼 한 말은 무엇이었는가?

“평소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 다만 팔순 가족모임 식사자리에서 성경말씀을 인용해 ‘범사에 감사하고, 모두에게 감사하라’는 말씀을 한번 조용히 하신 정도이다”

―평소 술은 어느 정도로 드시는가?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 것 같다. 그래서 종종 하셨는데 술자리는 거의 문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말술을 대작하신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술을 마셔도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거의 없다. 술을 드시고 집에 돌아오셔도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말씀이 없으시고 큰소리도 내시지 않으셨다”

―장남이 바라본 아버지의 직업과 문학관을 어떻게 보는가?

“천성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의 여러 모습을 보아도 시인이란 선택과 문학이 잘 맞으셨을 것 같다. 시인을 천직으로 여기시고 오로지 평생 책과 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언젠가 TV ‘문학의 향기’에 출연하셔서 ‘요즘 젊은이들은 시를 너무 가벼이 여기고 쉽게 쓴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문단에선 많은 시인이 선생을 선비시인으로 불리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아버지께서는 집에서도 평소에 말씀이 없으시고 늘 조용하시다. 서재에서 글쓰기를 좋아하셨고 과묵하시고 어지간하시면 침묵하신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편 가르지 않으시고 가세하지도 않으셨다. 가만히 미소만 지으시고 계신다”

―유언은 무엇이었나?

“별말씀이 없으셨다. 쇠약해지신 탓도 있겠으나 7일가량 병원에 입원하고 계실 때 이따금 가족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시는 정도였다. 그리고 조용히 영면하셨다”

―선생이 아끼거나 소중하게 여기던 것은?

“아마 책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생전에도 항상 책을 보시거나 글을 쓰셨으니 그렇게 생각이 든다. 유행이라고 해서 새로운 물건들을 집안에 들이지도 않았다. 동시대이지만 저희들과는 다른 생각으로 일관하셨다”

―필자의 생각이다. 선생의 시는 대체로 간결한 서정시가 주류를 이룬다. 시의 함축미와 깊이는 어떻게 읽히는 것으로 보는가?

“잘 보신 것 같다. 아버지는 시를 쓸 때 쉽게 읽히는 시를 써야한다고 하시고 그래야 읽는 이가 편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시집을 보면 고민은 많이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특별히 아버지에 대해 제가 드릴 말씀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좋아하셨을 텐데 사실 저의 아들이 2017년 2월에 소설이 발표됐는데 안타깝게 아버지께서 출간된 소설책을 보지 못하시고 영면하셨다. 생전에 저의 아들이 책을 쓰고 있는 것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다. 평생을 문인으로 계셨었는데 이것을 제 아들과 가족들도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아마 아버지께서도 출간된 책을 보셨다면 속으로 반가워하셨을 거다”

―그럼 손자가 될 텐데 이름과 나이, 직업이 어떻게 되나?

“이름은 임성균이고, 직업은 대학생인데 현재 인하대학교 아시아 태평양물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조만간 해외 인턴으로 나간다고 하는데 자세한 일정은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내용의 소설이고 제목은 무엇인가?

“아들이 공부하면서 고3 때 체험한 공부의 방법들과 학교생활, 친구들과의 교우, 그리고 대학생활과 청춘으로 이어지는 지침서 같은 건데 제목은 ‘고딩으로 살아남기’다”

―출판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처음엔 웹소설 사이트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 하다가 읽는 이들의 관심이 높아져 인기가 있자 완결을 결심하고 본인이 집적 출판사에 알려서 온·오프라인 통해 초판 300권이 바로 품절이 됐고 제판에서도 100권이 품절이 됐다고 아들한테 들었다. 시작할 때는 800페이지 분량으로 상·하권으로 출간을 준비했으나 생각 끝에 606페이지로 축소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하시고 영면하신 것을 제 아들도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페이지에서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 장, 한 장 읽고 계실 것’이라고 쓰고 있다”

―장편소설이라고 했는데 책자가 궁금하다?

“알았다. 보내드리도록 하겠다”

이렇게 인터뷰를 끝마치고 이틀 후에 필자는 작업실에서 두툼한 소설책을 펼쳐볼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 그대로였다.

청순해 보이는 인물사진과 함께 첫 글에서 밝히는 임성균 군은 ‘글쓰기가 취미이고 한국판 ‘귀욤 뮈소’를 꿈꾸며 3년간을 고된 작업에 열중하지만 과정에서 어려움을 스스로 깨닫고 절필을 결심한다’라며 그러나 ‘어리석게도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역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승이랄까, 계승이랄까, 선생이 보셨다면 좋아하실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7. 선생은 2016년 5월13일, 13번째의 마지막 시집 ‘바람, 만지작거리다’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을 끝으로 같은 해 2개월 뒤인 7월16일 예감이라도 한 듯 생의 덧없음을 ‘시인의 말’에서 허무라는 말을 활자로 남긴 채 찬란한 빛 속으로 소천한다.

여기에서도 짤막하게 심정을 토로한 몇 줄이 극명하게 드러나 숙연하게 한다. “앞으로 시가 몇 편 나올지 모르지만 그러나 시집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문단에 몸을 담근 지 회갑의 나이가 되었지만 널리 회자되는 시, 번번한 애송시 하나 없다. 허무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것이리라”라고 쓰고 있다.

선생은 산 그림자처럼 밀려오는 죽음을 코앞에서 예감하고도 의연하게

오로지 시만을 갈구했음을 실천해 보인다.

남들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현대에 발맞춰 100세 시대를 살아간다고 야단이지만 건강, 가족, 걱정, 불안, 유서 따위와는 첨예하게 대립돼 선생의 올곧은 시문학의 여정과 시를 대하는 애뜻한 열정을 바로미터에서 확인하게 된다.

출간한 시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일상을 스스로 선택하며 가뭄에 타는 목마름에도 이를 버티며 생명을 유지하는 푸른 소나무처럼 시학예술에만 공감대를 확장하고자 고민으로 점철된 모습이 일관되며 자신을 넘어 인생을 넘어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했을 것이 자명하다.

문학이 삶이 되고 그 삶 자체가 즐거운 또 괴로운 그렇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원인은 온전히 숙명적인 예술인의 솔직한 욕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알기에도 문인협회와 외부의 원고청탁 외엔 여타와 영합하지 않고 예술인으로서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창의적인 창작에 시혼을 불어넣어 평소 시에 대한 예술적 삶의 무게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정도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어서 잠시 머뭇거려진다. 더불어 선비시인의 구현이 무엇인가를 여기서도 넌지시 일러준다.

8.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동양화이든 서양화이든 그림을 그리기 전에 캔버스에 이미 완성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게 마련이다. 필자가 선생을 떠올리면 언제부터인가 조그맣게 상징되는 단상 하나가 마음에 그려지는 것도 이에 속한다.

나지막한 산 아래 아담한 집 한 채에 조그만 연못 그리고 꾸미지 않은 몇 그루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대로 휘늘어져 있고 졸졸졸 흐르는 냇가를 따라 키가 큰 들풀들이 어우러진 넓지 않은 길, 나뭇잎마저 고요하게 드리워진 조용한 숲길 거기서 사색하듯 천천히 걷고 있는 한 노인, 시간이 정지된 듯 누르스름하게 다가오는 복고풍 같은 그림 한 점이 선명하게 걸려진다.

장독대 위로 잠자리날개 창공에 선회하다 바지랑 끝에 앉고 흰나비 몇 마리 노란 꽃잎에 다가가 꽃술에 입을 맞춘다. 자연을 노래하고 싶어서다. 이런 그림이야말로 자연에 몰아되는 시인들은 성지가 된다.

시인들은 이런 풍경에서 자연을 음미하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시를 짓는 본래의 목적에 한 걸음 다가가 또 다른 시선과 마주하게 되며 문학의 향기가 손끝에서 피어나게 된다. 이를 함축적으로 음미하며 자연과 인생을 노래한 선생의 짤막한 시 한 편을 옮긴다.

멀어지면

가까워진다는 것

가까우면

멀어진다는 것

겨우 알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무지한가?

―‘원근법’- 전문

간결하지만 관념적인 작품이라서 무겁게 느껴진다. 인생에서 자연을 보고 자연에서 삶의 단상들을 읽어낸 것으로 멀어지면 가까워지고 가까우면 멀어지는 이치는 자연의 법칙이다.

고령인 선생이 무지하도록 겨우 알게 된 것이 무엇인가? 사실적 묘사의 접근보다는 자연에서 빌린 이별과 죽음을 음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아의 존재론적 응축을 자연으로부터 축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해가는 과정을 심경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시야를 확장해보면 사색의 총체를 품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화두는 고령화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수명의 연장보다 삶의 질에 무게를 둔다. 사람답게 살면서 늙고 죽어가는 생로병사에 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자 노력한다.

웰빙(weilbeing)이 그렇고 웰에이징(weilaging), 웰다이잉(weildying)이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나약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늘도 드리울 법도 하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중에도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며 이승의 채비를 서두르면서 주검을 확인하는 작품 속에서 ‘집사람이 고맙다’라는 장면들이 필자의 가슴에 머물러 뜨거워진다.

-‘잠자는 얼굴’-에서 예감돼 지는 의미를 골똘해 본다.

보고 싶어도

나는 잠자는 얼굴을 볼 수 없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집사람에게 묻는다.

바보처럼 입을 벌리지 않던가.

잠꼬대는 없던가.

코는 골지 않던가.

다리를 포개고

구부정하게 자지는 않던가.

불면증으로 고생 중인 집사람은

대게는 숨소리뿐

얄미운 만큼 잘 자더라 한다

나는 한참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도

편안한 자세라고 한다.

됐다

잠자는 예행연습은 끝났다

잠자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집사람이 고맙다.

―‘잠자는 얼굴’- 전문

위 작품에서 보듯 잠을 죽음으로 인용한 작품이다. 누구나 죽음은 일상 속에서 늘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섭리이며 모든 생명체가 수용해야 할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이치이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선생은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잠자는 모습에서 이미지를 도출해내며 죽음에 대한 생경함과 두려움을 친근함으로 바꾸어 ‘보고 싶어도 나는 잠자는 얼굴을 볼 수 없다’며 죽음을 연상한다.

더불어 누구든 자신의 잠자는 모습을 알리 없다. 영상으로 남기거나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사실들도 잠이 들면 이 또한 볼 수가 없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집사람에게 그 이후를 미리 묻고 있다.

잠자는 얼굴로 죽음을 암시하고 죽음의 읽기를 잠자는 얼굴에서 찾아내 수용한 것이다. 그래서 잠은 죽음과 상통한다.

쇼펜하우어는 ‘잠이란 삶을 유지 시켜 주기 위해 죽음에게 빌려온 빚’이라 했다. 선생은 이 빚을 평상시 삶의 방식으로 갚으려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빌려온 빚을 자신의 은거 속으로 또 다른 해석을 생성해 내며 죽음에 대한 단상들을 그려나간다.

따라서 글에서는 죽음에 대한 환유와 상징의 시어들이 가득한 내용으로 배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죽음에 어떻게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을지를 확인하고자 하고 있다.

여기에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기법들 또한 죽음을 수식하는 모습들을 확인하게 하고 이를 자신이 살펴보고자 한다.

가령 바보처럼 입을 벌리지 않던가/ 잠꼬대는 없던가/ 코를 골지 않던가/ 다리를 포개고 구부정하게 자지는 않던가/ 등 암시적으로 주검을 미리 상상하며 체험해보는 것으로 각기 다른 양식의 구사들을 차용해 죽음이라는 관념을 하나의 정경으로 묘사해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전개되고 있는 이미지 중에 ‘나는 한참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도/ 편안한 자세라고 한다/ 됐다/ 잠자는 예행연습은 끝났다’의 특징들에서 주로 ‘예행연습까지 끝냈으니 이제 됐다’하고 온전하게 자신과 죽음을 절충한 선생의 다양한 모습에선 죽음이 얼마나 새로운 풍경으로 환치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는 이미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결합하고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전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마감돼 가는 시간을 담담하게 내다보는 절체절명의 극적인 생의 마지막 길을 향기롭게 여미는 것도 초연함으로 대신한다.

9. 이상 필자가 바라본 고(故) 우봉(又峰) 임강빈 선생의 시와 작품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들을 조명해 봤다.

평생 시학정상 요지에 머물면서 올곧은 시인의 예술양식과 품격으로 내연을 확장하고 승화시켜온 애착의 흔적들과 또렷한 의식의 정점들이 확인되고 있는바 더 깊은 안목으로 다양하고 세밀한 형식을 빌려 살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관한 시집의 준비가 미진해 일부만 들여다보아 끝내 아쉽고 덧붙일 대목이 많다는 점을 밝힌다.

그동안 선생이 천착하며 추구해온 궤적과 작품에서 자연을 통해 기쁨 혹은 안식을 찾아 전달하고자 했던 서정의 아름다운 생명력과 인간의 애환 그리고 고독을 표현한 사유 깊은 철학적 작품세계를 조명하고자 마지막시집 ‘제13집’을 중심으로 구성과 내용으로 이뤄지는 예술의 측면들을 살펴보고자 했으며 삶에 스며든 작품들이 지향한 부분들을 논하려 했다.

요컨대 선생의 작품은 자신의 상(像)에서 집약돼 지는 다양한 형태와 자연에서 중첩되는 이미지들이 결국은 하나로 통섭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히려 빈곤하게 느껴지는 요소 그리고 기우나 우려도 넉넉한 인식으로 대응하며 깊이 있는 문법에 섬세함을 얹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선생이 발간한 운치 높고 웅숭깊은 시집들이 필자의 작업실에 모아지고 집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평론집을 다시 한번 쓰기로 지면을 통해 약속하고 생전에 선생의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썼던 필자의 시 한 편을 덧붙이며 일소한다.

‘고(故) 우봉(又峰) 임강빈 시인의 미소’

지상에서 천상으로 꿈길이 열리더니

이승에서 저승으로 꽃길이 놓이더니

현실에서 불변으로 모습이 보입니다.

 

녹음 푸른 창가에 드리우는 바람 끝으로

초록 잎 하나 우주에서 색깔을 물들이고

지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걸어옵니다.

 

시인들이 빚어놓은 몇 편의 돌탑에 쌓인

가녀린 언어들 사이를 잠시 머뭇하다가

찬란히 부서진 물방울을 주워 모읍니다.

 

원천적 형의 기원을 믿어온 글귀의 걸음은

별빛 쏟아지는 어둠의 통로에서 문을 열고

길을 트는 발길에 입 맞추는 당신을 봅니다.

 

길이 아니면 부딪치는 바람결도 흔들리지 않는

정제된 발길과 굳건하게 침묵한 입술에 파묻히는

아득히 멀어진 채움과 비움으로 향한 황야의 뜰에

 

누구는 영토도 없이 표류하는 부재한 땅을 디디고

산화된 이정표 앞에 서서 아우성치며 무거운 짐과

연장을 들고 구원치 못할 뼈아픈 발등을 찍습니다.

 

오늘밤 잃어버린 풍경을 새벽바람으로 호흡하려는

피 흐르는 지상 위, 물의소리 가르는 뜨거운 심장은

불멸의 밤으로 가는 두근대는 큰 북의 울림을 듣습니다.

 

어둠은 통로에서 하늘로 열리고 하늘은 환한 별빛 속

창공에 뜬 순백의 백자에 비치는 엷은 회색빛 미소가

꿈속에서 영혼으로 달빛 따라 저만치 점점 옅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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