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시대의 풍속을 반영한 역사기록화 ‘감로탱’
[평론] 시대의 풍속을 반영한 역사기록화 ‘감로탱’
  • 류환
  • 승인 2020.07.2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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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감로탱’(甘露정幀)은 무슨 그림이고, 무엇을 의미하나?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우리 불교회화(佛敎繪畵)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세계와 이후의 세계를 반영하는 ‘감로탱’(甘露정幀) 이란 그림이 있다.

욕계중생의 영혼을 극락에 왕생케 하는 과정을 집대성하듯 그린 것으로 욕계와 색계, 무색계의 삼계를 화면에 모두 표현하는 것이 이 그림의 특징이지만 이를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 그림은 불교 전통의 우주관을 조명해 나타낸 삶과 죽음과 구원의 파노라마 같은 하나의 불화로 ‘감로탱’이라 칭한다.

특히 감로탱은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위도재(僞度齋) 때 사용되는 불화를 일컫는 데에서 유례됐다.

주제에서 보듯 ‘감로정’을 ‘감로탱’으로 부르는 칭호도 일반 불교계에서 쉽게 부르는 ‘불화’를 ‘탱화’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감로정의 내력은 예나 지금이나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내용과 형식을 갖춘 감로탱으로 직역됐으며 역사적으론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작품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오래전 필자가 불화를 지면에 소개하면서 알게 된 감로탱은 지난 불교미술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데 존재론적 인식을 독자들은 물론 연구자료 측면에서도 소중하다고 사료되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앞서 필자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과 문헌들을 참고해가며 감로탱은 어떤 미술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 사상적, 역사적, 풍속들을 어떠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는 것을 밝히며 가능한 한 기록자의 인식을 더듬는데 우선하고자 한다.

삶과 죽음과 구원의 종합적인 ‘중유’(中有)

감로탱은 불교회화 중에서 그동안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던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그림 중 하나였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그림과 작품을 혼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과거에는 ‘작품’ 이전에 ‘그림’이라 칭했었다는 것도 염두해 두길 바란다.

이 그림은 주로 대웅전 주존불 뒤에 걸리는 후불탱(상단탱 이라고도 함)이나 대개 대웅전 오른쪽에 걸리는 중단탱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고도 볼 수 있으며 감로탱은 일반 신도들을 위한 의식용 그림으로 토속신앙(Totenism) 중 하나로 하단에 걸린다.

그러나 미술영역인 그림이라는 엄연한 사실적 기저를 바탕으로 깊이 고찰을 해본다면 내용과 형식면에서 감로탱이 지닌 미술사적 중요성은 어떠한 불화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적 의미를 갖으며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온전한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고 판단이다.

더욱이 엄격한 형식과 정해진 도상에 의해 그려야만 하는 불후탱에 비해 감로탱은 형식과 도상에 있어서 화가들의 창작열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 자유롭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표현하도록 하고 있어 화려하며 다양하고 형태와 질서에도 특수성을 갖는다.

그래서 감로탱의 그림은 어느 한 곳 구속됨 없이 변형들이 가능한 작품으로 병치시킬 수 있는 그림이었으며 불교회화로서는 유일하게 현실세계와 이후세계를 반영하고 있어 인간의 세계를 영육과 영혼(Animism)으로 나눠져 있어 모든 생명체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감로탱은 시대에 따라 양식변화가 뚜렷해 작품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반영, 묘사해 미술사적 가치가 어느 시대, 어느 그림 못지않게 수준 높은 작품들이라는 것을 직시하게 된다.

그런데 왜 수많은 불화 중에서 오직 감로탱 그림에만 현실세계와 이후세계가 표현될 수 있었으며 이유는 무엇인가를 분석해 본다.

불교의례에서는 하단 신앙은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기원하는 신앙으로 일반 신도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하단 신앙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재(齎)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을 일컬어 위도재(儰度齋)라 하며 감로탱은 바로 사십구재(四十九齋), 수륙재(水陸齋) 등 영가위도재(靈駕僞度齋) -‘영가’는 영혼을 의미하고 ‘천도’는 죽은 사람의 넋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일을 의미함-를 위한 그림으로 사십구재(七七齋)나 수륙재와 같은 천도재는 불교에서 일컫는 ‘중유’(中有)라는 개념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기에 그렇다.

망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극히 착하지도 않고, 지극히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곧바로 저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유에 태어나게 된다고 보고 있어서다.

이 중유에 있는 기간은 49일(7.7)로 윤회할 곳 즉 다시 태어날 곳을 찾지 못한 상태로 49일이 지나기 전에 죽은 영혼이 다시 태어날 곳을 찾게 해주어야 하는 전통으로 불가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어 수긍이 간다.

따라서 죽은 영혼이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 천도재이고 그 천도재의 의식을 도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감로탱이다.

갖가지 한을 품고 죽어 중유를 떠돌던 고혼(孤魂)들이 천도라는 의식을 통해 생성된 감로(甘露) -감로라는 뜻은 맛이 달콤한 이슬과 같은 정수로 중생을 구제하는 교법에 비유됨-를 매개로 해 극락세계로 인도되는 과정을 그림으로 도해해 인간의 죽음과 구원의 주제로 삼고 있다.

일반종교화처럼 피안의 상상세계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로부터 극락왕생하는 과정을 묘사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암시할 수 있도록 그려 넣었던 것이다.

홍천사 소장, 비단에 채색, 292×192㎝, 제작년도 1939년.

망자의 혼(魂)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현실세계’

감로탱의 구성은 상, 중, 하단으로 나눠 구분되며 큰 장지에 담채(淡彩) -색상을 띤 돌가루-를 사용해 한 장으로 완성한다.

상단은 칠(七)여래를 비롯해 인로왕보살, 아미타여래, 백의관음, 지장보살 등 죽은 영혼을 구제하는 역할에 관련된 불보살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중단은 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절차를 그린 의식장면들로 표시하고 하단은 욕계의 세계로 중생의 갖가지 죽음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특히 하단에 그려진 현실세계의 적나라한 장면들은 감로탱이 전해주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현상들로 가득하다.

혹여 사찰을 찾는 많은 이들이 이를 보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본질보다는 외향에 앞서 급박히 살아가는 현대인의 관심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세태들로 비유 내지는 사유가 되는 만큼 시선을 끄는 요인들로 자신들의 뒷자리를 돌아보는 시선에서 머뭇하게 하고도 남음이다.

감로탱의 핵심적인 주요 부분 또한 욕계의 갖가지 장면들이 자유롭게 표현돼 있는 하단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하단부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사회상을 파악해볼 수 있으며 현실세계를 확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들은 지난 과거와 현대를 살아가는 군상들의 다양성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하단에는 각종 죽음의 장면들이 묘사돼 있는 것이 바로 욕계(欲界)의 세계다.

그 갖가지 장면들은 하단의 화면에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감로탱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간혹 각 장면 옆에 그 내용을 적어놓는 경우도 있어 그 도상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게 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비참한 삶과 죽음이 범람하듯 모두 담겨 있어 움칫해진다.

예를 들면 집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돌다가 죽은 사람, 질병에 걸려 죽는 사람, 치료를 잘못 받아 죽는 사람, 고아들과 의탁할 곳이 없어 죽어가는 노인들, 자신을 칼로 찔러 자살하는 모습, 재물을 지키다 목숨을 잃는 사람, 노비가 주인을 죽이는 장면 등등 상상 이상의 최후들이다.

한마디로 인간들의 생사고(生死苦)가 한없이 그려져 욕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양각색의 죽음들이 모조리 그려져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림을 통해 바라보는 화면들은 이들의 개별적인 죽음과 불행들로 뒤섞여 있는 상황들이 폭넓게 펼쳐져 있지만 이러한 도상을 만들어낸 상상력의 바탕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란 점을 금세 알 수 있게 한다.

이 불화를 그리는 화공들은 다양한 죽음과 비참하도록 참혹한 장면들을 도해하기 위해 그 당시에 일어날 수 있는 모습들을 자신들이 직접 목격했거나 귀 들었던 사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들 죽음의 종류들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돼 존재되고 있다는 사실들이다. 대체로 그것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에 이른 자의 처참함이나 또는 누구나 피할 수 없이 만날 수 있는 비참한 모습들과 재앙들로 범벅이다.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그 그림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인간들이 짓고 있는 ‘업’(業, Karma)으로 만들어지며 사람들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업을 짓고 살아가게 되는데 연유를 둔다.

물론 업은 불교계에서 ‘인과(因果)와 율(律)’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율의 연쇄관계에 놓이게 되며 ‘단독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돼있지만 이미 ‘현재의 행위들은 그 이전의 행위들의 결과로 파생돼 생겨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 치유의 방법으로는 종교계에서 자비(慈悲)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그래서 감로탱의 하단에는 현실계 중에서도 온갖 형태의 죽음과 비참한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는 까닭을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참하게 죽어서 떠도는 고혼들을 상징하기 위해서라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진다.

이 물음을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설명하자면 ‘재(齋)를 올리는 산 사람의 욕구란 망자가 죽을 무렵에 겪었을 서글픈 한을 풀어주는 의식에 있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주인공인 망자는 그 여러 가지 죽음의 형태 중 하나로 죽었을 것이고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그러한 죽음을 당한 자가 천도의식을 통해 극락으로 인도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그래야만 재를 지내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소장, 비단에 채색, 160×187㎝, 제작년도 19세기 후반.

현대인들을 반영한 새로운 ‘감로탱’의 필요성

감로탱에서 아마 가장 중요한 도상은 죽은 자의 영혼을 상징하는 아귀(餓鬼)의 모습이 아닐까하고 생각된다.

감로탱이 중앙에 크게 묘사돼 있는 아귀는 감로탱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으며 아귀는 현생의 업에 따라 윤회하는 육도의 하나이기도 하고 육도의 윤회가 결정되기 전의 중간단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태어날 곳이 결정되기 이전의 아귀상태에 있을 때 천도재의 의례가 행해지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굶주린 아귀에게 감로주(甘露酒)를 베풀어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이 감로탱의 지배적인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세의 죄업을 집약시켜 강조해 놓은 것이 아귀가 의미하고 있는 의례라는 것은 풀이가 손쉬워 진다.

문헌에 의하면 “많은 이들이 아귀는 바로 ‘나’라는 의식을 하게 되며 그 순간 감로탱의 알레고리가 성립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며 “현실에 존재하는 ‘나’는 늘 죄업을 짓고 있으므로 그 아귀는 바로 나의 미래상이며 지옥 속의 나는 재단에 차려진 감로(甘露)를 음미함으로써 극락에 인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감로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고 석가의 진리인 법(法)임을 인식하게 하고 있어 거스르지 말아야 할 불가의 순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결국 감로탱은 법이란 감로를 음미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재단과 아귀라는 형이하학적인 구체적 도상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현실세계를 깨닫게 만들어진 그림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 극락으로 가는 영혼도 바로 나의 현상이고 그리고 당신도 구원되는 모습으로 환치되는 것도 감로탱의 총체로서 해석되는 대목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윤회와 구원 등을 통해 유기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감로탱은 불교회화 중에서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그림으로 풍속을 반영하는 역사적인 기록화로 보아야 한다는 것 또한 논리가 적절하다.

그 이유는 종교화의 일반적인 경향인 상징주의적 성격과 사실주의적 성격이 한 화면에 극적으로 묘사해 결합돼 있기 때문에 그렇고 무엇보다 감로탱이 가지는 다양성과 특수성으로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해진 의궤에 의해 그려야 하는 일반 불화와는 달리 감로탱은 화가들이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구사력과 관념으로 다소 꺼릴 수도 있는 요인들을 과감하도록 창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어가 다양하고 천태만상인 현실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 또한 두드러진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를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불화와는 달리 각 시대의 풍속을 반영하며 변화해왔다고 볼 수 있다.

난데없이 남사당이나 대장간이 나타나기도 하고 일본의 조총과 3·1운동의 장면들이 나오는가 하면 서양 의상 차림으로 안경을 착용한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기록화의 성격을 띠고 있는 감로탱은 각 시대의 세대들을 담론으로 새로운 도상을 계속해서 창작해 오늘날의 세태를 꼬집는 현상계에 지침으로 삼아 경각심을 일깨우는 그림 중 하나로 이어져 내려왔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잖게 시사하는 바가 큰 비중들로 숨어 있다 해도 무리 없어 타당한 것으로 낙관된다.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 그 자체가 역사성을 지니는 풍속도를 그려내며 구성력을 갖추고 살아가기 마련이어서 그 삶의 본질에서 자연적 전면을 담는 그릇이기에 그러하다.

우리 것, 지키는 ‘사명감’이 우선

그중 몇몇 사찰에서나마 감로탱이 제작되고 있는 것으로 유추지만 과거 잘못된 도상을 그대로 모사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보여 이를 답습에서 탈피해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접목이라는 창작품의 예술차원에서 작품으로 확산시키는 시도도 해볼만 하다.

또 우리나라에게만 남아 있는 감로탱의 중요성을 모두는 신빙성 있게 인지하고 주지시할 필요가 다분하다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전통 고유민족의 자주적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감로탱의 원근형상의 획득을 위해 이를 경시하고 평가절하하는 우리 일반인들도 저자세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차후 실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솔직한 심려이다.

흔히 우리가 교훈처럼 인용하고 있는 고사성어중에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기를 놓쳐 한탄한다는 성어에서 지혜와 진리를 찾는다면 이 또한 소멸되고 사라지기 전에 얻어지는 큰 수확일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질풍노도와 같이 내리 치닫는 금시(今時), 시시때때로 변해가며 새로움을 쫒는 현대인들에게 한때씩 유행처럼 번져 돌고 도는 복고의 바람같이 오히려 우리의 옛것을 찾아 새로움을 제시한다면 이 낯 설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찾아 요구하는 성향에 더 적합하게 부합될지도 모른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시대적 풍속들 안에 녹아든 소중한 가치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조명해야 하는 일은 누군가가 마땅히 해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최우선적으로 어디이고 누구이겠는가? 우선 정부의 책임 있는 문체부나 이를 관리, 복원, 유지, 연구, 조사하는 문화재청 및 관련 기관에서 서둘러 사라지고 없어지는 우리 전통문화 유산들을 발굴하고 채취하는 데도 소홀함 없이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문명에 밀려 옛것들이 사라지는 지금을 돌아보면 점점 잃어가는 것들이 많아져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에 대해 애착을 갖고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 보존하고 계승하는 사명감이야말로 우리에게만 있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켜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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