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700년전 흑사병이 코로나시대에 주는 교훈
[기자수첩] 700년전 흑사병이 코로나시대에 주는 교훈
  • 육군영 기자
  • 승인 2020.08.24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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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흑사병 대응책과 코로나19 대응방안의 공통점은 '유명무실'
17세기의 역병 의사의 복장.

[대전=뉴스봄] 육군영 기자 =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수도권 교회와 집회를 중심으로 재확산되는 가운데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24일 대한감염학계는 성명문을 통해 “조기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필수 불가피한 조치이며 이미 그 기준을 초과했다”면서 정부의 빠른 대응을 촉구했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3단계 조치 발령 시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사실 이번 사례와 유사한 토론을 이미 700년전 유럽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14세기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당대 대유행을 일으킨 흑사병으로 인한 피해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행정적 대응책을 추진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도시 피스토이아는 1348년 ‘보건위생규정(Ordinamenta sanitatis)’이라는 23개 조항으로 구성된 법령을 제정했고 피렌체에서도 같은 해 이탈리아 최초의 공중보건기구인 8인 위원회를 신설해 흑사병에 대응했다.

이들은 도시의 지도자로부터 흑사병 대응에 필요한 전 권한을 위임받아 감염자를 격리하고 도시 내 집회와 행사를 금지했으며 상인과 물품의 이동도 엄격히 통제했다.

특히 피스토이아의 법령에는 장례식에 관한 절차가 상세히 규정돼 있는데 ▲가족 외 장례식 참석금지 ▲참석자 7일간 집회참석 금지 ▲도시 내 시체 안장 금지 등 감염위험이 높은 환경에 접촉을 제한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피스토이아는 흑사병으로 인해 도시인구의 절반이 감소됐고 피렌체도 전체인구 12만명 중 7만명이 죽거나 도시를 떠났다.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이에 서양중세사 연구학자들은 감염병 대응실패의 원인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스토이아의 경우 법률가나 재판관 등의 신분이 높은 사람은 장례식에 많은 사람을 불러 의식을 치를 수 있었고 종교단체는 도시법의 지배에서 벗어난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됐다.

당대인들은 흑사병이 하느님의 분노로 시작됐다고 생각했고 이에 힘입은 교회가 다양한 종교행사를 거행했는데 대표적으로 피렌체에서는 전염병이 극성을 부리던 1383년과 1457년에 대규모 종교행렬을 감행하거나 세례요한의 축일에 성대한 행렬을 거행하는 등 스스로 격리 정책을 백지화시켰다.

이에 시민들은 당대 흑사병 대책을 아예 무시하거나 크게 반발했는데 이는 시민들에게만 적용됐던 공중보건기관의 조치가 시민들의 생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생활에 불편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중세 도시들은 감염병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정책 대부분을 추진했으나 실행은 허술했고 특권계층과 종교의 권력 앞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무너져내렸다.

현대 의학기술은 중세시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고 각국의 감염병 대응 시스템 또한 매우 견고해졌으나 최근 국내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대규모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보면 14세기의 유럽의 도시국가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난 2월 우한 교민의 수용에 앞서 현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지난 2월 우한 교민의 수용에 앞서 현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수차례 발생한 코로나19의 집단감염 재발생은 명백한 인재(人災)다.

정부의 감염병 대응 시스템은 엄격한 규정이 적용돼야 했으나 감염병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는 추세를 보이면 어김없이 규제를 완화하는 안일한 대응을 진행했고 그 피해는 애꿎은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주간 국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환자는 2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오랜시간 제 역활을 다해 준 의료체계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K방역은 조롱거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지금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지원금이 아니고 재난지원시스템이다. 생활에서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코로나19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확신이다.

정부는 기존 방역 시스템의 문제점을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예외 규정 없는 강경한 대응 방침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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