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깊고 푸른 침묵에 관해
[컬럼] 깊고 푸른 침묵에 관해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0.09.25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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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성인 고(故) 오완영 선생을 추모하며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지난 7월 초여름 하늘엔 구름이 거뭇거뭇 버섯처럼 번지고 기온은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불볕더위가 중국발 우환 코로나의 감염확산과 함께 최고치에서 발악하듯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선생의 부음(訃音)을 받고 찾아간 영안실엔 즐비한 근조화환만이 빈칸 없이 놓여있어 발길을 막는 정부의 실천적 대책권고를 당부해 놓은 상태를 말해주듯 긴장한 일반인들의 다중모임 장소를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단상에 대전PEN문학 한 권을 올려놓고 나오는 것으로 선생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

작년 봄 수술 후 얼마의 시간이 흘러 올해 초여름까지 병마와 싸우며 버텨 다소 건강을 찾은 듯 근거리의 행사나 간간이 강연도 나가시고 등산도 다니시며 글쓰기에 매진하고 계시는 근황을 당시에 만나 뵈어 다행이다 싶었다.

가을쯤 출간예정을 앞두고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다며 미소를 짓고 계셔서 여간 없이 기뻤으나 안타깝게 결국 이를 이기지 못하시고 하늘로 떠나가신 고(故) 오완영 선생의 생전 모습이 삼삼해 또다시 우선 경의와 숙의를 간절(懇切)하고 지면을 통해 삼가 명복을 빈다.

지난 2019년 11월 대전문학관에서 개최된 펜문학 시상식을 앞두고 (왼쪽부터) 고(故) 오완영 선생, 안영진 초대회장, 필자.

금산에서 이른 새벽 신동으로 순백은결에 맺히는 이슬처럼 이승에 오셨다가 소천하시기까지 경건하신 모습으로 학식과 교양과 겸손을 두루두루 가슴에 물들이신 흔하지 않으시던 교육자이자 참지성인으로 모두에게 귀감이 되시던 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교직에 머물며 충남중등장학과장, 교육국장, 총괄교육국장을 거쳐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푸시킨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시고 교육감 출마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세월을 감수하시고 국제PEN클럽 대전광역시 회장에 피선되셨다.

필자는 본부로부터 사무총장으로 위촉돼 선생을 모셨던 그때의 기억들 하나하나가 새롭게 떠오른다.

선생과 교분을 나누던 일사들이야 차고 넘쳐서 정도에 그치겠으나 시들어 사라지는 풀잎의 모습에 그림자를 남기는 지난 태양을 이야기하기 전, 석양이 노을로 물들이는 해지는 외딴 모서리에 추억으로 쌓이는 그리움 마냥 길섶에서도 발 시린 발길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생명력 있는 숨 쉬는 사색의 고민과 연민이 깊어져 가던 때가 그저 그립고 아쉬울 뿐이다.

분명히 가야 할 길 먼 길목에 이정표를 세우며 뿌리채 움켜쥔 견고한 대지에 자연이 주는 침묵의 언어를 한 폭의 감화로 내면을 일깨우며 시기(時期)를 슬기롭게 넘기려 애쓰시던 지난 시간들 속으로 형체들이 소리 없이 드리워진 상황적 전개가 재생돼 어제처럼 선명하게 회전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도 여러 연유이다.

읊조려보면 시리도록 시린 얼음 조각처럼 날카롭고 위험한 차디찬 견고함은 풋과일에 상처를 남기며 불어대던 찬바람처럼 나뭇가지를 흔들고 헛기침 인양 두리번거리는 호모사피엔스 욕망의 애매한 청체를 들었어도 못 들은 척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인내도 측근에서 수차례 체험한 담(談)이다.

아득하면 그 또한 서두르지 않아도 먼지처럼 사라져가는 이치라지만 반복되면 무뎌지는 것이어서 우린 또 다른 상처와 치유를 위해 솜같이 부드럽고 체온처럼 따뜻한 자신의 온기를 모아 살과 살이 맞닿는 순정으로 1대와 2대 그리고 3대 회장을 잇는 2000년 중반 가슴과 가슴을 부비는 포옹도 여러 번 나눴다.

지나가버린 시간들은 수면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과거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지만 투명하면 물속도 들여다보이는 이치라서 ‘과거는 오늘과 끊임없이 조응한다’라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며 회상에 떠오르는 크고 작은 파문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지만 차라리 우문(愚問)에 둔다.

서로 호흡하기 바쁜 세상, 남의 탓 하며 스치듯 지나치는 일이 태반사인 사태가 어제오늘은 아니어서 도무지 예측키 어려운 무미건조한 오늘을 살아가는 실상에 처해있는 우리 모두는 각자를 위해 다소의 각성도 요구된다,

이는 자신 무릎 앞에 시간표를 꺼내놓고 가야 하는 길을 물으며 두리번거리는 낯 설은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은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가게 하는지 알 수 없는 어지러운 작금에 올곧은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가슴 설렜던 지난 과거는 어제에 이어 오늘을 빠짐없이 이야기하듯 쉼 없는 대화를 요구하고 채근해 지난 시간을 이어가는 시계 초침 속에 두꺼운 입술을 조용히 숭배하고 뼛속마다 아린 흔적을 여미며 차마 말못 할 사연들은 가슴에 묻고 머나먼 길을 떠나가야 하는 우리는 모두를 위해 깊고 푸른 침묵의 묵시를 되새길 때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비록 허기져 배고픈 그때, 야위어 가던 몰골일망정 다 같이 성냥을 그어 불씨를 만들고 그 불빛으로 언 몸을 녹이며 막막한 발길을 비춰 먼길을 동행하던 우리의 뒷모습을 조용히 그려보며 징검다리를 놓으시고 이미 앞서가신 선생의 생전 모습이 가슴속 출렁거리는 기억으로 뒤돌아와 두 손을 모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행여 오늘밤 꿈속에서나마 선생님과 걷던 대흥동 오원화랑 거리의 모습이 아련하게나마 떠오르면 반가운 미소 서둘러 아끼지 않고 오늘의 ‘국제PEN클럽 대전PEN문학(6대 빈명숙 회장)’을 기꺼이 소상(昭詳)하게 안내하고 싶다.

부디 편안하신 가운데 청명한 가을 햇살이 드리운 숲으로 향한 오솔길, 바이블이 놓여있는 목조의자 위 아름다운 추억들과 낙엽들이 충만한 이 가을 불변하는 색채로 사색에 물드는 형형색색 그리움이 차곡차곡 하시길 빌어마지 않으며 졸필을 놓는다.

◇고(故) 오완영 선생의 경력 및 저서

▲1938년 충남 금산 출생 ▲중등교육자격고시 역사과 합격 ▲현대시학으로 문단 등단, 수필예술 주간 ▲충남(대전 포함)문인협회 사무국장 ▲대전문인협회부회장, 백지동인회장 ▲국제펜대전시위원회장 ▲충남중등장학담당 장학관, 중등장학과장 ▲중등교육국장, 총광교육국장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푸시킨대학에서 문학연구

[상훈] ▲충남교육대상 ▲충남문화상 ▲한성기문학상 ▲한국기독문화상 ▲황조근정훈장 ▲대전PEN문학상 등 다수 수상함.

[저서] ▲처용무 ▲이사달의 노래 ▲시인의 초상 ▲아름다운 초대 ▲교사의 기도 ▲교육 그 미완의 고뇌여 ▲웃음과 침묵사이 등등 시집과 수필집 등 다수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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