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년간의 전쟁’ 대전 예지중고 사태 마침내 일단락
[단독] ‘5년간의 전쟁’ 대전 예지중고 사태 마침내 일단락
  • 육군영 기자
  • 승인 2020.10.06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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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부터 취임해제, 특혜선발 논란까지... 예지중고를 둘러싼 논란과 사건들
예지중고의 복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진행하는 만학도와 교사들.
교무실 앞에서 복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진행하는 만학도와 교사들.

[대전=뉴스봄] 육군영 기자 = 대전에서 최초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대전예지중고를 두고 재단과 교원,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5년간의 설전 끝에 학교의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갈등의 시작부터 소송 및 판결까지를 재조명해본다.

이사장과 교감의 대립과 부당해고 논란

사태의 발단은 2015년 고(故) 박규선 이사장과 교감인 A씨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으로 시작됐다.

박 이사장은 학교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부족해 교감인 A씨에게 1억원 상당의 돈을 빌리려 했으나 A씨가 이를 거부하자 박 이사장은 중국어 교사 자격증 소지자인 A씨가 한문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시했고 이에 A씨가 반발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이에 일부 학생들이 대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대전교육청은 예지재단과 학교에 대한 감사를 시행한 후 예지재단 이사 7명 전원에게 경고처분 및 A씨의 비전공 교과수업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재단측은 한문 교과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A씨를 파면했고 이 과정에서 A씨를 따르는 일부 교사들과 학생들이 반발하기 시작하면서 수업거부와 시위가 발생하는 등 갈등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수업거부로 텅빈 예지중고 교실.
수업거부로 텅빈 예지중고 교실.

교육청의 부실한 대응능력과 갈등 격화

내부 갈등으로 발생한 학교의 파행은 갈수록 격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부 학생이 시위와 수업거부를 시작했으나 학생 16명이 폭행으로 벌금형을 받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대전교육청은 황급히 예지재단 이사 전원에 대한 취임승인을 취소했다.

당시 설동호 대전교육감은 승인취소에 앞서 “시정권고에도 불구하고 학교 정상화 미이행, 학생들의 수업거부 및 집단행동, 지속된 학사파행 방기, 부당해고 등의 문제가 있다”며 예지재단에 책임을 물었다.

이에 예지재단 측이 취소소송을 진행했으나 2017년 3월 1심에서 패소하면서 임시이사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2018년 2월 예지재단은 항소심을 통해 예지재단의 운영권을 되찾았고 대전교육청의 상고가 기각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긴 내부 혼란이었다. 예지재단 측과 A씨를 필두로 한 ‘정상화추진위원회’는 이미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여기에 임시 이사회에서 고용한 정규직 교사들의 처우문제까지 불거지면서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졸업생과 학생, 교직원으로 이뤄진 정상화추진위 200여명은 등교 거부를 선언한 뒤 교육청과 시청, 학교 안에서 항의시위를 진행했고 재단 측은 시위에 참석하면서 수업을 거부한 학교장과 교사 19명을 직위해제했다.

이후 교육청은 사실상 폐교 조치라 할 수 있는 신입생 모집과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행정조치를 진행했고 반발한 예지재단이 다시 소송에 나서면서 긴 법적 다툼이 이어졌다.

대전시립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해결책으로 떠오른 대전시립학교와 교직원 특혜선발 논란

충청권 유일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예지중고가 학사 파행으로 갈등이 지속되자 재단의 운영에 불만을 가진 만학도들은 허태정 대전시장의 공약인 ‘대전형 공공형 평생교육시설’, 일명 대전시립학교의 설립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전시와 대전교육청은 대전시립중고의 설립을 두고 부지매입과 운영예산 등으로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으나 2019년 11월 마침내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서 대전시립학교를 운영하기로 결정됐다.

이후 예지중고를 둘러싼 갈등은 기적적으로 해소됐으나 대전시립중·고에서 또다시 논란이 비등했다.

교원 모집과정에서 파면당한 전직 예지중교 교사들에게 항목당 5~10점씩 최대 20점의 가산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지중고 퇴직 교사 중 일부가 대전시에서 운영한 대전시립학교 설립자문단으로 함께 활동한 사실이 확인됐고 중국어를 포함한 교과 항목이 모두 퇴직 교사들과 일치했기 때문에 미리 선발 교사를 정해두고 공모를 시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진흥원 측은 학교운영 경험이 없어 평생교육시설에서 근무한 경력직 교사들의 채용이 꼭 필요해 넣은 가산점이며 블라인드 선발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선발 이후 교장을 포함한 반수 이상의 교사들이 재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돼 응시교사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법원, 예지재단의 손을 들어주다.

2020년 2월 대전시립학교가 설립되면서 표면상의 갈등을 해소됐으나 긴 법적 다툼은 계속 진행됐다. 지역 경찰에 따르면 예지재단과 만학도간의 갈등으로 지난 5년간 접수된 고소, 고발건은 60건 이상이다.

대전지방법원(민사21단독 오명희 판사)은 지난달 29일 파면된 예지중고 교사들이 예지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에게 수업권 침해라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면서 “피고에게만 그 책임을 묻기 어려워 보이며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예지중고를 졸업한 만학도가 수업을 중단했던 교사 9명을 대상으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만학도들의 손을 들어주며 졸업생 31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930만원의 배상금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헌법 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해 기본권으로서의 학습권을 선언하고 있다”면서 “학생의 학습권은 개개 교원들의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부터 보호돼야 하며 교원의 수업거부 행위는 학생의 학습권과 정면으로 상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고들의 수업거부 등 위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수업을 받지 못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학습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학습권의 침해는 넉넉히 인정된다"며 "피고들은 원고들의 위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예지중고등학교 수업 모습.
지난해 예지중고등학교 수업 모습.

평온을 찾은 예지중고, 변화할 수 있을까?

예지중고는 지난 5일부터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에 들어갔다. 긴 갈등을 마치고 배움의 시기를 놓친 성인 학습자들과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등과정(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지중고에 재학 중인 학생은 400여 명으로 최근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격주로 대면 수업과 비대면 온라인 원격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예지중고 관계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체계가 잘 잡혀있어 수업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쌍방향 교육과 동아리 활동을 강화하고 특성화 교육에 주력해 다른 학교에는 없는 차별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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