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깊어가는 가을, 다시 듣고 싶은 명화와 명곡
[평설] 깊어가는 가을, 다시 듣고 싶은 명화와 명곡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0.10.26 0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 클래식 이수(離愁)의 브람스교향곡 2번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계절의 시간이 바쁘게 지나가면서 찌르르 찌르르하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무르익어가는 가을밤이면 기억 저 멀리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던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잔잔히 떠오르는 영상이 펼쳐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들은 건조한 갈증을 풀어내듯 시야를 확장시켜가는 화면 한가운데에 펼쳐지던 사랑과 인생의 파노라마들이 적막히 흐르는 세월과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명곡과 명화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있어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서로의 몸짓을 사로잡던 로맨틱한 스토리 전개와 더불어 배경으로 흐르던 음악이 전율을 타고 흘러 잠시나마 마음을 사로잡아 시름을 잊게 한다.

자유와 예술 그리고 낭만이 넘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아름답던 감성이 물씬 감돌던 영화 ‘Good bye Again(이수離愁)’과 함께 배경음악으로 삽입된(OST) ‘브람스(Brahms)교향곡’ 제3번은 안타까운 사랑에 빠져 번민하는 여인을 그린 명화로 유명해 익숙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폴라’(잉그리드 버그만 역)는 개성 있는 실내장식가로 트럭판매회사의 중역인 ‘로제’(이브 몽땅 역)와 5년째 황홀한 사랑을 속삭이며 교제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결혼은 생각지 않는다.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삶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과 재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에 폴라는 결혼을 잊고 단지 자신의 현재를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더 값이 있다고 생각하고 로제와 사랑을 나누며 교제를 이어간다.

이런 이유를 알고 있는 로제 또한 폴라를 두고도 아름답고 젊은 다른 여자와 로맨스를 즐기고 있어 굳이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폴라는 부유한 집안의 ‘앙데르베슈’ 부인으로부터 실내장식을 의뢰받아 그녀의 저택에 찾아갔다가 그 집의 아들 ‘필립’(안소니 퍼킨스 역)과 마주해 서로를 알게 되면서 서막이 시작된다.

20대의 젊은 필립은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의 여인 폴라에게 첫눈에 반해 야릇한 연정(戀情)을 느끼고 이를 사모하며 고민을 반복한다.

반면 폴라는 이미 40대 여인이라서 아직은 어리다고 판단한 필립의 어설픈 행동 따위 같은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으며 일상을 로제와 사랑을 나누는데 여념이 없다.

필립은 몇 달 후 친구들과 놀러간 나이트클럽에서 로제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폴라를 만나게 되자 자신이 품고 있던 속마음을 솔직하게 “사랑한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폴라는 그런 필립을 단순히 귀엽다고만 생각해버릴 뿐 지나치고 만다.

그래도 필립은 폴라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말을 걸며 폴라를 음악회 초대에 응해줄 것을 호소하지만 폴라는 난감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하지만 애절한 눈빛으로 음악회 초대에 응해줄 것을 간청하는 필립의 사정에 결국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음악회에 참석하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폴라와 필립은 이를 계기로 가까운 사이로 서로 이성과 감성이 혼재한 플라토닉과 같은 사랑을 확인하게 되며 더욱 여유로운 애정을 갖고 서로 연민의 관계로 발전하며 가까워지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유난히도 많이 쏟아지던 오후, 폴라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필립은 우산도 없이 비를 흠뻑 맞은 채 폴라의 작업실이 있는 곳까지 찾아간다.

작업실 창문 너머로 내다보이는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워진 폴라는 열렬한 감정의 폭발로 필립을 끌어안고 만다.

폴라의 모성적 본능은 이때 진정으로 필립에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이어지게 되고 필립의 귀엽고 신선한 모습에 끌려 자신의 나이도 잊은 채 필립의 감정을 이해하고 아가페적인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시간이 흘러 폴라를 잃은 로제는 비로써 그녀가 멀어져 비어있는 존재가 얼마만큼 크게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했었던가를 느끼고 이를 절감하며 후회한다.

또한 폴라는 필립과 격렬한 사랑의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날 자신을 뒤돌아보며 고심에 삐지게 된다.

자신이 젊은 필립에게 모성애 외의 다른 애정을 품지 못하는 둔감을 알아채고 자기가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었을 때의 고독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침내 폴라는 마음속 절망 섞인 생각만 가득히 밀려오는 뒤늦은 후회들이 한순간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이를 비관한 나머지 용기를 내어 필립에게 이별을 고하고자 다짐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멀어져야 하는 운명을 토로한다.

이를 말없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슬퍼하고 낙담하는 필립에게 폴라는 순수했던 모성애의 아가페적인 연정을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필립은 실연조차 즐길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언젠가 나도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늙어지면 나에게서 당신이 떠나갔을 때 내게 남는 것은 절망뿐이예요”라고 말하며 괴로워하는 필립의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선다.

로맨틱이 중주하는 애틋한 사랑의 교향

이는 흐르는 세월을 예감한 폴라의 나지막한 자중 섞인 자기반성의 반로이자 허망한 세월을 체감한 일로로 생의 덧없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으로 영화의 중심부에서 많은 것을 뒤돌아보게 한다.

40중반 인생의 모든 것을 경험해본 그녀에게 사랑이란 혹은 정열이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체험을 통해 터득하며 지나는 그의 삶의 길목에서 지난 시절을 뒤돌아보며 물음을 던지는 울림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머문다.

애인을 두고 연하의 젊은 청년 필립과의 사랑도 역시 만족할 수 없었던 파리의 자유 분망하고 아름답던 실내장식가 폴라.

결국 폴라는 상처 난 마음을 사로잡고 로제와 결혼을 준비하며 새로운 생활을 꿈꾸고 기대심에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로제는 사업 때문이라며 약속을 어기고 멋대로 폴라를 등하 시하는 삶에 대해 비애를 느끼는 일상이 반복되는 나날들로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된다.

이와 같은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 이수離愁(Good bye Again)는 ‘프랑소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Almez Vous Brahms)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우리에서도 익숙히 많은 인기를 얻었던 명화다.

당시 안소니 퍼킨스는 모성애를 충돌하는 것 같은 싱싱하고 풋풋한 연기로 칸느 영화제에서 주연 남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잉그리드 버그만은 그 잊혀지지 않는 개성 있는 얼굴을 가장 생생하게 불러일으켜 그녀의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연하의 필립과 안타까운 사랑으로 번민하는 40대 여인 폴라, 그녀의 사랑과 열정과 고독과 슬픔을 노래한 것은 바로 브람스의 음악이 있었기에 명작이 만들어지는데 가능했다.

프랑스 6인조 중 한 사람이었던 작곡가 ‘조르주 오릭(Georges Auric)’이 편곡한 브람스의 제3번 교향곡, F장조 작품 90의 제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의 첫 악장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데 충분해 부족함이 없다.

감성 풍부하게 멜로디에 감도는 가슴 뭉클한 일련의 웅장함은 그 큰 울력과 함께 선명한 인상으로 감동과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브람스의 곡이 이처럼 감미로운 낭만에 젖게 하는 음악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황홀감을 안겨준다.

‘취리히(Zurich)’오페라단의 상임지휘자였던 ‘페르디난트 라이트러(Ferdinand Leitner)’는 브람스의 음악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브람스의 음악이 시간을 초월해 끊임없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고독감 때문이다”

그러면서 “브람스 역시 외로운 사람으로 이런 점이 그의 음악 속에 나타나고 있기에 고독을 함께 나눔으로써 사람들은 브람스의 음악에 위안을 받는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 3악장에서 느끼는 우울한 분위기와로맨틱한 감성에 젖는 우수는 특히 이수(離愁)에서 폴라의 고독감을 짙게 부각시키며 명장면들을 연출해냈다.

브람스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로맨틱한 애수를 최대한으로 표현한 이 멜로디는 극중(劇中)에서 역시 ‘조르주 오릭’의 편곡에 의해 ‘다이안 캐롤’이 부른(Say more It's Gooday)라는 노래도 흘러나온다.

계절이 가고, 청춘이 가고, 우수에 젖고….

이수(Good bye Again)에서 우리가 듣는 브람스의 음악은 명장면들과 함께 덧없는 인생과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허무와 슬픔과 적막감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비애는 산산이 부서지는 인생의 슬픔도 있으려니와 이를 감상하는 이들의 내면을 잔잔한 평화로 안내하며 이끌어 주기기도 한다.

이슬처럼 사라졌다가 어느 사이엔가 다시 영롱하게 맺혀 빛나듯 소멸과 부활을 반복하는 우리의 삶과 같이 사랑, 이별, 눈물을 자아나게 하는 본능적 감각들을 압도하고 있어 오래전 접혀있는 낡은 책장처럼 거기 그대로 기억 속에 얹어있다.

이수(Good bye Again)의 명화가 잔잔한 감동으로 오래도록 명장면들과 명곡들이 머무는 것은 인생의 명암이 확연하게 드러나 모두를 사색하게 하는 이 가을, 쓸쓸하고 허전하게 방황하는 우리의 가슴속을 깊게 파고들어 텅 빈 여백을 채우는 여운이 오래도록 머물러있어 아련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