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감미로운 사랑, 죽음으로 귀결하는 안단테
[평론] 감미로운 사랑, 죽음으로 귀결하는 안단테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0.11.02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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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라’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영화 ‘엘비라(EIvira)’는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m) 감독 이후 스웨덴 영화를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린 비련의 명화로 명성을 얻어 유명하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 C장조, 제2악장에서 안단테를 사랑의 테마로 삽입해 영화의 매력을 한층 가미하고 있는 명화 ‘엘비라’는 첫 장면부터 아름다운 화면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창공에 줄을 매고 흰 드레스를 입은 17~8세의 소녀가 푸른 하늘 창공에서 너울너울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며 기뻐하는 그녀 이름은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피아데게르 마르크 역)

스웨덴의 귀족이자 육군 중위인 ‘식스텐 스파레(Sixten Sparra)’ 백작 (토미 베르그랜 역)은 처자식이 있으면서도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비천한 신분의 아가씨 엘비라 마디간과 사랑에 빠져 사랑의 도피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를 알아챈 왕궁에서 뒤를 쫒는 근위병들에게 식스텐 백작은 궁지에 몰리게 되며 엘비라 역시 서커스단 단원들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지만 둘은 두려움 없이 사랑하나를 의지한 채 산속을 향해 도주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두 연인의 안식처는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근위병들은 그들의 거처를 탐색하면서 시시각각으로 점점 포위망을 좁혀 밀고 들어온다.

더욱이 엘비라가 착용한 비단주머니에는 돈이 떨어져 비어있고 식스텐 백작의 금박 돈지갑 역시 이미 비상금을 모두 사용해 텅 빈 곤경에 처해있는 상태로 쫒기는 상황들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근위대의 한 장교가 아무도 몰래 군대를 탈영한 백작을 찾아와 간절하게 설득한다.

“백작님, 어떻게 백작님처럼 신분이 높으신 분이 저런 하찮은 젊은 광대의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묻자 “나는 엘비라를 사랑하고 있네. 그래서 우리가 단둘이 살 수 있는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겠네. 다시는 나를 찾지도 말고 만났다고도 하지 말게”라면서 둘은 더 깊은 골짜기의 산속으로 은거해 들어간다.

그들은 쫒기는 몸으로 열매와 꽃잎을 따먹으며 얼마간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오후쯤 “뭘 생각하고 계시는 거지요, 집 생각? 아니면 부인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이제 돌아가고 싶어졌나요?” 이렇게 지나치듯 엘비라가 백작에게 묻는다.

“아니 괜찮아, 난 엘비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집을 버리고 나와 버렸으니까. 그리고 군대에 오래도록 있었기에 잘 알아. 총검이 사람을 쏘고 찌를 때 나는 그것들 하나하나 방어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 무엇에도 나는 철저하고 싶어”

“그리고 이제 자유롭고 싶어,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지내는 생활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처자도, 귀족이라는 신분도, 높은 계급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만 너와의 사랑에 목숨을 바치고 싶을 뿐이야”라고 엘비라를 위로하며 마음속 다짐을 거듭한다.

스스로 사랑을 선택한 탓으로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게 된 식스텐 백작에게 걱정스러운 엘비라는 솔직한 심정으로 헤어지자는 속뜻을 갖고 말을 건네나 백작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이런 백작에게 어느 날, 또다시 남몰래 찾아온 근위병 부하 하나가 식스텐 백작에게 “최후의 전갈을 알리려 왔다”며 결의에 가득 찬 얼굴로 명령을 전달한다.

“백작님, 이 금화를 받든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왕국에서 사라지라는 폐하의 분부이십니다”라고 말하며 돌아간다.

순간 백작은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엘비라가 허리를 굽히고 나비와 함께 입으로 꽃잎을 따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비가 날고 새가 우짖는 들판은 온통 유채꽃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함마저 자아낸다.

그들 둘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빈주머니로 어려움을 버텨가면서 서로 사랑만을 의지한 채 열매와 꽃잎만을 따먹으면서 벌써 오랜 날들을 자연 속에서 버티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중이다.

명화의 중요한 명장면과 주요내용은 지금부터 전개된다.

점점 좁혀오는 근위대에게 쫒기는 신세로 군대를 탈영한 식스텐 백작은 포위가 가까이 좁혀왔음을 눈치채고 돌이킬 수밖에 없는 사랑 아니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상태에 놓여 이를 결정해야 하는 다급함에 처한다.

무엇보다 죽음을 명령받았다는 사실로 상실감은 되돌릴 수 없는 고통과 어디로 도망칠 수 없는 돈과 포위에 처한 식스텐 백작의 크나큰 압박감은 이제 대단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심정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가엾은 엘비라는 백작이 돌아가면 오갈 데가 없는 신세로 온갖 고초와 시달림을 겪게 되는 괴로운 상황은 너무나 뻔해 곳곳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투사되며 무거운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그녀는 이미 백작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영상에서 백작의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을 담아내는 동시에 엘비라의 티 없고 순수한 모습들을 중첩해 슬프고도 애절한 영상미를 그려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나누는 애정을 초월하는 이 에로스적인 사랑의 미(美)는 보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고 사로잡아 이들이 나누었던 지난날들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의 관계를 관람객 스스로 줄거리의 진행을 이어가도록 유도하는데 감정의 충만함을 적시게 한다.

얼마간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시간이 흐른다. 유채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나비와 새들이 서쪽 석양에 붉게 물드는 낙조와 함께 저 멀리 아스라한 지평에 평화스런 화면이 정지한 채 오래도록 머문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시간, 식스텐 백작은 엘비라와의 동반 죽음을 마음속으로 결심하고 사랑의 종착을 끝내야 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비통해한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엘비라를 격렬한 몸짓으로 껴안은 백작은 얼굴을 부비며 권총을 꺼내들고 사랑하는 엘비라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한발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총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바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서도 총탄을 날리며 엘비라를 껴안은 채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유채꽃밭에서 영원한 안식처에 쓰러지며 사라진다.

감미롭던 둘만의 사랑은 결국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오래도록 잊지 못할 세기의 지상에 아름다운 별빛으로 남아 잔잔한 감동을 머물게 한다.

티 없이 순수한 소녀의 사랑과 완벽을 꿈꾼 백작의 조화

이 명화는 1890년대 말쯤에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1967년에 스웨덴에서 제작돼 초미(焦眉)의 관심을 끌며 우리나라에서도 1972년 개봉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것은 ‘자유의 감각’과 ‘절망의 감각’이 초현실적인 감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줄거리에서도 충분히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망막에 집중돼 이어진다.

백작과 서커스단원의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있어야 하는 카테고리를 극대화하는 이마쥬는 영화의 미학을 한층 끌어올리는데 미려한 예술성과 영상미를 보여주고 있다.

필름에서 확장되는 장면마다 느낌과 감동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짧은 사랑의 속삭임은 단순히 비극적인 스토리의 전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무한성에 대한 감각적 행각의 표현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일차적인 사랑의 결말을 단순한 영상에 비치는 시안(視眼)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인간의 마음 깊은 아상(衙上) 의식에 자기애식(自己愛式)을 감미하고 있다는데 인상적이다.

사랑의 영혼과 함께 신비의 꿈을 찾는 사랑의 근본적 기저에 직결된 카테고리를 연결하는 기법은 영원함을 기원한 메가폰을 잡은 탁월한 감독의 예술성이 깊이 있는 아름다움으로 충분히 승화돼 빛나고 있다.

이를테면 이 명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보이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랑이 갖는 심연(深淵)한 골짜기에 다다르면서도 사랑의 불가시적인 피사체 속으로 보는 이들의 감성을 파고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백작의 현존재가 자신의 죽음과 관계해 이미 죽음의 느낌을 받을 때마다 무의(無儀) 속에 들어가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그 존재자의 초월성을 제시한다고 보여진다.

그는 존재의 시간에서는 탈(脫) 존재를 본질로 현존재가 이미 존재의 개시성에 의해서 드러나는 모든 존재자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과 관계하는 불안을 통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도 그 존재자의 불안 속에서 드러나는 무(無)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이 다가올 죽음과 관계하고 있는 저마다의 현존재(現存在)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을 때부터 갖기 시작하는 무에서 비롯된다고 해석돼 진다.

스웨덴의 젊은 감독 보 비더버그(Bo widerberg)는 북구 특유의 이 비극적인 소재를 유려하게 영상에 담아 전 세계에 스웨덴 영화를 알리는데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간절히 요원할 것 같았던 로맨틱하고 덧없는 러브스토리에서 큰 여운을 남기며 주연을 맡은 신인 여배우 피아테게르마르크(엘비라)는 이 영화에서 신선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열연해 당시 칸느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특히 ‘엘비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과 함께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 C장조 제2악장 안단테를 잊지 못할 것이다,

모차르트는 모두 27편의 피아노협주곡을 썼지만 그 중에서도 제21번, C장조는 아름다운 서정으로 유명한 악장을 안단테로 모차르트의 전(全)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곡이 됐다.

사랑의 테마로 영화의 전편을 통해 되풀이되면서 가냘프게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 그토록 그윽한 선율로 하여금 유명매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았으면서도 불구하고 스웨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어냈다.

당시 ‘엘비라’가 상영된 후 레코드 판매실적이 몇 배씩이나 늘어 화제가 됐을 만큼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은 영화예술에 의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려지는 최대 스케일의 시네마 클래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엘비라 마디간 이라는 소녀의 티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얼마나 완벽하게 모차르트의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고 사랑을 속삭였는지 관람객의 감동을 불러내기에 압도적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때문에 더욱 빛났던 명화 엘비라,

지금도 명화리스트에 항상 손꼽히는 명화 중 하나로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을 그린 스크린의 대서사시로 스웨덴의 젊은 귀족 식스텐 스파레와 서커스단원 처녀 엘비라 마디간의 비극적인 정사(情死)로 막을 내리는 감동의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화를 통해 비춰졌던 그들의 사랑은 지금도 세계의 뜨거운 청춘 속에 불사조처럼 살아있다.

그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선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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