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충남 금산출신 희곡작가 고(故) 임희재는 누구였나?
[평론] 충남 금산출신 희곡작가 고(故) 임희재는 누구였나?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0.11.13 0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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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아씨로 명성 얻어
금산이 배출한 한국 예술사에 선 굵은 예인(藝人)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프롤로그

“희곡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영화인 임희재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잘 모른다고 하는 이가 많은 것은 금산에 사는 사람들조차 누구인지를 모르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에겐 생소하고 처음 들어보는 인물일 것이어서 묻는 것조차도 어색할 정도로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작가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50세쯤 된 주변인들에게 ‘마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을 비롯해 특히 동양방송(TBC)에서 방영하던 일일드라마 ‘아씨’를 이야기하면 아! 하고 감탄하며 많은 이들이 그때 그 장면들을 떠올릴 것이다.

지난 60년대 흑백영상을 거쳐 70년대 안방의 TV 앞에 컬러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눈을 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빼놓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시청하던 드라마가 바로 ‘아씨’다.

이 드라마는 TBC TV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유명세를 탔던 일일드라마로 당시 ‘아씨’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며 대한민국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떨쳐 이를 아는 대중들은 뇌리에 흐릿하게나마 남아있어 기억할 것이다.

TBC 인기 드라마 '아씨' 포스터.

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편소설로 주요섭 원작에 임희재 각본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지만 감동을 주기까지 누구의 각본으로 유명해졌는지 이 또한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마부’, ‘연산군’과 함께 이 역시 임희재 선생의 각본으로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가 됐던 사실은 너무나 크나큰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어 금산을 널리 알리고 빛낸 인물로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작가들 몇몇은 지난 2000년 금산에서 몇 년간을 추진했던 고(故) 임희재문학제를 개최할 당시로 시계바늘을 되돌려보며 헤아려보자니 먼길처럼 까마득하고 안개마냥 희뿌연 하다.

우리 몇몇은 2001년 세모(歲暮)를 보내며 새로운 결의에 찬 모습으로 금산버스 터미널 인근 다방에 둘러앉아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금산이 낳은 희곡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또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인으로 일관했던 고(故) 임희재 선생의 추모 문학제에 대한 토론과 함께 문학제를 추진하자고 하는 논의의 자리였다.

당시 금산문인협회장을 맡고 있던 임영봉 회장(시인)과 필자(대전충남창작실험예술제 대표)가 운영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공동 운영위원장으로 위촉돼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는 등 행사를 주최하는 측으로서 모든 일정과 밑그림이 되는 콘텐츠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뜻을 같이하고 초대에 동참을 해주신 당시의 조직구성으로 자문위원은 안영진 원로언론인, 고(故) 임강빈 원로시인, 고(故) 오완영 국제펜클럽대전지회장, 최문희 원로시인, 리헌석 대전문인협회장, 장덕수 원로연극인, 김홍석 작가 등과 금산예술인들이 힘을 보태어 열의를 더했다.

더욱이 인삼의 고장 금산이라는 지명도에 걸맞게 출생지인 금산이 배출한 선굵은 걸출한 예인을 떠올리며 앞으로 그의 고향으로서 추진해야 할 문학적 당위성과 사업을 모색하는 자리가 시발점이 됐다.

주된 내용으로는 고(故) 임희재 선생의 문학적 소양과 영화인으로서의 재조명이 절실하다는 공동의 입장을 같이하고 선생의 자료정리와 예술작품들의 연구는 물론 매년 임희재문학제 개최와 행사로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자는 뜻에 의미를 같이하며 동의했다.

따라서 임희재문학제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매년 개최되는 임희재 선생에 대한 문학제를 효율적으로 영화와 문학예술 세계를 다시 정립하고 기록한다는 세부계획안을 마련하고 유품전시와 공연무대까지 다양한 준비를 체계화시키는데 일치했다.

임희재문학제운영위원회에서 추진할 사안으로 우선 얼개를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중장기 계획을 담고 있었다.

1, 임희재 선생 문학제운영위원회 결성

2, 임희재 선생 작품 전집 간행 추진

3, 문학비 건립추진

4, 생가터 표지석 설치 및 복원 보존 대책

5, 임희재 선생 기념관(문학관, 영상자료관) 건립추진

6, 임희재 선생 추모 전국창작예술제 및 영화제 상영

7, 임희재 선생 문학작품상 시상제도 도입 등등이 주요 사업개요였다.

이러한 주요사업을 개진하고 실행하는데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같이 어려움이 따를 수 있으나 시작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다는 이유는 ‘예술은 인류역사를 통해 언제나 위대하고 아름다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기에 추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임영봉 회장과 필자는 그런 마음을 굳히고 시간을 쪼개 대전, 금산을 어지간히 오가며 발품을 팔고 지치면 막걸리로 목을 축여가며 설왕설래(說往說來)하던 때가 주마등처럼 덧없이 스친다.

고(故) 임희재 선생.

희곡작가 고(故) 임희재(任熙宰 1919~1971) 출생과 활동기록

문학가, 극작가, 시나리오작가, 영화인으로 다양한 작품과 왕성한 활동으로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고(故) 임희재 선생은 1919년 1월22일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609번지에서 부(父) 임헌준 풍천임씨 헌준(豊川任氏 憲準), 모(母) 임상방(平澤任氏 三房) 사이에 독자로 태어났다.

1938년에 이리농림학교(裡里農林學校)를 졸업하고 1939년 니혼대학(일본대학) 법과에 다니다가 중퇴했다. 1944년 인쇄회사 미곡창고회사에 근무하다 1945년 해주(海州)에서 극단을 조직해 연극 활동을 전개했고 같은 해 그곳에서 이덕자(李德子)와 결혼했다.

이후 월남해 중학교 교사와 신문기자 등을 거치는 동시에 한편으로 소설과 희곡수업을 했다.

그는 6·25전쟁 중 대전에 머물면서 극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1955년 1월 단막극 기류지(寄留地, 조선일보)로 데뷔한다.

이어 계속해서 ‘복날, 현대문학(1956)’, ‘무허가하숙(無許可下宿)집, 문학예술(1956)’,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극단 신협 공연)’, ‘고래, 현대문학(1957) 등을 발표했으며 미발표작 ‘모의자살(模擬自殺)’이 있다.

1959월 현대문학사에서 주최해 수여하는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1960년대 이후에는 희곡 대신 영화대본과 방송극을 발표하며 1971년 3월30일 텔레비전 인기드라마 ‘아씨’를 쓰는 도중 사망할 때까지 수십편의 시나리오와 라디오, 텔레비전 드라마를 창작했다.

선생의 작품성향 줄거리 들여다보기

6·25전쟁을 겪고 50년대 중반 극작가로 데뷔한 임희재는 전쟁이 남긴 폐허와 절망 속에서 상처를 입은 채 지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상들을 극화하는데 열정을 다한다.

그의 작품 중 ‘복날’, ‘고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 등은 모두 대전의 변두리를 중심으로 상황 전개와 배경을 담아내고 있다.

우선 ‘복날’의 작품은 6·25전쟁 직후 장마철에 든 어느 중복 날 벌어지는 철거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다.

무대는 시장(市長)집과 철거민의 노숙(露宿) 장소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며 곤비한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낸다.

시장 댁에서 기르는 덩치가 커다란 세퍼트가 약을 먹고 죽은 쥐를 먹음으로써 집안이 온통 우울한 분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이야기 내용 중에서 철거민들은 월남피난민으로 정착과 호구(糊口)가 급박한 사람들로 강제철거까지 당해 삶의 터전을 잃은 댓가로 살 길을 마련해 달라는 항의로 이어간다.

무허가 판자집들은 도시계획에 의해 여지없이 쓸려가 버리고도 철거민인 이들에게는 이렇다 할 대책도 없다. 시장 집을 찾아간 이들은 그들의 요구가 묵살당해 낙담한 채 돌아서며 다만 그들을 물어뜯던 세퍼트가 쥐를 먹고 죽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죽은 쥐를 시장 집에 던져놓은 것은 철거민들이었다. 그 죽은 세퍼트를 산으로 가지고 가서 땅에 묻자 몇 명의 철거민들은 당장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 세퍼트를 파내어 동네에 가서 요리를 해먹기로 결심한다.

장마가 지고 있는 여름 복날 철거민들이 요리를 해먹은 결과는 참혹하게 죽음을 불러온다.

철거민들이 개가 묻혀있던 산으로 가서 세퍼트를 파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장 자녀와 비서들은 경찰에 고발조치 하겠다고 철거민들의 노숙 장소를 찾아가지만 그때는 이미 개고기를 먹은 철거민들은 하나둘 쓰러지며 죽어간다.

이 상황을 목격한 시장 자녀와 비서는 도리어 죽어가는 철거민들을 등에 업고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내용으로 줄거리를 이어간다.

또 다른 작품 ‘고래’는 철거민들의 비극적인 삶의 애환을 그린 ‘복날’이란 작품과는 달리 철거민을 다루면서도 비교적 희망적인 측면을 조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무대는 대전의 용두동에 위치한 피난민수용소로 무허가건물 철거민들을 입주시키기 위해 시 당국에서 제공한 황무지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한 택지의 소유권을 놓고 두 남녀(고래와 황주택)가 벌이는 싸움을 묘사한 작품이 ‘고래’이다.

남자주인공 ‘고래’는 처자를 남겨두고 월남한 어부출신이며 ‘황주택’이란 인물은 강인한 주모로 등장한다.

이들은 집터를 놓고 사생결단으로 싸움을 하고 있으나 속마음으로는 서서히 사랑을 느껴가는 감정으로 발전하게 되며 고래가 결국 정식으로 청혼을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들은 고통스런 삶을 강인하게 이겨내는 인물들로 묘사해 삶에 대해 강렬한 의욕을 부각시켜 나가며 안정적인 한 자족의 평화와 행복을 부여하고 있어 ‘복날’의 주인공들처럼 소극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것과는 달리 ‘고래’의 주인공들은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반면을 그려낸다.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이중구조

희곡작품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는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무허가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체적으로 현대적인 인물들을 표방하고 있으나 인생의 패배자들로 화자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무능한 데다가 업무착오로 거액을 물어야 하는 동회장(洞會長)의 옆방에 기거하는 철도극원(한창원)과 그를 좋아하는 후처(영애), 그녀의 이복동생으로 타락한 영자 등의 인물이 나온다.

또 전쟁으로 실명한 상이군인(박형래), 낙선 민의원(이 선생), 퇴직군수( 송 선생) 그리고 자기가 운전하는 기차로 약혼녀를 죽인 철도원 등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정상적인 인물들이 아닌 비정상적인 인물들로 나타낸다.

복잡한 등장인물 가운데서 주인공은 전쟁으로 인해 전락한 사람들 중 김영자라는 인물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그날그날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동회장(윤시중) 집에 그의 처제인 김영자가 찾아옴으로써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전된다.

이유는 김영자는 실명한 상이군인이 찾는 아내인데 다가 같은 이름의 여자를 어떤 포주가 거액을 신문에 광고를 내걸고 찾고 있다.

게다가 그녀의 언니가 좋아하는 철도원이 그녀에게 급속도로 애정을 갖고 사랑에 빠져들어 간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전개되는 까닭은 김영자가 과거를 일체 밝히지 않고 있는 데다가 실명 상이군인의 아내임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남편인 실명 상이군인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흑인병사와 혼혈아까지 낳은 양공주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풀어놓는다.

한편 형부인 동회장을 위시한 낙선 민의원 등 인생 낙오자들은 그녀를 매개로 돈을 벌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그들은 포주가 찾는 여자가 김영자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있는 김영자는 철도원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그녀의 실패한 인생을 다시 한번 기회를 걸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 건강한 남자에게서 전쟁의 상처를 씻어 보려고 하나 그녀의 최후의 희망도 무산되고 그녀의 남편인 실명 상이군인이 그녀를 드디어 발견하게 되는 데다가 철도원마저도 과거가 있는 남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 구조 속에서 돈에 혈안이 되어있는 형부인 동회장은 사기당한 돈을 메우기 위해 김영자를 일백만원을 걸고 찾고 있는 포주에게 거처를 알려준다. 그러나 그녀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모든 것에 실패한 그녀는 형부집을 떠난다. 그녀가 떠나자 그녀의 남편이었던 실명 상이군인도 자살을 하고 만다.

이와 같이 임희재는 전쟁의 상흔에 실명한 남편과 인생의 타락으로 전락한 아내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서민의 애환과 곤비(困憊)을 보여주고 있어 황폐화된 대지 위에 철거민의 생존방식과 그들을 죽음을 극화해 또 다른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최고의 인기연속극 원작 ‘아씨’ 작품 이해

일일연속극 ‘아씨’는 1970년 3월부터 1971년 1월 그가 사망 직전까지 방영됐던 화제작으로 252회에 걸쳐 TBC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면서 방영됐던 연속극으로 전성기를 열었던 원작자가 바로 임희재 작가였다.

주지하다시피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서 지면을 고려해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아씨’는 역사의 격동기에 바람둥이 남편의 학대와 이혼 강요에도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던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을 그린 내용이다.

이때 당시 몇몇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김희준’은 이 드라마로 인해 스타가 되는 계기가 됐고 ‘김세윤’, ‘노주연’ 등의 출연자들도 많은 인기를 얻으며 화제가 돼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선생은 희곡 창작극에만 그치지 않고 ‘초설’, ‘종전차’, ‘산하금지’ 등의 시나리오와 텔레비전 연속극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주로 묘사되는 작품들의 성향들은 6·25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도시의 모습들과 인간들의 생존양상을 다루는 죽음, 배신, 절망, 사랑에 이르기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세계를 펼쳤다.

에필로그

우리가 살아가면서 옛글이나 고전을 읽고 느낀다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그들의 사상과 의식을 같이하며 정신을 올곧이 갖는다는 의미는 그 뜻이 일맥상통하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요원하지 않아 이승에 없으나 그들의 훌륭한 작품들이 남아서 후인을 가르치는 위대함은 어떤 정치가 보여주며 어떤 경제적인 부유가 이런 역할을 했는가하고 자문해 보게 된다.

우리 지역에 살고있는 예술인 모두는 제 몸을 태우는 촛불의 위대함을 항상 가슴에 담고 문학적 용기와 행동을 실천하는 의지를 아로새길 때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남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우공(禹公)의 펜을 잡는 오늘을 우리 모두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지역 예술이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로 미래로 도약하는 발판에 기꺼이 마중해야 할 일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2016년 금산을 빛낸 인물로 금산향교 앞 금산 역사거리에 ‘승당 임영신’과 ‘옥계 유진산’ 그리고 ‘희곡작가 임희재’ 선생 동상이 어렵게 만들어 세워졌다.

길이길이 그들의 흉상이 지역을 지키고 빛내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영원하길 또 그래서 창대하길 희구하며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개삼터공원에서 열리는 임희재문학제가 거듭 발전하길 기원해본다.

마지막으로 임희재 선생의 시비에 음각(陰刻)으로 쓰여 있는 드라마 ‘아씨’의 주제가를 적어본다.

‘아씨’

임희재 작사

옛날에 이 길을 꽃가마 타고

말 탄 임 따라서 시집가던 날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 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 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 대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고(故) 임희재 선생의 문학비.

희곡작가 고(故) 임희재(任熙宰, 1919~1971) 연보(年譜)

▲1991년 12월22일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609번지 출생

▲1933년 금산공립보통학교(현 금산중앙초) 19회 졸업

▲1933년 이리농림학교 입학

▲1938년 이리농림학교 졸업

▲1938년 금산군청 근무

▲1939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법과 중퇴, 동양음악학교 중퇴

▲1944년 인쇄회사 마곡창고회사 등 근무, 결혼

▲1945년 해주(부친 근무지)에서 극단 조직

▲1947년 금산농고 교사, 중도일보 기자 활동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기류지(奇留地)’ 당선

▲1995년 ‘복날’, ‘무허가하숙집’, ‘고래’ 등 공연

▲1956년 ‘제작극회’ 창단

▲1956년 ‘여성계’ 주간

▲1956년 2월23일~29일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 극단 신협 공연

▲1957년 시나리오 작가협회 연구 간사

▲1958년 현대문학 신인상(희곡부문) 수상

▲1958년 ‘고래’ 신협 공연

▲1960년 한국영화이사회 시나리오 작가상 수상

▲1960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연구 간사

▲1961년 ‘마부’ 제1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특별심사 은곰상 수상

▲1961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각본 발표

▲1962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원작, 임희제 각본) 제1회 대종 상 영화제 각본상 수상

▲1963년 극단 ‘산하’ 운영위원

▲1963년 ‘잉여인간’(손창섭 원작, 임희재 각색) 공연

▲1964년 ‘혈맥’(김영수 원작, 임희재 각색) 제3회 대종상 영화제 각 본상 수상

▲1970년 3월~1971년 1월 일일드라마 ‘아씨’ 극본(동양방송 방영 253회분)

▲1971년 3월0일 사망(경기도 파주시 기독교 공원묘지 안장)

▲2001년 12월12일 제1회, 임희재문학제 개최 (운영위원회 결성, 임영봉 시인(금산문인협회 회장), 류환 시인(대전충남실험예술제 대표) 공동 운영위원장 위촉

▲2002년 10월25일 제2회 임희재문학제 개최

▲2003년 12월30일 제3회 임희재문학제 개최

▲2004년 12월28일 제4회 임희재문학제 개최

▲2005년 충남 금산군 금산읍 비호산 임희재문학비 건립

▲2005년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작가 임희재 생가터비 건립

▲2005년 12월20일 임희재추모문학제 조직구성원 16인 구성

▲2005년 12월30일 제5회 임희재문학제 개최

▲2005년 12월 한국대표영화인 100인 선정(시나리오 부문상 수상)

▲2006년 12월28일 제6회 임희재문학제 개최

▲2020년 현 금산문화원에서 임희재문학제 개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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