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날개와 헤라의 질투
이카루스의 날개와 헤라의 질투
  • 김창견 기자
  • 승인 2020.12.03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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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뉴스봄] 김창견 기자 = 인류의 역사는 종종 되풀이되듯 현재진행형으로 데자뷰 현상을 연출하고 있다.

유사 이래 수천년 전 신화 속 이야기거나 인류의 시간적 궤도에서나 이러한 현상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지없이 유사성으로 되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민중의 의지와는 관계없다. 소위 위정자의 욕망에 휩싸인 바람에 민중은 그저 흔들려 쓰러질 듯 휩쓸려 갈 뿐이다.

여기 하얀 날개를 펴고 한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다. 이카루스다.

그런데 이카루스의 항로가 위태로워 보인다. 태양에 가까운 고도로 솟아오른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얄밉게도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고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그에게 누군가 불화살을 쏘아댄다.

헤라의 질투다.

헤라는 자신에게 향해야 할 민중의 환호가 온전히 이카루스에게 쏠리는 것이 여간 심정 상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이카루스는 이미 자신과 대등한 위치를 점하더니 이윽고 자신을 추월한 모양새다. 그렇기에 헤라는 물러설 수 없다.

이카루스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질 줄 모르는 민중의 지지도도 헤라의 시선엔 감히 이미 잠재적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자신도 끓어오르는 질투를 삭일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섰다. 자칫 삐끗하는 날이면 이카루스가 아닌 자신이 바닷속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엄습하는 까닭이다.

이카루스도 언젠가부터 자신을 주시하는 차가운 시선을 느낀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던가? 자신의 본분을 명확히 알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이상적인 고도를 유지하는 이상 그 누구의 눈치도 볼 이유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헤라는 결국 이카루스를 겨냥한 활의 시위를 놓고야 말았다.

필자의 지인 중 경자년(庚子年) 이후의 대권은 ‘칼잡이’가 잡을 것이라고 예언한 이가 있다.

칼잡이란 표현이 다소 애매하지만 현대적 표현으로 군인, 외과의사, 검사 등등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면 쉬 이해된다.

그래서일까? 윤석열이란 이름이 유독 눈에 띈다. 더욱이 야권에선 뚜렷한 주자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야(正也)라고 답한 공자의 말처럼 민중을 바르게(正)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시적인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이가 또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이심전심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공통된 시선일 것이다.

굽히지 않는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4> 현학 시상(詩想)

기억

골삭은 뼈마디에 흙으로 새살 돋는 난

세상의 기억 지워진 지 이미 오래라네

삶이란 그렇게 빠르기만 하던데

기억하는 이들에서 가끔은 그리움으로 돋아날까?

 

아직은 기억되지 않은 기억을 위하여

오늘 어떻게 살았던가?

가슴 저미는 아픔 기우로 차오르면

저만치 이른 낮달처럼 그림자 서성인다

 

누군가 말하였다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스크래치 가득한 흑백 필름의 스크린

그녀도 이제는 가고 없네

 

아지랑이

분홍빛 연바람에 생기 돋는 봄날

아른아른

몸단장 화사하게 살포시 다가오는 그녀

 

소쩍새 먼 울림에 장단 맞춰

나긋나긋

춤사위 펼쳐놓고

 

다가서면 저만치 달아나

살랑살랑

어서 오라 손짓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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