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소처럼 우직하고 강인하게…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소처럼 우직하고 강인하게…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1.01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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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뿔도 단김에 빼듯’ 코로나19 종식 기대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0, 경자년(庚子年)을 뒤로하고 2021,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는 모든 것이 순탄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재해로 큰 충격을 안기는 가운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는 한해였다.

국내도 잡음은 각계각층 곳곳에서도 파열음을 내며 우려를 낳고 있어 애환을 달래야 하는 서민들의 근심과 불안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이를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이 또한 극복도 가능하다는 판단도 든다.

세상이 두렵고, 무섭고 위험하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럼 현재 나는 편안하게 지낸다는 의미에서 고민해보면 정치인들의 짓거리 외에 그나마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체감해 다소 경제적인 불편은 따르지만 그런대로 감투를 쓴 사람들이 잘만해 주면 견딜만 하다는 뜻이다.

다행이 코로나19는 이를 물리칠 백신이 개발돼 접종을 시작한 만큼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사태는 방역규칙과 안전수칙을 지켜간다면 이 또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장기화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다행스런 짐작이다.

더불어 신년을 맞는 새해는 보다 희망적인 신념으로 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하게 힘들더라도 짐을 실은 우마차처럼 언덕길을 올라 전진해 나아가 꼭대기에 다다르는 인내를 갖는다면 희망은 머지않아 푸른 파도 위 수평선에서 찬란한 햇빛처럼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게 될 것이다.

이처럼 뒷걸음을 치지 않는 우직하고 강직하게 앞만 보고 전진하는 소는 우리 선조들의 삶과 일상 속에서 늘 함께한 친근하던 가축이었다.

올해 소의 해를 맞는 신년 아침에 소(丑)를 그려보며 이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소의 이로움을 들여다본다.

2021년 소띠의 해를 맞아, 충남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 한 축사에서.
2021년 소띠의 해를 맞아, 충남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 한 축사에서.

소의 상징

소(丑)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한 해이다. 소띠는 을축(乙丑), 정축(丁丑), 신축(辛丑), 계축(癸丑)의 순으로 육십갑자에 순환한다.

십이지의 소는 방향으로는 북북동, 시간으로는 새벽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여기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씨앗이 땅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며 소(丑)는 참고 복종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찬 기운은 스스로 극복된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농사와 소

예부터 소는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조력자이자 농부의 우직한 벗이며 재산의 목록으로 근면과 우직함을 대표한다. 성품이 사납지 않고 순종하며 성실해 말없는 12가지 덕이 있다고 해 그만큼 친숙하며 소중한 가축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소다.

또 생구(生口)라 하여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처럼 쉽게 취급했던 것도 우리 민족이 소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일면이라 하겠다.

농사가 중요한 생업이었던 시절 소는 그 힘의 사용 즉, 축력의 사용에 있어서도 요긴한 동물이었다. 오래된 농기구들을 보면 우리 민족이 소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소가 이끄는 힘을 이용해 땅을 파고 뒤집어 비옥하게 만드는데 쓰이는 쟁기, 씨 뿌릴 골을 파거나 흙을 읽어 논밭을 고르는데 쓰는 써레, 소등에 얹어 쓰던 기구로 거름 등을 싣는 옹구 등은 모두 소를 이용한 농기구로써 조상의 지혜와 농사에 참여한 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밖에 벼, 보리, 조, 수수 등의 곡식을 찧기 위해 소에 메어 울판을 돌리는 연자방아와 짐을 실어 나르는 수레에도 소는 유용하고 중요하게 이용됐다.

지금은 모든 것이 현대화됐지만 전통사회에서 소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최고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농사일의 주역이었다.

소띠의 특징

소띠에 태어난 사람들은 과연 소를 닮았을까?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끈기 있게 꾸준히 노력해 성공을 만드는 사람 중에 소띠태생이 많다. 이것은 바로 소띠들의 공통점이 근면과 성실함이다.

그러나 고집이 대단해서 그야말로 황소고집이라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의 주장대로 나가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는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사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고독한 것이 소띠들이고 일을 위해 태어나 일을 하다 죽는 것도 소띠이다.

그러나 겨울 소띠는 팔자가 편하다. 그늘에 누운 여름 ‘소 팔자다’라는 말처럼 시절만 잘 타고나면 일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뜻에서 부르는 말이다.

이것은 일복이 많은 소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또한 소는 둔한 것 같으면서도 신나는 일에서는 ‘쇠뿔도 단김에 빼듯’ 침식을 잊고 해내지 않으면 몸살을 앓는 것도 소띠들의 공통점이다.

한번 마음 먹었다하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해내는 사람역시 소띠들이다. 그래서 한번 화가 났다하면 자신의 감정을 조정하지 못하고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드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강자에 강해서 강가에게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인정과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선농제

소는 풍요를 상징해 제의에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경칩 후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를 지냈다. 이는 소를 제물로 사용하고 왕이 직접 밭을 가는 모습을 보여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는 나라의 행사로서 행사가 끝나면 제물로 사용한 소로 탕을 끓여 백성들과 나눠먹었다.

이 음식이 설렁탕인데 이름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세종대왕이 친경하는데 호우가 왔다. 선농단에 발이 묶인 왕과 신하들은 배가 고팠고 친경 때 쓰던 소를 잡아 끓여 먹었다. 이후 선농단에서 끓여 먹었다해 이 음식을 선농탕 이라고 했고 오늘날에 설렁탕이 됐다고.

황소의 우람한 기운.

소와 관련된 유물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서 우리는 다양하게 묘사된 소를 볼 수 있다. 벽화속의 소는 여물을 먹는 모습, 가마나 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 농사의 신으로서의 모습 등 일상 속에서 활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에 이미 농경에 소를 꾸리는 우경을 시작했고 우차를 사용했다는 것을 잘 알게 한다.

청동기에 12지상 중에서 우리는 소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의 몸에 동물의 머리를 하고 앞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 섬세한 제작기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토우 가운데서도 소가 남아 있다.

길게 뻗은 뿔이 물소를 연상케 하는 소는 떡 벌린 앞뒤 발과 돌진하듯 숙인 머리가 강인하고 저돌적인 인상을 준다. 현실적인 효율성 외에도 소는 선비의 시문, 그림, 도가 등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은 도가적인 이상세계를 동경하며 그러한 성향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소를 특별히 사랑받는 동물로서 자주 등장시켰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농촌풍경이지만 여유로운 일상이 묻어나는 그림 중에 김홍도의 ‘경작도’는 쟁기를 끌고 가는 황소와 농부, 개, 나무아래서 정담을 나누는 노인들의 정다운 모습이 잘 표현됐다.

행동은 더디지만 묵묵하게 주어진 일을 하고 세상에 흔들림 없이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이 하나의 귀감으로서 어필했던 것이다. 소의 형상은 금속 공예품인 제기에도 나타나는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동물이었다.

놀이와 소

고된 일상이지만 한바탕 축제의 장으로 승화되기도 하는 농사, 농경문화의 하나로서 정월대보름과 추석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소싸움 놀이는 소의 근기와 힘을 겨뤄 승자를 가리는 민속으로 풍년을 염원하며 행해지는 한 바탕의 축제이다.

세계적으로 투우를 통해 축제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의 소싸움은 천년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평산 양주 일대에서 전승되는 투우 관련 민속에 소놀이굿이 있다.

소놀이굿은 풍농과 집안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해졌으며 일명 소 놀음 굿, 소 굿, 마부타령 굿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짚이나 멍석을 이용해 소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대여섯 사람들이 들어가 소 노릇을 한다.

이들은 마부, 무당과 함께 풍악을 울리고 화소를 나누며 놀았다. 그리고 소를 몰고 마을을 돌며 풍년을 기원하는데 이때 음식과 돈을 내놓는 등 흥겨운 연희를 즐겼다.

대보름 전날에는 소에게 먹이를 주며 한해 농사에 풍농을 점치는 풍속이

있다. 사람들이 먹는 오곡밥을 쇠죽에 섞어 먹일 때 소가 곡식을 먼저 먹으면 쌀 풍년, 콩을 먼저 먹으면 목화풍년을 점치는 ‘소밥주기’가 그것으로 밥과 떡을 차려서 외양간 옆에 놓고 소가 일 년 동안 사고 없이 일을 잘해주길 빌기도 했었다.

생활과 소

새벽부터 우시장엔 활기가 넘친다. 여러 해 동안 동거동락 해온 식구로 주인 곁을 떠나기 위해 우시장으로 나온 소들은 농가에서 제일가는 재산이었다. 이러한 소들에게 등급이 매겨지고 흥정이 시작되니 주인은 말없이 서운할 뿐이다.

그리고 각자의 운명에 따라 낮선 곳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소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아리고 씁쓸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 팔아 마련한 목돈은 자식들의 등록금으로 요긴하게 쓰이니 예전엔 대학을 상아탑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우골탑이라 부르는 예는 흔히 있었던 이야기로 농부의 희망이 소 한 마리에 실리는 애틋한 풍경들이었다.

고향집을 연상할 때면 언제나 함께 떠오르는 누렁이소, 황고, 새끼가 밴 암소 등은 한집에 사는 식구이자 특유의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충실한 일꾼이 됐으며 우리 내 기질과 정서에 가깝게 다가와 있던 동물이었다.

한 식구였던 소

소는 우리의 농경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활해왔다.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 뿐아니라 운송의 역할을 담당했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하는 비상금 역할까지 담당했었다.

사람들은 사람 이외에는 가장 소중하고 친숙했던 건 소였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며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하는 특질을 갖고 있다.

우리 민속에는 특히 소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민속의 농경문화 중심으로 계속해 발달되었기 때문에 농사의 주역인 소가 여러 풍속과 깊은 관련을 맺어온 건 당연한 이치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소를 한 가족처럼 여긴다고 했던 것처럼 소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하게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선진대사를 도왔으며 먼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해줬다.

우직하고 순박해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합돼 선조들은 특히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왔다.

이처럼 소는 우리 생활과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근한 동물로 함께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민속학적인 모형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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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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