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비대면 1년을 대면하다
[컬럼] 비대면 1년을 대면하다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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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어젠다 무엇을 의미하나?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화가·행위예술가.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불편하고, 답답하고, 짜증스럽다고’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한다.

장사도 안되고 폐업하자니 적잖게 투자한 돈이 아까워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에 담보로 빌린 이자 내기에도 이제 지쳐 죽을 지경이라고 한탄한다.

뿐만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탄성이 무성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이 체감하며 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다.

가만히 보면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넘어 세상 돌아가는 현세에 한탄하고 있는 애기들이다.

무엇이든 익숙하면 무뎌지는 법이라지만 무슨 행동이나 버릇도 아니고 더욱이 난해한 동서양 고전철학도 아닌 생명과 직결되는 일상이 된 것이 벌써 1년을 맞고 있는 실정의 모습들이다.

자세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마스크 벗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는 명제를 기저에 놓고 외국 출입국은 물론 이동 시나 4인 이상 식당만남을 자제해 줄 것, 가급적 외출은 삼가고 집에만 있을 것, 회의나 모임은 취소할 것, 발열을 체크하고 인적사항을 기록할 것 등등의 규칙과 수칙들,

이는 지금 지구촌이 부산을 떠는 국제적 어젠다의 요청은 사실 어두운 미래를 전 세계가 이를 짐작하고 알리고 있는 것으로 눈치채야 한다는 뜻이다.

이유는 분명하고 까닭은 명백하다.

인류문명은 수많은 체험의 암담함을 경험하고도 무대책으로 일관해온 안일함이 자처한 것은 영혼 없이 갈 곳을 잃어 떠돌아야 하는 처량한 유배 자들마냥 무엇인가 허기진 산기슭의 어슬렁대는 늑대처럼 성격만 포악해지는 짐승의 눈초리를 닮아가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곳, 누구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스로 비춰 살펴볼 교훈은 손에 들린 거울에 있지 않고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직언을 건너뛰고 지나친 증표가 이 결과들이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성어에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이 바늘귀에 꿰인다.

돌이켜보면 아득했었을 것만 같았던 지혜를 함부로 버린 것 같아 멈칫 뒤통수를 긁으며 뒤돌아보면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불상사가 연일 여기저기에서 헬리콥터 날개 돌 듯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이 생존해야 하는 인간의 땅에 인간의 정체성과는 거리 먼 공상영화에서나 볼법한 짓만 앞장서 왔으니 우리 마음에 생채기를 주며 가슴 아픈 일은 앞으로 더욱 잦아지게 된다는 것은 눈을 감으면 선명해 진다.

문명 속 문명으로 중무장한 현실은 사실 대안 없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발걸음에 족쇄를 채우는 일이어서 너와 나 모두에게 불행한 일만 가증시킬 뿐 필자의 식견으론 코로나19만 보더라도 ‘백신’의 의미를 살핀다면 글쎄 머리가 갸웃갸웃해진다.

누구든 인류문명의 발전에 손사래를 치며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나침에 매몰될 함정이 많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소하고, 어떤 이는 ICT(정보통신기술)가 앞으로 산업을 관통하는 주요 핵심키워드로 디지털 대전환과 디지털 포용만이 대세라며 ICT 강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추진돼야 할 필연이라고 말한다.

어떤 상상력일까? 주장하는 이의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미래의 청사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엊그제 대전에서도 어느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비인가 교육시설 IEM국제학교에서 재차 발발한 감염사례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우리 지역도 초미의 비상상태로 우려가 크다.

1년 전부터 팬데믹이 밀고 온 시계 초침의 속도는 과열된 지구의 무개중심 축을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게 하며 21세기를 보내고 있는 암담한 마당은 우리에게 결국 어떤 멍석을 깔아주고 있는지 오늘을 생각해보면 쉽다.

물론 나의 생각이 당신의 생각과 같다고는 하지 않겠으나 분명한 것은 모두는 지금 현실 속에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현실에 만족한다고 할 것이고 누구는 현실을 부정할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만족이고 무엇이 부정인지 아무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현 상황을 과연 누가 미래지향이라고 말할 거냐는 거다.

물의 근원은 물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정체성에서 찾는 것이 이치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다원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며 온전한 생명이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일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면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할 때 서로의 어깨를 감싸고 기뻐하며 껴안고 웃음 짓는 배려이다.

따라서 누구든 어지간했다면 자만은 내려놓고 과욕은 버려야 편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만과 끝없는 욕심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천장지옥(天丈地獄)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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