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6)] 카리모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권좌 올라
[기획연재(6)] 카리모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권좌 올라
  • 조철현 편집위원
  • 승인 2021.05.26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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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지요예프, 88.6% 압도적인 지지로 새 대통령 당선

[뉴스봄=조철현 작가ㆍ본지 편집위원] 2016년 9월2일 밤 9시50분. 중앙아시아에는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비통한 고요. 이 묵직한 공기의 흐름은 톈산산맥을 넘고 대륙을 지나 즉각 세계로 퍼졌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은 일순간 넋을 놨다. 미르지요예프 시대는 그렇듯 큰 비통 속에서 시작됐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립니다. 카리모프 대통령께서 2016년 9월2일 밤 8시55분, 급성 뇌출혈 및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한 회복 불능의 뇌손상으로 서거하셨습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소식은 우즈베키스탄 국영방송의 전파를 타고 곧장 우즈베키스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비통한 소식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세계가 주목할 역사적 순간은 이렇듯 갑작스레 찾아왔다.

1991년 9월1일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25년 동안 우즈베키스탄을 이끌었던 이슬람 카리모프(I. Karimov). 그의 족적은 항상 독립국가 우즈베키스탄의 헌정사와 같은 존재였다. 즉 카리모프가 우즈베키스탄이었고, 우즈베키스탄이 곧 카리모프였던 25년. 그 긴 시간의 마지막은 마침 우즈베키스탄 독립 25주년 다음 날이었다.

9월3일 국장이 치러졌다. 카리모프의 고향 사마르칸트에는 속속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을 비롯한 17개국의 조문사절단이 도착했다. 그 속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도 포함됐다.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중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준석 사회부총리를 현지에 보내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을 애도했다.

카리모프의 국장(國葬)은 2016년 9월4일 마무리됐다. 애도의 순간은 깊고 짧았다. 국부(國父)를 잃은 비통의 아픔을 가슴에만 묻어야 하는 절박한 시간. 우즈베키스탄으로서는 세계의 시선이 온통 자신들에게 쏠려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외신은 연일 카리모프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을 염려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갑작스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미르지요예프로서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 속에서 자신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의 독립과 함께 25년 동안 권좌를 지켰던 이슬람 카리모프 동상.

카리모프 사망 후 4개월. 초대 대통령의 공백을 역동적으로 채워낸 미르지요예프는 12월4일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88.61%의 압도적인 지지였다.

그는 1957년 7월24일 지작(Jizzakh) 주의 자민(Zaamin) 지역에서 의사 아들로 태어났다. 자민은 자민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지작 주의 남부 소도시로 이 국립공원은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명 관광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 역시 구소련 시절 정치적 텃밭 싸움이 대단했다. 한국이 영호남으로 갈렸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양대 축은 타슈켄트 계와 사마르칸트 계파였다. 이들의 오랜 파벌 싸움은 1959년 샤로프 라시도프(Sharof Rashidov) 시대를 맞으며 사마르칸트 계파의 승리로 정리됐다.

라시도프는 1959년 3월 소비에트 연방의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서기장 자리에 올라 1983년 10월까지 24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70년가량 이어진 구소련 시절의 우즈베키스탄 서기장은 열네 명이었다. 라시도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평균 임기는 5년 내외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재임 기간은 무척 특별했고, ‘공산당 당원증을 가진 중앙아시아의 칸’이라는 별칭까지 붙었을 만큼 그의 영향력 또한 대단했다.

라시도프의 24년 집권으로 타슈켄트 계파는 위축됐다. 그리고 그 영향력 아래 카리모프 시대가 등장했다. 그 역시 사마르칸트 계파였다. 그의 25년 집권시절 타슈켄트 계파는 완전 궤멸됐다. 따라서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특별한 정적 없이 안정적인 시대를 열며 오직 국가 경제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안정적 유산을 남겨 준 라시도프의 고향 또한 지작 주다. 말하자면 우즈베키스탄에서 이 나라의 최고 국정지도자를 배출한 주는 지작 주 한 곳뿐이다. 그 한 사람이 라시도프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미르지요예프다.

*자료조사 및 번역도움 : Michael Cho(KOSMETA 유라시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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