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29)] 중앙아시아 평화를 위한 행보②
[기획연재(29)] 중앙아시아 평화를 위한 행보②
  • 조철현 편집위원
  • 승인 2021.06.2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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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 해묵은 국경갈등 해결

[뉴스봄=조철현 작가ㆍ본지 편집위원] “키르기스스탄 출신 우즈베크인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결혼해서 1990년부터 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남동생과 언니, 조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사이에 인종분쟁이 일어나 그 뒤로부터는 두 나라 사이가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건 제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족이 보고 싶을 때 자유롭게 고향에 다녀오지 못해 많이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가려고 해도 출입국 절차가 복잡했습니다. 2년 전에 제 딸을 시집보낼 때 결혼식에 초대된 우리 친척이 국경을 문제없이 통과하기 위해 정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동네 마할라협회(지역 공동체)에 신청해서 딸애가 실제로 결혼식을 올린다는 증명서를 발급받고 키르기스스탄에 초대장까지 첨부해 국제 전보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친척이 타슈켄트에 왔는데 거주등록 때문에 호텔에서만 있을 수밖에 없어서 우리 집에 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동안 있으면서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노력으로 키르기스스탄과 국경문제가 해결돼 복잡한 초대 과정, 거주등록 같은 어려움이 없어져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나도 가족과 편하게 만날 수 있게 돼 매우 기쁩니다”

2017년 가을 타슈켄트에서 만난 우즈네프트가즈 직원 아디나 씨(여, 54))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두 나라가 이제는 영원히 다정한 이웃으로 잘살게 될 것 같다며 안도했다. 지난 7년 두 나라의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가슴앓이 했던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면서 남북으로 갈라진 한국의 이산가족 문제를 염려했다.

2016년 12월 14일 취임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키르기스스탄을 택했다. 취임 10일 뒤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타슈켄트에서 만나 중앙아시아 평화 정착의 첫 물꼬를 트는 모습.
2016년 12월 14일 취임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키르기스스탄을 택했다. 취임 10일 뒤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타슈켄트에서 만나 중앙아시아 평화 정착의 첫 물꼬를 트는 모습.

우즈베키스탄의 2017년은 ‘국민과의 대화와 인간권익의 해’였다. 인간권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국민만의 인간권익이 아니라 키르기스스탄 국민의 인간권익까지 챙기며 취임 첫해부터 국제사회에 멋진 선물을 안겼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또 집권 초기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도 1년 사이 세 차례나 만났다. 처음은 취임 열흘 뒤인 2016년 12월24일이었다. 그만큼 다급한 문제였다. 그리고 2017년 9월6일과 2017년 10월5일 두 차례 더 만나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걱정했던 양국 간 국경문제를 풀어냈다.

첫 회담은 타슈켄트에서 열렸다. 취임 직후 우즈베키스탄을 공식 방문한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적극성과 중앙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의지가 유쾌하게 만나 해묵은 국경갈등 문제를 풀자는데 합의했다.

그 결과 8개월여 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를 찾은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1170km가량의 전체 국경선 중 950km 구간의 장벽을 거둬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 달 뒤 타슈켄트에서 다시 만나 나머지 문제까지 마무리하자는데 합의했다.

2010년 6월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키르기스 민족과 우즈베크 민족 사이에 국제사회가 염려할 만한 큰 인종갈등이 있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사상자가 속출했고,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이 사태로 124명이 숨지고 1500명 가까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으로 탈출하려는 10만명 가량의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크인들이 국경으로 집결했다는 보도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서둘러 국경 인근 지역에 난민촌을 만들고 있다는 보도로도 이어졌다.

이후 얼마 안 있어 양국 국경은 폐쇄됐다. 그러면서 앞서 소개한 타슈켄트 시민 아디나 씨 같은 이산가족이 속출했다. 뿐만 아니라 양국은 이후에도 국경문제로 자주 갈등을 빚으면서 중앙아시아 전체의 긴장감을 높였다. 그 한 예가 2016년 3월24일자 뉴시스 기사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과 서쪽 접경국 우즈베키스탄이 국경선 다툼을 벌이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이 접경지의 저수지 등에 대한 영토 반환을 주장하자 우즈베키스탄이 반대하며 국경에 군사력을 증강했고 이를 키르기스스탄이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주 우즈벡은 양국 국경 통과처 한 곳을 폐쇄한 뒤 문제의 지역으로 군대와 차량을 이동시켰다. 이에 키르기스스탄도 국경진입 통제를 강화했다.’

2016년 12월24일 양국 정상이 처음 만났던 시점으로부터 불과 10개월 전만 해도 이렇듯 양국 국경은 중앙아시아의 최대 화약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전향적 만남을 통해 양국의 지도자가 이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하자 우즈베키스탄의 한 언론인은 2017년 노벨평화상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들 두 사람이란 극찬까지 내놓았다.

*자료조사 및 번역도움 : Michael Cho(KOSMETA 유라시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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