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원시행위와 주술적 매체 ‘연극’을 규정하다
시인, 원시행위와 주술적 매체 ‘연극’을 규정하다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7.23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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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평설] 시와 연극의 관계성(상)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프랑스 출신의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자 한 ‘자크 모노 (Jacques monod)’는 “인간은 우주의 우연한 산물”이라고 주장한 책 ‘우연과 필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축제가 있었고 시인이 있었으며 그리고 연극이 있게 됐다”

흔히 일컬어지는 몸짓 예술에 해당하는 행위예술(퍼포먼스)은 다다니즘에서 비롯한 아방가르드의 형식을 띤 원시적인 인간들의 몸짓표현에서부터 출발한다.

흔히 인간들의 초혼(招魂)이나 의례(儀禮), 주문(呪文) 같은 심리 또는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연결고리와 매우 상통돼 있다고 보는 주장이 일반적인 학술의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다루려는 시와 연극의 공통성도 행위로부터 비롯된 주된 의식의 특징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어 이를 기반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연극 중 대사는 언어 특유의 풍부한 생동감과 독특한 언어적 표현이 생명이다.

시와 연극의 고리

시와 연극 혹은 연극과 시는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밀림 속 원시인들의 행위들을 회상하며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떠한 표현들이 행해 이뤄지고 있었는지 쉽게 영상이 그려진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변을 앉거나 원형을 그리며 이상한 춤 같은 몸짓으로 땅바닥을 발이나 나무로 내리치는 동작으로 고함과 함께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빙빙 돌던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원시인들은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이상한 몸짓표현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 입장을 잘 모르는 우리는 궁금했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알게 됐지만 그것은 말도 노래도 아닌 마법을 위해 주술(呪術)을 외우고 있는 행위들이었다. 그때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괴상한 소리와 야만스러운 몸짓은 일종의 주문(呪文)으로 자신들의 안녕과 건강 등 잡귀 등을 쫓아낼 때 외는 글귀로 문장의 하나였다.

여기에서 바로 시가 태어났다고 보는 학자들의 주장이 꽤 신빙성을 얻는다.

또한 그들은 언제나 사냥을 떠나기 전 사냥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흉내를 내고 사냥에 나선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동물 역할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사냥꾼이 돼 이를 반복하지만 언제나 사냥꾼이 승리하게 된다.

이 주술 덕분에 동물들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며 이후 사냥놀이가 형식화되고 경작지 안에서 종교적 의식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춤과 노래가 있었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가 있었으며 변화와 변천을 통해 발전하며 연극과 시와 그림을 비롯한 예술들이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 중 연극과 시는 원시 형태의 종교적 축제 혹은 제의에서 생겨났고 축제의 내용 또한 주로 신의 탄생이나 죽음, 부활을 숭상하는 노래나 춤으로 이뤄지게 됐다.

여기에는 물론 종교의식의 엄숙함뿐만 아니라 신명이 나는 놀이의 오락성도 깃들어 있다. 이 원시적인 축제가 연극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은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노래하거나 배우의 역을 맡으면서부터다.

주로 이때 불리는 가사는 어떤 특별한 작사가의 것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집단에서 흥행하던 글귀나 소통되던 말로 공동체적인 소유였다.

또한 관람객들도 연기라기보다 그들만이 주고받는 주옥같은 말(詩)이 아름답게 낭송되는 것과 귀로 듣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됐다.

그러나 극작가가 등장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게 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이자 시인이었던 테스피스(Thespis)는 합창곡을 쓰고 허구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위해 말을 하는 인물 즉 독백하는 인물을 창조했다.

이처럼 축제를 변형해 연극으로 만든 이들은 다름 아닌 시인들이었다.

연극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시이며 시적 상상력은 곧 연극적 환상을 창출한다고 주장해 중세 때 음유시인들은 내용과 인물의 변화에 따라 갖가지 어조와 억양으로 이야기를 읊었다. 그것이 낭독법이고 시학의 출발인 셈이다.

르네상스기의 교회 연극도 운문으로 구성돼 음악에 맞춰 낭송됐다. 셰익스피어, 라신느, 브레이트, 이오네스코 등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연극인들 역시 모두 시인들이다.

시는 언어뿐만 아니라 공감각적 이미지와 리듬을 제공하며 시적 내재율은 연극의 속도감을 주며 연기의 영혼인 행위에 운율의 풍부한 이미지를 내포해 한층 작품성을 지니게 한다.

우리가 고전극처럼 운문을 사용한 연극에서 함축성과 활력을 느끼는 것은 바로 시적 대사와 연기가 만나 형성되는 생동감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연극과 시는 삶을 이미지로 압축해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며 연극의 수법은 줄거리를 가지며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 경험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시는 주로 내면적인 직관, 정서의 표현에 치중하게 되며 시인의 영혼이나 자아의 집중된 심정을 단어와 언어로 표현된다.

극 텍스트는 일정한 무대적 상연시간을 전제로 쓰여지며 따라서 그 내용이 아무리 방대해도 가장 기본적인 내용으로 압축해야 한다. 압축을 요체로 삼는 간결한 문학형식은 그 속성상 주로 상징과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겨 실연한다.

상징이나 이미지들은 다의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어서 보다 많은 내용을 말해주기 때문이고 시는 시인이 선택한 어휘 하나하나에 음악성과 상징성, 미묘한 뉘앙스 등이 포함돼 있어서 다른 해석으로 번역하기 힘들다.

연극 역시 대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언어 특유의 풍부한 생동감과 독특한 의미의 언어적 표현이 생명이다.

이처럼 연극과 시는 언어 그 자체,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풍부한 이미지와 상징성, 음악성에 크게 의존된다. 다시 말하면 연극은 그 기원으로 볼 때 말이면서 동시에 노래이며 한 편의 시(詩)이면서 행동이고 색깔이면서 춤인 것이다.

결국 연극과 시는 고대인들이 경험했던 놀이와 축제 그리고 그리스인들이 행했던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처럼 본질적으로 혼용돼 있으며 하나의 몸통에서부터 출발하기 시작했다.

압축을 요체로 삼는 문학적 형식은 상징과 이미지를 중요시 여겨 실연해야 한다.

시학 속 극시의 역할

시는 상상력의 결과를 말로써 형상화해 표현한 것이다. 이를테면 시는 시적 영감을 언어로 구체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시 가운데 극시는 서사시와 서정시 이후 등장하며 어느 정도의 문화적으로 발달된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극시가 내용과 형식에서 가장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헤겔도 “극시는 서사시의 객관성과 서정시의 주관적 원리에 통합한다”라고 말한다.

이 통합성은 실제 일어나는 하나의 완결된 사건 속에서 전개돼 이때의 행위는 등장인물의 마음에서 비롯하며 그 행동은 현재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극은 행동하는 인물의 내면을 통해 서사적인 내용을 실제 발생하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술 중 하나이다.

따라서 연극적 시는 다른 이야기 형식이 과거에 일어났거나 현재 완료된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금의 순간 여기’의 영원한 현재 시제 속에서 펼쳐진다.

전통 사학에서 말하는 연극 즉 극시와 서사시, 서정시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희극을 서사시와 구분하며 이것들을 세 가지 모방예술로 서사시를 이야기함으로써 비극과 희극은 모든 인물을 움직이는 것으로 즉 현재 행동하며 진행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모방한다고 밝힌다.

움직이는 상태의 인간을 모방하는 것은 재현 즉 행동을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모든 사실적 현존은 현재 있는 실체라고 규정짓는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과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래서 동시대인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같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동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극시의 본질이 된다.

한편 서사시에는 이야기의 대사가 있고 서사시인은 자기를 오로지 진술자일 뿐이라 말한다. 그의 외적인 실재의 형식에 전체적인 정신세계를 상상력으로 펼쳐 보인다.

사건의 시적 전개 방식도 극시와 달라 서사적 표현은 객관적 현실과 내면 상태를 다수의 삽화적 이야기나 대화에 의해 장황하게 서술한다.

그 결과 사건들은 인간과 신에 고유한 도덕적 자기 현실의 힘에서 비롯하거나 외부의 방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다. 시인은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표현대상에 구애받는 일 없이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서정시인은 공개적으로 ‘나’라고 말하는 시인으로 서정시의 내용은 주관적이고 내적인 세계이며 관조하고 감동하는 마음이다.

이것을 행위로 나타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 특성을 띠며 자기 안으로 향하는 각 개인의 직관, 감정, 성찰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극 시인은 전적으로 자신을 은닉시켜 모든 역할을 등장 인물에게 맡긴다.

따라서 독자나 관객은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듣고 동작이 수반되는 것의 반면에 극시는 객관적인 내용이 주체에 속하는 것으로 표현되며 주관적인 것이 외적으로 현재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개돼 행위의 필연적인 결과로 펼쳐진다.

여기서는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일련의 행위가 갈등과 해결 속에서 전개되며 정신적인 여러 힘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서로 싸우며 사건이 복잡하게 얽힌다.

그러나 그 행위들은 그 자체가 주관적이며 외적인 현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장면의 회화적 가시화가 필요하다.

또한 연극 본래의 시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연기자의 전적인 몰입이 요구되며 그의 생생한 신체가 표현의 오브제로 동원된다. (중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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