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눈썹을 밟으며
속 눈썹을 밟으며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7.23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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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환 作.
류환 作.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무슨 바람이 별빛을 쓸고 오더니 빈 밥그릇에 고인 물을 휘젓고 슬픈 열정만 우울히 나뭇가지 끝에 걸린 미명(未明)의 시곗바늘만 흔들다 사라진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실향민의 수몰지역 양지뜰엔 재앙이 들고 일어나 사념만 쌓여 가는 흉부에 링겔을 타고 유입되는 복숭아 빛이 번진다.

태산처럼, 깃털처럼 무겁게 혹은 가볍게 경종을 울리는 두뇌의 자율신경에 달라붙어 피를 빨며 날 세우던 그 자리에 서서 마음을 비우고 수행을 하듯

새벽 내내 발끝으로 긴 속 눈썹을 밟으며 엷어지는 기적(奇蹟) 들추어 이슬에 묻히던 영롱한 빈칸에 멀어져가는 정체불명의 호적초본 낱장을 기억해 낸다.

편지를 넣으며 미래 미지의 나라에 우표를 붙이던 청춘을 껴안고 망설이는 서슴없이 에덴의 동산에 올라 무성한 숲을 향해 서명(敍命)하던 소중했던 동쪽

둥지를 털고 날아가는 새의 은비늘 깃털이 떨어져 거칠고 육중한 바위 위에 무덤을 만드는 신화는 안식을 찾아 떠나는 아들의 어머님 전(前) 상서(上書)

마른 줄기에 금이 간 시공 초유의 잎새들은 장대를 높인 빨랫줄에 걸려 바스락거리며 말라 죽어버리는 유언장 증언에 말(言)의 혀를 찾아 모년, 모월, 모일

무슨 바람이 방향을 잃어 연약한 그들의 이마에 지문을 찍어 할 말도 할 수 없는 오늘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는 내일은 반드시 뒤돌아 오는 것이라서

보이지 않는 금기(禁忌)사항은 길고 방심은 짧아 호흡기 속 음지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들이 옷을 벗고 내려가는 양변기 모양이라니

너의 미래는 내가 지나온 과거, 너의 과거는 결국 현실이고 모두가 생각하는 미래를 난 말하고 싶었으나 불길한 기운은 허공에 떠돌고, 떠돌고, 떠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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