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원시행위와 주술적 매체 ‘연극’을 규정하다(중)
시인, 원시행위와 주술적 매체 ‘연극’을 규정하다(중)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7.27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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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평설] 연출을 반영하는 공간 속의 시
극시의 언어는 시적 특징과 일상 대화의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상편에 이어) 극시의 인물은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을 서정시처럼 스스로 표현할 뿐이다.

타인과의 관련 속에서도 스스로 드러낸다. 이때 그의 행동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다.

이러한 극적 행동에는 주관적 감정이 섞인 몸짓을 통해 전개되며 몸짓은 말이 할 수 없는 것이나 말하지 않는 것의 시각적 대용품들이다.

그것은 말을 대신해 이야기를 최소화하는 몸짓은 목소리와 함께 태도와 얼굴표정 등의 도움으로 더욱 개성 있는 표현을 창조한다.

그러나 몸짓이 언어를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해 하나의 독립성을 갖추게 되면 판토마임이 되며 마임의 세계에서는 시적인 리듬과 율동, 회화적인 몸 운동이 주체가 된다.

극시는 시문학 중에서 가장 폭넓고 어려운 형식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루는 범위가 가장 넓기 때문이어서 서사시와 서정시의 요소들을 모두 지니고 있어 그렇다.

서사시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기 위해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을 옭아맨다. 그런데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표현된다.

입에 의한 표현은 필연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으로 이는 극시에서 서정성이 내포돼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그 복잡한 사건들의 배열에 있어서 서사시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격정적인 대화 속에 서정시의 진실한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의 위대한 비극들 모두가 활기차고 웅대한 서사시의 특성과 가장 선율적인 서정시의 특징을 갖추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극 시인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아무런 논평이나 분석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를 짧은 시간 속에서 전개하기 때문에 인물과 사건을 중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배열한다.

극시의 어려운 점은 이러한 광범위한 인간 경험들을 짧은 여백에 공통된 줄거리와 통일된 정서로 유지 시키는 일이다. 극시의 언어는 시적인 모든 특징을 지니면서도 일상 대화의 현실성을 아울러 갖춰야 한다.

또한 극 시인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즉 극적 생동감이 요구되기에 그러하다.

그는 자신이 상상해낸 시적, 연극적 대사들을 잘 융합해 전체가 하나의 연속된 시가 되도록 조화로운 형식미를 덧붙여야 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시란 고도의 정치(精緻)된 언어다. 셰익스피어가 작품들을 운문으로 쓴 것은 이런 정교하고 치밀한 시어의 특성과도 관계가 깊다.

그의 운문에 대한 선호도는 순수, 균형, 질서에 대한 갈망과 인생 그 자체가 언제나 궤도를 이탈해 가는 것에 대한 의식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감이 내포돼 있다.

따라서 운문은 극의 주제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운문시의 형식은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질서와 무질서에 대한 의혹을 유사하게 제기하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문장에서 헴릿은 자살의 문제를 놓고 자신과 싸운다. 그의 삶은 문제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이런 주인공의 궁지에 빠진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전쟁과 바다의 이미지를 가미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고 참는 것이 장한 것이냐, 아니면 환란의 조수를 두 손으로 막아 싸워 없애는 것이 장한 것이냐’

이렇듯 헴릿의 고통은 단지 자기의 불행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지만 그의 감정을 전쟁이나 바다와 같은 크고 더 혼란스러운 문제와 연결시키면 개인적 경험이 인간의 삶이라는 더 큰 차원으로 확대된다.

몇 줄의 대사가 개인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어지럽고 혼돈된 세상에서 삶의 실체에 대한 언급이라는 결과를 얻게 돼 장엄해진다.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극의 당연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인생이라는 복잡한 본질의 문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운문은 이 독백에서처럼 제기된 문제를 이미지 연상을 통해 확장시켜 주는 기능으로 더욱 효과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다.

이와 같은 극시는 극의 내용을 운문의 형식으로 즉 짧은 시들로 배합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극 작품 자체가 시라는 점이다.

극 진행의 표현 방식이 시로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극 전체가 하나의 시가 돼야 한다. 극시는 서사적 사건에 서정성이 융합해 완결된 시라야 그 존재성이 인정을 받는다.

생각과 감각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연극의 무대는 참다운 시와 행동이 만날때 비로서 작품이 완성된다.

무대를 창조하는 연출가의 역할

다시 연극의 원천인 고대 원시인들의 주술행위와 축제 속의 춤과 노래로 돌아가 본다.

연극은 처음부터 공간 속의 시이기 때문이고 연극의 언어가 시각적인 동시에 청각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 동작과 주문이 공간을 채울 때 연극의 언어는 입체성과 서정성을 동시에 지닌다.

한편 연극 언어는 인물이 경험한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도구이다. 또한 극의 플롯과 행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도구이며 연극 행위에 관객의 체험을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극작가는 말을 단지 서정적인 방식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동작, 말, 선, 색채와 리듬의 도움을 빌려 관객들의 눈과 귀에 호소한다.

바로 이러한 작가의 상상력에 연출가의 창의력, 배우들의 연기가 합쳐져 공간 속의 시가 완성돼 진다

어떤 시인이 환상적인 꿈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지어냈다. 극작가인 이 시인이 만들어 낸 이야기는 오케스트라나 지휘자 연주가가 악보를 해석해내듯이 연출가나 배우가 무대에서 형상화할 수 있는 텍스트다.

그러나 말로 쓰여진 이 극본은 허구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원고 속에 있지 않다. 연출가는 시인이 자신의 꿈을 글로 쓰는 도중에 잃어버린 것을 복원시키는 임무를 띤다.

그는 이를 위해 대사 및 연기를 조율하고 각 장면의 움직임에 리듬을 준다. 또한 의상, 무대장치, 조명, 음악을 통해 행동에 어울리는 물질적, 정신적 환경을 창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또 다른 이미지를 창조하는 배우와 함께 무미건조한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게 되며 결국 무대는 작품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들리느냐에 대한 연출가의 생각을 반영하게 된다.

이 말은 연출가가 해석자나 창조자의 기능을 한다는 뜻으로 결국 극의 두 번째 시인인 셈이다.

배우의 연기는 엄격한 시학의 원리에 따라 표현된다. 그의 음성적, 조형적 자원은 자의적이기는 하지만 세계와 대화하고 갈등을 빚는 인물을 구현한다.

또한 가면을 쓰거나 분장을 하고 목소리는 악기처럼 다루며 육체적 움직임에 상징을 담아내고 행동이나 몸짓은 공간을 조직하는 무용수에 따른다.

채색된 마스크 아래 얼굴을 감추고 긴 옷을 걸친 배우, 그의 변조된 목소리가 흉내를 내는 환상의 세계를 상상해 보면 이는 한편의 살아 있는 멋진 조각, 움직이는 조형에 다름아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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