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실연(失戀)한 외로움의 결정체(상)
자연을 실연(失戀)한 외로움의 결정체(상)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7.3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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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사물의 표정을 언어로 담는 시인 한성기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한성기(韓性褀) 시인(1924~1984)은 함경남도 정평군 광덕면 장도리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탁영(鐸榮)이며 어머니는 이만길(李萬吉)로 1942년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충남 당진군 합덕면 신촌초등학교로 첫 교사 발령을 받는다.

이어 1944년 일본 문부성에서 시행하는 고등학교 교사자격검정시험 서예과에 합격, 다음해 3월 합덕중학교 교사로 부임하고 1946년 4월에 결혼해 딸 하나를 얻는다.

이후 1947년부터 대전사범대학에서 15년간 교직에 몸담고 있던 도중 불행히도 몇 해가 되지 않아 1950년 10월 지병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세 살이 된 딸과 둘만이 남게 된다.

생전의 한성기 시인.

이때부터 그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 시에 주력하고 여러 곳의 문예지에 시 작품들을 응모하기 시작한다.

당시 문예잡지 ‘문예’에 ‘역(驛’, 1952년)이 게재되고 모윤숙 시인의 추천으로 ‘병후(病後’, 1953년)란 시가 다시 추천돼 게재됐으며 1955년 ‘현대문학’에 ‘아이들’, ’꽃병’ 등이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정식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이때 시인은 ‘차중에서’(현대문학, 1955년 7월), ‘도시’(문학예술, 1955년 8월), ‘새벽’(현대문학, 1955년 12월), ‘길’(현대문학, 1956년 11월) 등 계속해서 역작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1963년 첫 시집 ‘산에서’(배영사)가 출간됐으나 문단에는 내보이지 않아 알려지지 않는다.

실질적인 시집은 두 번째로 발표한 시집 ‘낙향 이후’(활문사, 1969년)가 출간되면서 작품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어 ‘실향(失鄕)’이 발표된다.

그해 재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구상하며 시인의 길을 구가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했으나 이도 잠시, 신병인 신경쇠약이 심해져 경북 김천의 기도원에 들어가 투병생활을 이어가고자 맘먹는다.

우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어 그곳에서 자연을 통한 치유로 신병을 물리치고자 한적한 기도원에 들어가 글쓰기와 병행한다.

그렇게 얼마간의 자연치유로 건강이 회복되는 듯해 작품활동과 생활을 계속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신병은 지속적으로 시인의 삶과 육체를 더욱 괴롭게 엄습해 고통을 안긴다.

이때 시인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외롭지 않으려고 만나는 사람들도 아니고 변해가는 문명의 도시도, 어떤 종교도 아닌 자연의 바람이고, 나무이고, 산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마음을 정하고 하던 일과 교직에서 내려와 산속으로 칩거를 옮겨 자연 속에서 몸을 맡긴다.

그에게 산은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한 치료의 공간으로 정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결론하고 이에 대해 어떤 부정적 인식도 배제해가며 오로지 모든 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생성시키는 곳이 산이라 믿고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 열중한다.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가 체험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불행과 함께 병마와 싸워 이기려는 의지와 희망도 절실했기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더 간절했던 것이 정신건강 이상의 자유로운 휴식과 영감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체험하고 탐독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상상 속 이상을 추구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게 우선적인 견해이다.

이는 이상세계의 확신을 통해 건강회복도 지키는 한 방편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더 깊숙한 내면적인 시를 창작하는 방법으로 산을 선택하게 된 연유로 깊은 영감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간 정신적인 신병 치료와 시 쓰기에 나날을 보내던 결과물로 시집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이 시집이 상위에서 밝혔듯 그의 알려지지 않은 첫 시집 ‘산에서’가 발간된다.

다소 건강이 회복세를 보이자 서글프게 이기지 못하는 빈곤한 생활의 가난을 잠시 벗어나고자 충북 영동 황금면 이라는 곳에서 ‘추풍령 문구점’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옮겨 충남 예산군에 ‘중도일보’ 지국을 맡아 생계를 이어가 보고자 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자 경제적 소득을 창출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념한다.

이렇게 곳곳에서 자신과 주어지는 현실과 맞닥트리며 생활과 창작을 이어가려 애를 쓰지만 역시 사회활동과는 인연이 없다는 판단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바깥일을 정리하고 시를 쓰는 일에 더욱 열정을 다해 주력하려 지인이 주선해준 대전 인근 변두리로 자리를 옮겨 들어앉아 바깥 활동 일체를 멈추고 또다시 시 창작에 몰두하며 사력을 다한다.

이때부터 시인은 때와 시에 상관하지 않고 한적하고 적막한 둑길을 걸으며 독백에 젖어 점점 자신이 자연과 몰입돼 가는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성기 시인을 가리켜 ‘둑길의 시인’으로 불리게 되는 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한성기 시인은 짧고 고단한 인생의 험로에서 고향을 잊어온 실향민으로 온갖 뼈 아픈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체험하게 된다.

잦은 병마와 함께 고독하고 외로운 쓸쓸함과 허무에 사무친 삶의 여정일 망정 끝까지 자신을 추스르며 자연을 예찬하고 노래하기에 나날의 노력을 바친다.

조용한 시골 둑길을 사색하듯 걸으며 심상을 품고 이를 고뇌해 시를 지어 그가 소원하는 자연을 추구하는 영원한 시인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색 짙은 흔적을 여럿 남겨 정직한 서정시인으로 수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한성기 시인은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업적과 함께 요원하도록 자연을 노래하던 시인으로 남아 후세대에게 정서적 경종을 울려주는 역할에 만전해 충실한 자연과 일치하는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대전예술가의 집 정문 옆에 세워진 한성기 시비.

따라서 그의 결정체가 된 시 ‘역(驛)’이 음각으로 새겨진 시비가 구 시민회관 광장에서 현재 대전예술가의 집 정문 옆에서 오가는 예인들을 바라보며 지금도 외롭게 덩그러니 서 있다.

두루 살펴본 결과 시인의 작품들 가운데 특징 중 하나가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시적 구조로 차용하고 있지 않지만 이를 가슴 속에 품어 보듬게 해 여운을 남기게 하고 있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시편들을 보면 지울 것을 지워 간결하게 드러나게 하지만 지워서 또는 간결해서 없어진 시어들이 눈에 밟혀 작품을 읽는 이로 하여금 버려진 것들을 더욱 선명하도록 드러내게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어들이 공간에 배열돼야 할 대상의 이미지들까지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빈 여백에 여운을 더하며 완성해가는 작품들로 시인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추론이다.

덧붙이자면 시인의 작품들은 압축된 안정감의 정의로움으로 아름답도록 연약한 자신의 감성을 최대한 이끌어 앞세우고 있다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유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예지적 관계망을 조직하는 구조들은 세밀하고 밀접해 더욱 깊숙한 시야의 특수 렌즈로 스치기 쉬운 일반적인 대상들도 촘촘하고 밀도 있게 포착해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서다.

같은 길에서도 시인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작품들을 완성해가는데 긴밀함을 견제해 자신만의 독특한 발자국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강점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신선한 언어와 활자로 자신이 마시는 물을 정제하는 것처럼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경이로운 결정체를 획득해낸다는 점이 월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이는 자신의 입장에서 확보되는 대상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이끌어내 화자들이 들려주고 보여 주는 지고지순한 순정과 격정의 순간까지 포착해 경이로운 질서를 나열시키는 동시에 생명을 불어넣어 감동으로 이끈다고 점들이 압도되기에 그러하다.

바꿔 말한다면 당시의 병(病)들은 신체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야의 틈새를 오히려 넓혀 자신이 갈망하는 이상을 헤아리려 앞으로 정진해 나아가는데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인생의 귀로에 처해있는 자신의 삶 속 모습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의인화해 새로운 이마쥬의 확장성을 취하고 있음을 보이게 해 두드러진다.

여기까지 상위 주제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분위기들과 상황적 실상들을 들여다보고 이를 추스르는 시인의 현실과 사물의 본질에 대해 다각적인 관조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선 필자는 시인의 다양한 사료들과 작품들을 충분히 읽어보지 못해 아쉽지만 1993년 ‘문경출판사’에서 발행한 한밭시인선으로 ‘한성기 시선집’을 필독하고 주지되는바 선제적으로 나타나는 감흥을 우선 상위에 기록했다.

다만 첫 번째 시집부터 ‘실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에 나타나는 성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을 고려, ‘새와 둑길’이란 시선집을 기본으로 이를 탐독, 다시 몇 편들의 시(詩)들을 나열해 나름대로 해석하여 공감해보고자 한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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