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한 남편 추모하는 만시(挽詩)의 격정(激情)
귀천한 남편 추모하는 만시(挽詩)의 격정(激情)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8.05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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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이 한 권의 시집… 김순옥 시인의 ‘대청호 메아리’
그리움을 형상화한 ‘애절함의 서정(抒情)’ 빛 우러나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요즘 날씨가 그야말로 불볕으로 이어지면서 ‘차라리 겨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고루해져 너나 나나 모두는 무기력에 빠진다.

한여름 중심에 있는 휴가철이라지만 나라 안팎 지구촌의 상황은 어디 맘 놓고 기분 좋게 떠날 생각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실정이어서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이럴 땐 그동안 미뤄오던 계획을 시도해보거나 시원한 극장가를 찾아 영화 몇 편을 감상한다거나 아니면 독서의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차후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우편물 중 몇 권의 다양한 책들과 함께 동봉된 시집 한 권을 선택해 우선 읽어보고 서금(瑞今)할 수 없는 시편들로 가슴이 흔들렸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오래도록 잔상으로 기억 속에 머물 것 같은 생각이 앞서 느낀 감흥을 간략히 단평에 붙인다.

김순옥 시인.

싣고 있어 부르는 시편 모두가 앞서 하늘로 귀천한 남편을 사무치게 회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지고지순 만시곡(挽詩曲)으로 묶여 있는 시집 ‘대청호 메아리’(오늘의 문학)를 발간한 김순옥 시인의 의식을 잠시 훔친다.

김 시인은 남편을 추모하면서 짓는 시가 보여주는 창작의 시점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일률적으로 그리움으로 점철돼 있으며 시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그의 첫 시집에 수록된 첫 번째 시 한 편을 살펴 옮겨 보기로 한다.

-멸치국수-

국수를 좋아하는 당신과

멸치국수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이 좀 부족하다 싶어

점심을 잘 먹자고 변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샤워실에서

갑자기 당신이 쓰러졌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서운한 아침 식사가 눈에 밟힙니다.

“있을 때 잘해!” 노랫소리가

아직도 귀 울림으로 이어집니다.

‘멸치국수’의 전문이다. 대다수가 글들이 아주 단순하고 순수한 일상의 메모 형식을 띤 시형(詩型)이지만 내적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전반부부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가득한 게 눈에 보인다.

김 시인은 그날 식사를 하며 나누던 짧은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신과의 연결되는 관계망들은 자연적, 사회적, 순간적이라기보다 인간적, 의식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서운한 식사가 끝내 눈에 밟히도록 아쉬워 ‘있을 때 잘할 것’을 후회하고 있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어떤 목적의 실용적 기능보다는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내면적 정서의 표출이라는 할 수 있는 순수한 서정의 측면에 놓여있음을 말하고 있다.

형태에서도 이러한 시들은 대체로 긴 시의 형식을 빌려 연작(連作)의 구성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 김 시인의 작품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안타까운 모습이나 애틋한 부부의 정과 함께 남편을 잃은 절통한 심정을 드리워 부각하고 있는 모습이 이번 시집의 색깔이다.

다만 슬픔을 형상화하는 면에서 관습적으로 이뤄지는 일정한 유형을 따르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슬픔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자연물이나 유품들을 통해 감정을 촉발하거나, 고조시키는 방식 또는 제3의 인물들을 통해 감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게 됨도 물론이다.

김순옥 시인의 첫 시집 '대청호 메아리' 표지.

특히 현실과 대립하는 꿈이나 상상을 매개로 하는 치명적인 간극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과 표현의 방법에서 어떠한 형체를 보이고 있음에도 김 시인의 시가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진정성과 실감을 통해 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시에서 그려 보이는 시인은 상상 이상의 공상이나 추상적인 아내이기보다 구체성을 띤 한 남편의 아내이기 때문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편들에서 남편에 대한 부끄럼이나 고마움을 숨기지 않으며 믿음과 존경이 바탕이 된 속내 깊은 부부의 정을 간절한 그리움으로 하루의 일면에 서서 눈시울을 읊어낸다.

그래서 그 슬픔이 간절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은 시인 자신도 비통할수록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 감동으로 이끄는 탁월한 형상화를 도출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으로 근거가 된다.

특히 사연을 남겨두고 의인화하는 함축과 여운의 미감은 독자의 경험 또는 감성과 어우러져 더 큰 진폭의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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