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컵라면으로
[기고] 다시 컵라면으로
  • 원용철 목사
  • 승인 2021.08.06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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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집(울안공동체, 쪽방상담소, 희망진료센터) 담당목사 원용철
22년 수많은 사람의 손길 이어와, 거리급식 없어도 되는 세상을 향해…
대전 벧엘의집 원용철 담당목사.

[뉴스봄=원용철 목사] 벧엘의집 대전역 거리급식이 다시 컵라면으로 바뀌었다.

대전역 거리급식은 22년전 벧엘의집이 설립될 때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거리노숙인 무료급식 활동이다.

당시 필자는 1개월간의 노축체험을 끝내고 맨몸으로 빈민사역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시작한 것이 바로 컵라면 급식이었다.

벧엘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선배 목사님(현재 빈들교회 남재영 담임목사)의 가르침대로 1개월간 노숙체험을 하면서 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루 세끼를 때우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일 수 있는 포장마차를 하려고 포장마차가 설치된 리어카를 계약까지 했지만 당시 대전역광장에 포장마차가 들어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계약금 5만원만 날린 채 고민 끝에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컵라면 급식이어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매일 저녁 10시에 육개장 컵라면 126개 4박스를 들고 대전역으로 향했는데…

그 후 남성 노숙인 쉼터가 마련되고, 무료진료활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쪽방상담소가 세워지면서 거리급식을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당시 천막을 치며 그들과 약속한 것이 있어 계속 이어갔다.

그러다가 노숙인을 위한 다양한 복지시설이 세워지고 대전역을 중심으로 무료급식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굳이 중복해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료급식소가 문을 여는 요일은 제외시켜 나가기 시작해 현재는 수요일과 일요일 이틀만 그것도 저녁 10시가 아닌 8시로 앞당겨 하고 있다.

22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우여곡절이 참 많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장 라면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할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듯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그때그때 채워 가셨다.

너무도 절묘하게 딱딱 들어맞는 한 마디로 기적의 연속이었다. 한 번은 라면이 떨어져 빈손으로 나갔는데 대전역 인근 금강산약국이라는 곳에서 소문을 듣고 라면을 보내오기도 했었다.

당시를 잠시 회상해 보면 어두컴컴한 광장 한 가운데로 노숙인 아저씨들이 라면박스를 들고 오는 모습이 흡사 공중에 라면박스가 둥둥 떠서 내게로 오는 것 같은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시는 하나님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를 '오병이어'의 첫 번째 기적의 시기라고 말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벧엘의집이 남성노숙인쉼터 울안공동체, 무료진료소 희망진료센터, 대전시쪽방상담소, 해외협력사업을 하는 세계의 심장, 주거지원을 하는 울이공동체, 사회적기업 야베스공동체, 희망지원센터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 2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다시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어쩌면 지난 2년의 시간은 흡사 벧엘의집 처음 2년과 비슷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고 또한 처음 가졌던 생각들을 하게하고 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방역당국의 조치는 대부분의 사회복지 활동의 중지였다. 당연히 대전역 거리급식도 중단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많은 사람들이 당장 굶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여 대전역 거리급식만큼은 더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멈추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비록 중단요청이 있었지만 이어갔다.

호기롭게 고집은 부렸지만 마음 한쪽 구석으로는 혹시 확진자가 나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당장 자원봉사가 줄어들고 밥이 아닌 도시락 등으로 바꾸다보니 예산확보가 여의치 않아 이어간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대전역 거리급식은 순수 후원으로만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SK에서 공동모금회를 통해 도시락 비용을 일부 지원해 주면서 별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백신접종이 시작되고 노숙인은 2분기 우선접종 대상자로 분류돼 지난 4월 1차 접종을 끝내고, 7월 중순 2차 접종까지 마무리 되었으니(접종률이 울안식구들과 종사자들은 100%, 쪽방생활인은 약 62-3% 정도로 어느 정도 집단면역은 형성되었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8월부터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7월 4차 팬데믹이 시작되고 대전은 사회적 거리두기 최고단계인 4단계로 격상되면서 다시 혼란에 빠졌다.

계획된 도시락도 끝났고 그렇다고 한 끼에 100만원정도 드는 도시락으로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여력도 안 되고, 그렇다고 중단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우선 8월 한 달은 경비가 덜 드는 컵라면으로 하기로 했다.(컵라면도 기적적으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건강보험 대전세종충남본부에서 혹서기 물품지원을 통해 후원해 줬다.) 이렇게 22년 전의 컵라면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8월이 지나면 4차 팬데믹도 잠잠해지리라. 그러면 컵라면이 아닌 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 어떤 처지가 되더라도 벧엘의집의 모든 활동은 벧엘의집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벧엘의집의 활동이 없어도 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임은 분명하다. 다만 환경 때문에, 재정 때문에, 여건 때문에 중단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자만하지 않고 벧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중단 없이 다가가고 그것을 넘어 벧엘의집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자. 다시 컵라면이 아닌 거리급식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향해…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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