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섦음을 걷는 시인의 곡예(曲藝)
통한의 섦음을 걷는 시인의 곡예(曲藝)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8.2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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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시인 한성기, ‘소망, 기쁨, 미래’ 노래하다 (하)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중편에 이어) 꽃병이란 다음 작품을 음미(吟味)해보자.

-꽃병(1)-

누굴까.

너의 가느다란 허리에 이처럼 손을 얹고 있는

너는 누굴까.

언제부터 이처럼 기다리는 걸까.

항시 남 모를 하나의 기쁨 같은 것을

스스로 孕胎하고 있는

꽃병

누가 꽂아 둔것 아닌

아아

그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所望으로

피어 올린

연도 같은

꽃.

‘꽃병(1)’의 전문이다. 이 시는 여타 바라보는 대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꽃병만을 객관적인 표면에 나타내고 있는 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시의 이면에 주관적인 공간으로 채워져 마치 동양화의 여백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정물화에 비교된다.

그림을 그리듯 작품에서 시인은 자신이 직면해 갈구하고 있는 허무와 허상 속 현실을 반영하며 토로하고 있어 현장 주변에서 입증되는 사물들을 보는 듯하다.

적게는 소망과 크게는 희망이 잘 투영된 시편으로 시인 한성기를 잊고 감상하고 감정에 몰입돼 충실하다면 꽃병이란 제목을 붙인 하나의 아름답고 품위 있는 작품으로 해석하고 호평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의 곤경에 처한 한성기 시인의 환경을 고려해 분위기를 살피면 사실상 허허로운 곤비함과 서러움을 극도로 드러내놓아 자신이 처해있는 사실적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편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고 여인에서 기쁨을 연상하고 기쁨에서 잉태를 유발하며 소망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가는 시선이 너무나도 간절하고 순수하게 귀착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본문에서 보듯 하나의 꽃병을 두고 시간을 정지시켜 공간구조부터 시야를 넓혀나가 꽃병이 놓여있는 공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간적 구조와 배경을 암시해 사유가 깊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집 마루의 탁자 위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꽃병을 보고 여인을 상상하고 있는 모습은 언뜻 단조로울 수도 있지만 이러한 표현은 시인만이 나타내는 함축의 의미로 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홀로된 자신에서 반감되는 여인을 꽃병에서 재발견하고 곁에 없는 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그리워하며 애모(愛慕)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연연하게 비쳐진다.

‘누굴까’하고 시작하는 첫 연에서부터 어느 한 사람을 특정하기보다 몇몇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불러오는 이미지와 동시에 곧바로 가느다란 허리에 시선이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여인의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너는 누굴까’라고 직감하고 있으나 너는 나 자신이길 바라는 마음이 선명한 이유가 ‘허리’와 ‘손’이라는 부분에서 윤곽이 뚜렷해 표시돼 진다.

이는 꽃병에 붙어있는 손잡이가 가느다란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것을 너로 접목시켜 사물의 모양을 인체의 중요 부분으로 일컫고 있으며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여인의 허리에 타인의 손으로 대상을 바꿔 촛점을 맞추고 있다.

대전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생전 우정어린 모습, (앞줄 좌측부터)  박용래 시인, 임강빈 시인 (뒷줄 좌측부터)홍희표 시인, 한성기 시인. 

다음 연에서 더 구체적인 단면들을 감상하고 살펴본다.

(중략)

언제부터 이처럼 기다리는 걸까.

항시 남 모를 하나의 기쁨 같은 것을

스스로 孕胎하고 있는

꽃병

(하략)

바라보는 사물의 풍만함이 여유롭고 시선이 고정돼 있어 긴장감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오랜 시간 꽃병만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우선 상위에서 보듯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꽃병은 자신의 집에 있는 꽃병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어느 집 마루나 탁자 위에 놓인 꽃병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에 시인 자신이 꽃병을 자신의 공간에 놓았다면 고뇌하는 고매한 시선보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사사로운 시선과 감정으로 흩어지기 쉬운 일상으로 이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을까? 하는 의문도 슬그머니 들게 한다.

읽히는 대로 ‘언제부터 이처럼 기다리는 걸까’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꽃병이 어느 때 놓였다면 언제부터라는 시기가 구체적이거나 아니면 사실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세하지 못한 부분을 ‘언제부터 이처럼 기다리는 걸까’라고 인지하며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타인의 집이나 어느 곳에서 바라보고 그 순간 작품을 떠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오히려 이는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꽃병으로 하여금 여인, 잉태, 기쁨, 소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묘사해 작품을 배가시키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다음의 3연 2행에서 시에 관류하는 멋스러운 풍미 중 하나로 꽃병의 백미를 이루는 지향점을 미술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구상미술에서 아름다운 정물을 극사실로 이루는 하이퍼 리얼리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항시 남 모를 하나의 기쁨 같은 것을/ 스스로 잉태하고 있는/ 꽃병’이라 칭하고 있는 부분으로 작품을 정점에 이르게 한다.

시인의 맘속에는 배가 불룩하게 나온 꽃병을 기쁨으로 환기하고 있어 어법적 특징으로 보아 생명을 자칭하고 있음은 숙명같은 자신의 오랜 바람이 역광처럼 투시돼 나타나고 있어서다.

다음 연에서 ‘잉태’를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의인하고 있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인의 정신에 금자탑을 쌓고 있는 사랑의 교합이다.

항시 누구도 모르게 사랑해 하나의 생명을 갖게 하고 기쁨을 갖게 해 스스로 언제나 배가 불룩하게 불러있는 형상의 꽃병을 잉태로 은유시키고 있어 자신의 바램처럼 속마음을 여실히 노출 시킨다.

그래서 이는 ‘누가’라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이 깊어지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어 감탄과 더불어 꽃병이 만들어진 그 날 자연스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소망(所望)으로 태어나는 연꽃으로 승화해 완성한다.

여기에서 ‘누가 꽂아 둔 것 아닌 아 아 그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소망으로’란 시구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놓고 있어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작품을 절묘하게 관통하는 매력을 함의하고 있다.

우선 시인은 이미 꽃병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알고 있는 자신의 예측을 선점하고 꽃병이 만들어지기 전 누군가에 의해 꽃이 꽂혀질 자연 발생적인 행위로 누가 꽂아둔 것 임에도 ‘누가 꽂아 둔것 아닌’으로 수용하고 있어 이를 당연시한다.

이어 ‘아 아’ 감탄사와 함께 자연 발생적인 행위를 확대해 ‘그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소망’이란 문체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의 결실로 결론한다.

그래서 사랑의 끝에 맺는 결말을 소망이라 귀결하고 그 결실은 연꽃으로 피어나게 하고 있어 꽃이 꽂힌 꽃병의 분위기와 공간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음을 직감하게 해 한성기 시인만이 그릴 수 있는 한편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운반된다.

한편의 명화, 명장면을 보게하다

다음은 한성기 시인의 유고 시선집에 표제로 달고 있는 ‘새와 둑길’을 들여다본다.

-새와 둑길-

눈이 녹고 귀가 녹고 코가 녹고

이걸 떨치고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르지

집을 나선지는 오래지

먼 재를 넘어서

10년을 내리

들길만을 걸었지

햇살의 범벅

바람의 범벅

눈이 녹고 귀가 녹고 코가 녹고

이제 그만했으면

돌아설 때도 되지 않았냐고?

아니지

들길을 더 끌어쌓고

山은 더 아득하고

새와

둑길

이걸 떨치고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르지

‘새와 둑길’의 전문이다. 그야말로 시인의 끝없는 도전기로 어느 때는 찹찹하게 어느 때는 옹골차게 어느 때는 아름답게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의 하소연이자 다짐으로 엮어진 시이다.

시의 성격과 내용으로 보아 신병으로 인해 교직을 떠나 수양차 자연으로 돌아가 오랜 기간 자신을 돌보기 위해 병마와 싸우며 버티고 있을 때로 보인다.

한성기 시인이 생전 둑길을 걷고 있다.

시인은 이 시기 주먹을 힘줘 쥐듯 들켜 쥔 자신의 다짐과 더불어 겨울의 맹추위가 산과 들의 능선마다 힘줄이 드러나도록 사방이 꽁꽁 얼었다가 해빙되는 즈음일 것으로 예측된다.

햇빛 완만한 봄 길을 걸으며 그동안 어지간히 걸어왔던 길에서 터득해지는 사색과 사유(思惟)에서 비롯된 또 다른 각오가 아니었을까?

그 끝없는 걸음의 길은 낯설지 않은 나의 길이고, 나의 다짐이고, 나의 숙명이라 침잠돼 확인된 상황들이 지속돼가는 시인은 ‘이것이 나의 주어진 인생의 길’임을 주문한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 시작한 것도 길이고 도착하는 것도 결국 길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상황적으로 본인에게 처한 현실 속의 전부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오직 걸어야 하는 길임을 혹은 길이 있어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이는 결국 시인에게 있어 길과 걸음은 단순한 육체적 이동을 넘어 마음으로 걸어 마음으로 도착한다는 것을 여정의 좌표로 삼고 있으며 이 여정을 통해 삶의 종착을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디에든 걷고 있는 길이 자신의 인생에서 도착이나 종착 등의 결말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디를 가든, 걷든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하며 혼잣말을 전전하는 자신 내면에 또 다른 세계를 설정하고 다른 곳의 삶이 아닌 자신만의 색깔로 단면들을 채색하며 시편들 속에서 진정한 여정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만 분주하다고 추측하게 한다.

여기까지 상위 시에서 나타나는 외형을 틀에 서 있는 시인의 바깥 그림자와 내면의 속앓이를 다소나마 유추해 보았다.

이어서 ‘새와 둑길’의 전문을 헤쳐 간략히 분석해보기로 한다.

시인은 우선 자신의 피부(얼굴)에서 느끼는 계절변화를 직감하고 호된 겨울을 이겨낸 봄의 첫 계절의 절기쯤에 바짝 다가가 있음을 내보인다.

눈이 녹고 귀가 녹고 코가 녹고/ 이걸 떨치고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르지/라고 얼어 있던 겨울 추위에 떨고 있던 사물들과 이를 버티고 지낸 자신의 모습에서 텍스트를 찾는다.

얼마나 고된 겨울나기였나 싶을 정도로 눈, 귀, 코가 열어버렸다가 녹았을 정도의 추위를 이겨낸 자신에게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자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집을 나선지는 오래지/ 먼 재를 넘어서/ 10년을 내리/ 들길만 걸었지/는 그의 고집찬 집념을 지긋하게 바라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비유도, 상징도, 은유도, 아닌 사실적 고행을 체험한 일종의 수기(修己)로 정(情)과 신(身)을 닦아오는 과정 중 하나일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자신의 신병을 고치려 먼 재를 넘어 집을 나서온지 10년을 오로지 들길만을 걸었음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남 정평의 먼 산과 언덕을 넘어 집을 나와 그 길을 10년을 걷고 또 걷는 중이라니 가히 놀라움을 넘어 마음까지 축축해진다.

물론 중간중간 거처를 옮겨 생활을 이어가지만 병들어 고단한 육체 탓으로 변해가는 시대의 조류와는 비켜 상관하지 않고 머릿속에 들끓는 에너지를 오로지 글 짓는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본 시인의 걷기는 한결같이 고단한 시간이 연속적으로 반복돼 새로운 모색을 탐색하지만 그렇지 못해 그의 눈빛에 어리는 갈망은 오히려 더욱 그윽해져 일상의 사물들이 뚜렷이 확대해진다.

햇살의 범벅/ 바람의 범벅/ 눈이 녹고 귀가 녹고 코가 녹고/ 이제 그만했으면/ 돌아설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남이 묻듯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어느 여름이 왜 그에게도 뜨거운 햇살이 없었겠으며 서늘했었던 매서웠었던 찬바람은 그에게도 왜 없었겠는가? 단지 햇빛과 바람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범주에는 다양한 형태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암시하게 한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여타 타자들을 배제하고 햇살과 바람으로 수평적 넓이를 확대하고 함축하여 수직적 심화의 깊이를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된다.

‘0이 녹고, 0이 녹고, 0이 녹고 이제 그만했으면 돌아설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에서도 시인 자신에게 그간의 발길을 세뇌(洗腦)하고 있는 설정이다.

먼 10년의 길이를 이제 ‘그만하고 돌아설 때’로 잠시 세월을 정지해 놓고 현실을 간과하지 않은 상태를 지속하고 유지해 지난 과거를 유추하고 되물으며 턱 괴이고 있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아니지/ 들길은 더 끌어쌓고/ 山은 더 아득하고/ 새와/ 둑길/ 이걸 떨치고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르지.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아직 다하지 못한 미각(未刻)속 우러나는 시안에서 펼쳐지는 산야, 그리고 지저귀는 새들과 그동안 걸어왔던 저 멀리까지 철길 레일처럼 이어지는 둑길, 그야말로 영화의 한 명장면으로 귀결시켜 놓고 있는 시인의 가슴을 투명하게 투영시키고 있는 장면이다.

이것을 두고 아직은 또 아직은 어떻게 안주(安住)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그의 향기가 저 멀리까지 바라보이는 듯하다. (종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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