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전시가 시민을 죽였다
[기자수첩] 대전시가 시민을 죽였다
  • 육군영 기자
  • 승인 2021.12.03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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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무원들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 상사의 괴롭힘과 부조리가 원인
누구 책임인지 모른다는 대전시, 직무유기인가 무능의 표본인가?
대전시청사 전경.
대전시청사 전경.

[대전=뉴스봄] 육군영 기자 = 35대 1, 올해 국가직 공채 9급 공무원의 평균 경쟁률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아들이 얼마나 대견했을까? 올해 1월 대전시 공무원으로 채용된 A 씨는 지난 9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25세였다.

그는 지난 7월 신규 부서로 발령받았다. 유족들에 따르면 A 씨는 근무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상사가 마실 커피와 다과류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A 씨가 이를 따르지 않자 집단 따돌림과 과중한 업무 부담이 이어졌으며 사실상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후 그는 팀 내에서 점점 고립됐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친구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A 씨는 결국 휴직 신청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같은 달 2일에는 대전소방본부의 초급 간부 B 씨(46)가 휴직 중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노조와 유족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직장협의회장직을 역임하던 B 씨는 119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일선 소방관들의 식사방식 개선을 요구하며 상황실장에게 면담을 진행한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후 출근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B 씨를 탄핵하기 위해 소방본부 인사부서 관계자가 직접 2차례에 걸쳐 탄핵을 시도하는 등 실력행사가 이어졌고 결국 B 씨는 ‘누가 뭐라 해도 정의 하나만을 보고 살았다’는 말을 유서에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지난 9월 극단적 선택을 고(故) 민대성 소방위의 유가족이 25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 극단적 선택을 고(故) 민대성 소방위의 유가족이 25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남겨진 유가족과 동료들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고인(故人)은 직상상사의 부당한 괴롭힘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곧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 시청으로 출근을 해야 하던 날,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명백한 인재(人災)이며 산업재해다.

대전시가 이를 입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인의 출퇴근 시간과 업무보고내용, 핸드폰 기록과 병원 진단서 등을 통해 직장 상사의 괴롭힘과 죽음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전시 감사위원회는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는 이유로 유가족에 대한 위로는커녕 관계자들의 징계조차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조사대상을 공무원으로 한정해 조사가 어렵다며 수사기관에 책임을 넘긴 것은 덤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두 공직자의 안타까운 소식은 지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공직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격차가 첫 번째 충격을 주었고 인구 150만 도시에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에 온갖 부조리와 따돌림이 만연해 있었다는 충격, 통제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대전시의 행동이 또 한 번의 충격을 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갑질 문화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대전시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억울한 고인의 영혼은 달랠 수 없을 것이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가장이었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그리고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었던 이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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