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나무
봄날의 나무
  •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 승인 2022.04.17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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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봄꽃의 화사함에 감춰져 있는 어른스러움을…”

[대전=뉴스봄]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 눈 돌리면 사방이 꽃으로 흠뻑 물들어 있다.

주말이면 종종 나들이 나가 산책하던 계곡 양옆으로 가지만 앙상해서 겨울을 나는 동안 그 자리에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온갖 나무들이 그야말로 꽃단장을 하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다.

나무들은 제 몸속에 감춰뒀던 저 화사함과 화려함을 어찌 겨우내 감추고 있었는지 그 진중함과 겸손함에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겨울 동안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하게 내보이는 나목으로 있었던 나무들이 몸속에 가득 품고 있는 화사함과 화려함을 자랑하고 싶어 얼마나 온몸이 근질거렸을지 상상해 본다.

필자 같은 사람이라면 진작 참지 못하고 아직 계절도 다가오지 않았는데 서둘러 꽃눈을 내밀어 보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바깥의 온기를 아쉬워하고, 또 참지 못하고 다시 내밀어 보고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추위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꽃눈을 다시 닫고 몸을 움츠리는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지 모르겠다.

그런 상상을 하니 화사한 봄꽃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듬직한 품성이 새삼 대견스럽고 배워 나가야 할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백향기 作, 또 다른 시선, 38cmX45.5cm Mixed Media 2020.
백향기 作, 또 다른 시선, 38cmX45.5cm Mixed Media 2020.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칭하고 세상의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을 다스리는 존재라고 스스로 믿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반성도 하게 된다.

나무도 감성이 있어서 음악을 들려주면 성장이 빠르고 열매도 튼실하게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무도 우리와 같이 품성과 감성들이 있다는 것 아닌가?

동물은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고달픈 인생을 살지만, 식물은 한자리에 굳건하게 뿌리박고 자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햇빛을 양분 삼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을 광합성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니 그런 점에서는 식물이 동물에 비해서 훨씬 고등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점을 달리하니 한 곳에 뿌리박고 움직이지 않는 식물들이 사실은 훨씬 고등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신선한 충격을 느끼게 된다.

봄에는 그 말이 더욱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사실 어찌 봄뿐이랴, 여름의 무성한 이파리를 보면 지난겨울 앙상한 가지만 가지고 있던 빈 가지에서 어떻게 이렇게 풍성하고 싱그러운 이파리들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가을에는 어찌 그리 풍성한 열매를 맺히게 할 수 있는지 한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먹이를 찾아 헤매며 쫓아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땅속의 양분과 햇빛만으로도 스스로 양분을 만들고 자립해서 풍성하게 살아내는 것을 보면 온 일생을 먹이를 찾아 헤매는 동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무의 듬직함을 배울 일이다. 필자는 세상사의 얄팍한 계산과는 다른 유장함과 범접할 수 없는 깊이 앞에 스스로를 삼가게 하는 나무를 한 그루 알고 있다.

‘선한 나무’ 유치환

내 언제고 지나치는 길가에 한 그루 남아선 노송 있어 바람 있음을 조금도 깨달을 수 없는 날씨에도 아무렇게나 뻗어 높이 치어든 그 검은 가지는 추추히 탄식하고 울고 있어, 내 항상 그 아래 한때를 머물러 아득히 생각을 그 소리 따라 천애에 노닐기를 즐겨하였거니, 하룻날 다시 와서 그 나무 이미 무참히도 베어 넘겨졌음을 보았나니.

진실로 현실은 이 한 그루 나무 그늘을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보다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에 미치지 못하겠거늘, 내 애석하여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팔을 높이 허공에 올려 보았으나, 그러나 어찌 나의 손바닥에 그 유현한 솔바람 소리 생길 리 있으랴.

그러나 나의 머리 위, 저 묘막한 천공에 시방도 오고 가는 신운이 없음이 아닐지니 오직 그를 증거할 선한 나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로다.

가지를 뻗어 유현한 솔바람 소리를 들려주고 묘막한 천공에 시방도 오고 가는 신운을 증거해 주고, 세상의 바람을 가지를 들어 추추히 탄식하며 울고 있는 유장함과 어른스러움에 필자는 항상 유치환의 ‘선한 나무’를 읽을 때마다 옷깃을 여미게 된다.

봄날의 화사한 꽃들을 보면서 제 안의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고 스스로 삼가며 때가 되어서야 한껏 내보이는 진중함은 유치환의 ‘선한 나무’가 가지고 있는 어른스러움의 또 다른 면일 것이다.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하며 나이 들어감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봄꽃의 화사함에 감추어져 있는 어른스러움을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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