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해도 좋다, 예쁘고 재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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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주
  • 승인 2023.07.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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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로이 리히텐슈타인_‘차 안에서’
리히텐슈타인 作, ‘행복한 눈물’, 1964.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삼성그룹 특별감사 당시 리움 미술관의 홍라희 관장이 ‘행복한 눈물’을 300억원대에 구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히텐슈타인은 팝아트를 잘 모르던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원치 않게(?) 이름을 알렸다.

미국의 그래픽 노블이나 길거리 포스터에서 한 컷 따온 듯한 말풍선과 굵고 간결한 선, 붉은 입술과 금발의 미녀들이 가득한 그의 작품은 기존의 기획전시에서 감상해 오던 회화를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느낄 수 있겠다. 바로 그것이 바로 팝아트가 추구하는 점이다.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와 마릴린 먼로 같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변형했다면, 리히텐슈타인은 광고·만화·신문·잡지 속 이미지를 변형해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인쇄할 때 생기는 점들을 크게 확대한 뒤, 이를 캔버스 위에 다른 재료로 다시 그렸다. 현대의 인쇄기술이 사실은 망점 여러 개가 찍힌 ‘눈속임’이고, 자세히 보면 색깔도 촌스러운 원색임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회화는 자연을 보고 그렸지만, 20세기부터 미술은 ‘기존의 이미지’(인물, 상품 등)에 작가의 새로운 해석만 보탰다. 특히 팝아트는 기성 대중문화 이미지를 고급미술 단계로 끌어올림으로써 기존 회화의 ‘고상함’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리히텐슈타인 作, ‘차 안에서’, 1963.

‘차 안에서’는 정장 차림의 말끔한 신사가 호피 무늬 코트를 입은 콧대 높은 금발 미녀를 태우고 어디론가 질주하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둘은 무슨 사이일까? 마치 차창 밖은 새까만 밤하늘일 것만 같고, 어딘지 모르게 미녀의 콧대는 높이 치솟은 만큼 또 아찔해 보인다.

붉은 입술의 금발 미녀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흘러간 그 옛날’이기도 해서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가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듯, 이 미녀는 미국인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지극히 단순한 색채와 상투적인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은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어떻게 할지 뻔히 눈에 다 보이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 같은 매력이랄까. 실제로도 예술비평가들 중에는 예술성과 독창성이 떨어진다며 리히텐슈타인을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뉴욕 근현대미술관 안내서 표지에 리히텐슈타인의 1961년 작품인 ‘공을 든 소녀(Girl with Ball)’가 찍혀있을 정도로 그는 미국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또한 2013년 미술작품 경매 조사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그 해 미술 경매에서 거래된 가장 비싼 작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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