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여자 아이돌 그룹 f(x)의 2집 티저 영상 ‘아트 필름’은 그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몽환적인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중 필자의 눈을 잡아끈 것은 바로 f(x) 멤버 두 명이 흰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키스하려는 모습. 이것은 틀림없는 마그리트의 ‘연인’ 오마쥬다.
2007년 록밴드 Nell의 ‘치유’ 뮤직비디오에도 거의 재현하다시피 이 천으로 가린 키스 장면이 등장하는 등 지금까지도 마그리트는 시대를 앞선 감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랑’이라는 한 가지 단어로 다양한 관용어가 생겨났다. ‘눈이 하트(heart)로 변했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눈이 멀었다’ 같은, 특히 눈에 관한 말이 많은데,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단점은커녕 모든 점이 좋아 보이는 기현상(?)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해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사랑은 어떨 때는 그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특별한 눈가리개와 같다. 이를 직접적으로, 또한 반어적으로 담아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그리트의 ‘연인’이다.
마그리트의 어떤 그림들에서 필자는 왠지 모를 답답함이나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연인’이 딱 그랬다. 그림의 구성은 어찌 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입 맞추는 남녀, 붉은 드레스와 블랙 앤 화이트 정장의 대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앙에서 온 얼굴과 목을 흰 천으로 가려져 볼 수 없는 두 얼굴이 그림의 포인트이자 주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온전히 서로의 입술만이 맞닿아 있는 두 사람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오로지 서로만 느끼는 진한 행복에 파묻혀 있거나, 눈앞의 감각에 취해 서로의 진짜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겠다. 한창 사랑할 때는 행복에 묻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지 못하고 헤어진 후에야 그때의 한창 맹목적인 사랑을 깨닫듯이.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유독 얼굴을 가리거나, 얼굴을 이루는 요소가 다른 부분으로 대체된 경우가 많다. ‘사람의 아들’, ‘중산모를 쓴 남자’에서 비둘기나 사과로 얼굴 앞을 가린 남자나 ‘강간’의 얼굴을 이루는 여성의 상체, ‘결혼한 사제’의 가면을 쓴 사과 등이 그렇다.
하지만 흰 천은 ‘연인’에서만 등장하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흰 천을 덮어쓴 채 강물에서 발견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거라고도 주장한다. 마그리트는 터무니없는 추축이라 일축했다.
“나의 그림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다. 그것은 신비를 불러일으킨다. 내 그림을 본 사람은 ‘이게 무슨 의미일까?’라며 자문한다. 신비라는 것이 아무런 숨겨진 의미 없이 단지 불가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작품 역시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마그리트는 말했다.
그 말대로 아무 의미 없는 작품들이라면 보이는 대로 각자 이해하는 게 올바른(?) 감상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인지 자꾸 마그리트의 그림은 의미를 파헤치고 싶고, 그의 의도를 알고 싶다.
어쩌면 그것까지 의도하고 저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