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사랑
베일에 싸인 사랑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07.2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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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마그리트 作_‘연인’
마그리트 作, ‘연인’, 1928.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여자 아이돌 그룹 f(x)의 2집 티저 영상 ‘아트 필름’은 그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몽환적인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중 필자의 눈을 잡아끈 것은 바로 f(x) 멤버 두 명이 흰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키스하려는 모습. 이것은 틀림없는 마그리트의 ‘연인’ 오마쥬다.

2007년 록밴드 Nell의 ‘치유’ 뮤직비디오에도 거의 재현하다시피 이 천으로 가린 키스 장면이 등장하는 등 지금까지도 마그리트는 시대를 앞선 감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랑’이라는 한 가지 단어로 다양한 관용어가 생겨났다. ‘눈이 하트(heart)로 변했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눈이 멀었다’ 같은, 특히 눈에 관한 말이 많은데,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단점은커녕 모든 점이 좋아 보이는 기현상(?)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해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사랑은 어떨 때는 그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특별한 눈가리개와 같다. 이를 직접적으로, 또한 반어적으로 담아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그리트의 ‘연인’이다.

마그리트의 어떤 그림들에서 필자는 왠지 모를 답답함이나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연인’이 딱 그랬다. 그림의 구성은 어찌 보면 군더더기가 없다. 입 맞추는 남녀, 붉은 드레스와 블랙 앤 화이트 정장의 대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앙에서 온 얼굴과 목을 흰 천으로 가려져 볼 수 없는 두 얼굴이 그림의 포인트이자 주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온전히 서로의 입술만이 맞닿아 있는 두 사람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오로지 서로만 느끼는 진한 행복에 파묻혀 있거나, 눈앞의 감각에 취해 서로의 진짜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겠다. 한창 사랑할 때는 행복에 묻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지 못하고 헤어진 후에야 그때의 한창 맹목적인 사랑을 깨닫듯이.

마그리트 作, ‘사람의 아들’, 1964.
마그리트 作, ‘중산모를 쓴 남자’, 1964.
마그리트 作, ‘강간’, 1934.
마그리트 作, ‘결혼한 사제’, 1961.
마그리트 作, ‘결혼한 사제’, 1961.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유독 얼굴을 가리거나, 얼굴을 이루는 요소가 다른 부분으로 대체된 경우가 많다. ‘사람의 아들’, ‘중산모를 쓴 남자’에서 비둘기나 사과로 얼굴 앞을 가린 남자나 ‘강간’의 얼굴을 이루는 여성의 상체, ‘결혼한 사제’의 가면을 쓴 사과 등이 그렇다.

하지만 흰 천은 ‘연인’에서만 등장하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흰 천을 덮어쓴 채 강물에서 발견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거라고도 주장한다. 마그리트는 터무니없는 추축이라 일축했다.

“나의 그림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다. 그것은 신비를 불러일으킨다. 내 그림을 본 사람은 ‘이게 무슨 의미일까?’라며 자문한다. 신비라는 것이 아무런 숨겨진 의미 없이 단지 불가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작품 역시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마그리트는 말했다.

그 말대로 아무 의미 없는 작품들이라면 보이는 대로 각자 이해하는 게 올바른(?) 감상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인지 자꾸 마그리트의 그림은 의미를 파헤치고 싶고, 그의 의도를 알고 싶다.

어쩌면 그것까지 의도하고 저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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