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속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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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08.0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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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마그리트 作_잘못된 거울
마그리트 作, ‘잘못된 거울’, 1928.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주는 중요 기관인 동시에 다른 이들이 내 얼굴 중에 가장 유심히 보고, 첫인상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눈’이다.

흔히 ‘마음의 거울’이라고도 부르는 이 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도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림 속 인물의 눈을 먼저 보는 편이다.

2007년 서울에서 있었던 마그리트 전시회에서는 아쉽게도 개인소장 작품이라 볼 수 없었지만, ‘잘못된 거울’은 캔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눈과 그 속에 비친 하늘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클로즈업된 한쪽 눈과 그 눈 속에 하늘이 비치는 장면을 그린 ‘잘못된 거울’은 마그리트가 연작으로 제작할 만큼 애착을 보였다. 눈에만 집중한 이 작품은 그림이 보는 행위와 직결된다는 점에 착안한 듯하다.

대상을 옮겨놓는 회화는 1차적으로 보는 이의 눈을 속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미지의 배반’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 파이프가 아닌, 파이프를 그린 그림인데도 ‘파이프’라고 우리는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거울’에서 눈은 사물을 수동적으로 반사하는 거울로 축소돼 나타난다.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눈을 강조한 것은 왜곡을 통해서만 그림을 볼 수 있는 우리의 지각 구조를 드러낸 것은 아닐까.

그림 속의 눈은 ‘하늘로 보이는 것’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건 하늘이 아닐 수 있다. 바다일 수도 있고, 하늘이 비친 빌딩의 유리창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눈이 ‘하늘’로 인식하는 순간 실제로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하늘이 돼 버린다. 그런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가 ‘잘못된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 수도 있겠다.

만 레이 作, ‘유리 눈물’, 1933,
만 레이 作, ‘유리 눈물’, 1933,

이 작품에는 초현실주의 사진가 만 레이와 마그리트의 교류가 영감을 줘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둘이 교류하던 때 만 레이의 작업실에 거대한 눈 사진이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유리 눈물’이란 사진으로 유명한 만 레이는 ‘잘못된 거울’의 1928년 버전을 1933년부터 1936년 사이에 소장하고 있었다.

몇해 전에는 강동아트센터에서 ‘헬로 아티스트! 마그리트의 방 엿보기’ 전(展)이 열렸다. 전시회가 아닌 체험전이었지만 조카들이 가서 찍은 사진을 보니 ‘잘못된 거울’을 본떠 만든 체험 시설도 있었다.

하늘색 눈동자 속 까맣던 동공이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을 봤는지 물어보니 조카는 움직이는 하늘을 봤다고 한다.

조카가 봤던 움직이는 ‘하늘’을 진짜 하늘로 봐야 할까, 아니면 하늘을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나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짜 하늘로 생각해야 할까? 마그리트는 눈동자 하나로도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던져 주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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