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에서 거부당한 당대의 뮤즈, 그 모순의 진상은?
살롱에서 거부당한 당대의 뮤즈, 그 모순의 진상은?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08.2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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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마네 作_나나
마네 作, ‘나나’, 1877년.

[대전=뉴스봄] 백영주 편집위원 = “금파리는 거리에 버려진 썩은 고기에서 죽음을 묻혀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윙윙대며 날아다니다가 남자들에게 독을 옮긴다”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에 나오는 구절로, 팜므파탈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동시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매춘부에게 매료되면서도 병균을 옮기는 금파리만큼 멸시했던 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네가 그린 ‘나나’는 소설 ‘나나’의 여주인공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졸라와 돈독했던 마네는 발간 전부터 이 소설을 알고 있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소설과 같은 제목의 그림을 먼저 선보였다.

마네가 ‘나나’를 그린 지 1년6개월 만에 졸라는 ‘나나’를 연재했고, 이듬해 책으로 출판했다. 매력적인 고급 창녀 나나의 부귀영화와 몰락을 통해 당시 고위층의 부패를 비판하는 이 소설은 출간 즉시 커다란 이슈가 됐다.

‘나나’는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에 이어 또다시 파리 시내를 들썩이게 했다. 마네는 이 그림을 살롱에 출품했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낙선시켰다. 작품의 실제 모델이 고급 창녀 앙리에트 오제였기에 누가 봐도 매춘을 소재로 삼은 게 확실했고, 그림 속에서 정신없이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조차 보수주의자들에게 못마땅하게 보인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은 관능미가 넘친다. 속옷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서 한껏 멋을 내려는 여인은 화면 밖 관람객을 향해 은밀히 눈짓한다. 동그랗고 큰 눈, 오뚝한 코, 붉고 도톰한 입술, 잘록한 허리에 볼록한 엉덩이.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화면 오른쪽 소파에 앉아 나나의 몸단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신사도 이미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상태. 여인의 화장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그의 눈길이 풍만한 엉덩이에 꽂혀 있다. 엉덩이를 보는 신사의 눈길과 화장하면서도 시선을 느낀 듯 엉덩이를 당당하게 내미는 여인의 표정이 해학적이다.

마네 作, ‘올랭피아’, 1863년.
마네 作, ‘올랭피아’, 1863년.

등 받침대가 있는 커다란 소파는 상류층이 침대 대용으로 애용하던 쾌락의 공간이었으며 뒤쪽 벽에 그려진 학은 매춘부를 상징한다.

19세기 후반 파리에 매춘부가 급격히 늘면서 매춘은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됐다.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매춘부였으며 이들은 소설·연극·회화·사진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주제가 됐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매춘부임을 드러내는 표현은 금기시되던 시기였는데, 이 작품은 매춘부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올랭피아’와 마찬가지로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살롱 전시가 거부되자 이 그림을 수도사의 거리에 전시했는데, 문 앞에 경찰을 세워야 했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매춘부를 예술의 뮤즈로 삼았으면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는 꺼려했고, 살롱 전시는 거부했지만 거리에서는 그림을 보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모순된 당시 지식인들의 행태를 마네는 그림으로 비판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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