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만이 존재하는 생각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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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08.3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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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마네 作 _ ‘발코니’
마네 作, ‘발코니’, 1868.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발코니, 우리에겐 흔히 베란다로 통하는 이곳은 내게 ‘생각의 장소’다. 시끄러운 집안에서 벗어나 혼자 생각할 틈을 주고, 신경 쓸 일이 가득한 집 밖하고는 또 구분되는 중간 지점.

마네는 이 발코니에 서 있거나 집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현대인의 고독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지대의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네가 1869년 살롱에 출품한 ‘발코니’는 발코니에서 유유자적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는 파리 사람들을 그렸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마네와 가까운 지인이다. 맨 앞에 앉아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는 여기서 처음으로 마네의 그림에 등장했고 이후 여러 작품의 모델이 된다.

마네는 1868년에 모리조 자매를 소개받아 절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다. 마네는 보들레르가 시를 바칠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모리조의 검은 눈에 매료되었지만, ‘발코니’ 속 모리조는 공허한 눈빛으로 바깥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후 작품인 ‘휴식’에서도 모리조는 모델이 ‘발코니’에서처럼 흰 드레스를 입고 부채를 든 공허한 얼굴로 그려졌다. 오른쪽에 양산을 들고 있는 여자는 바이올리니스트 파니 클라우스, 가운데 서 있는 남자는 풍경화가 앙투안 기르메, 어두운 실내에 서 있어 잘 알아볼 수 없는 이는 부인 수잔이 마네와 결혼하기 전 낳은 아들인 레옹이다.

고야 作, ‘발코니의 마하’, 1808~1812.

마네는 휴가를 보낸 불로뉴에서 만난 사람들과 고야의 ‘발코니의 마하’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그렸다. 고야의 작풍이 짙게 느껴지지만, 마네는 이 그림을 통해 아카데미의 관습에서 벗어났다.

그림은 어떤 이야기나 일화를 전달하지 않는 데다 전통과 사실성을 벗어나 있었기에 당시 이 작품을 처음 본 관객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도 마찬가지.

난간 뒤의 인물들은 갇힌 듯 보이고 원근법을 쓰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인물의 얼굴보다 꽃을 더 공들여 그리는 등 소재들 간의 전통적 위계도 무시했다. 꿈을 꾸는 듯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모리조의 발치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강아지만이 활기차다.

발코니에 함께 있지만, 각자 다른 곳을 보는 인물들은 당시 이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마네는 이런 심리적 거리감과 모호성을 현대 도시의 특징으로 여겨 이후 ‘뱃놀이’와 ‘화실에서의 오찬’ 등의 작품에서도 마주치지 않는 시선을 통한 심리표현을 계속 시도했다.

문학에 ‘낯설게 하기’라는 표현이 있다. 낯익은 것에서 새로운 측면을 밝혀내 일상과 자기 자신을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기법인데, 마치 남을 보는 것인데도 ‘발코니’를 보면 그림의 네 사람이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져, 마치 내 모습을 타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보는 것만 같다.

마네 作, ‘화실에서의 오찬’, 1868.
마네 作, ‘뱃놀이’,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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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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