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가지 녹색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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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09.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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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모네 作_수련
모네 作, ‘수련’, 1916~1922.
모네 作, ‘수련’, 1916~1922.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주인공이 우연히 1920년대 파리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약혼자와 함께 파리를 찾은 주인공은 모네의 집에 있는 연못에도 가보고, 미술관의 ‘수련’ 연작을 감상하다 해석의 옳고 그름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모네 말년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수련’은 그 규모가 크기로도 유명해 영화 초반에도 존재감을 과시한다. 얼마나 큰지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감상하는 경우도 있다.

인상주의 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모네는 1890년 지베르니에 정착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평생 인상주의만을 고수했던 모네는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에 갇힌 화가로 여겼으나, 1890년대부터 몰두하기 시작한 연작(시리즈)에서 그는 인상주의만큼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남겼다.

그는 정원을 만들면서 새로 판 연못에 수련 등 수생식물과 아이리스를 심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일본식 다리를 세웠으며, 정원 곳곳에 각종 희귀한 꽃을 길렀다. 여섯명의 정원사를 두고도 직접 정원을 가꿀 정도로 모네는 정원에 애착을 가졌고, 이런 열정이 그가 ‘수련’ 연작을 그리는 바탕이 됐다.

모네는 1926년에 타계 시까지 ‘수련’ 연작을 제작했으며, 그 수는 무려 250여점에 달한다. 지인들이 하나둘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가 되면서 연못이 그의 유일한 대화상대가 됐다고 한다.

사시사철 변해가는 빛과 대기에 따른 인상의 변화를 잡아낸 색채에 대한 모네의 관심은 여전했지만, 그는 회화적 공간연구에도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수련’ 연작은 이런 화가의 관심이 반영된 작품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틀들은 색채의 장식적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병인 백내장으로 모네의 시력이 약해져 점차 추상화‧단순화 경향이 두드러지던 시기, 모네는 회화공간 속에서 추상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수평선은 점차 위로 올라가다 완전히 사라지고 수면만 나타나기도 한다. 이 그림에서 모네는 수련과 수면을 그려내면서 두 가지 다른 회화적 기법을 사용했다.

그는 가로로 긴 터치를 사용해 수련을 그렸고, 수면은 수직적인 터치로 그려냈다. 영역이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 수면과 그 위에 떠 있는 수련을 모호하게 구분한다. 물은 더 이상 투명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식물이나 하늘을 반사하지도 않는다.

모네의 그림에서 물은 색을 띠는 대기가 됐고, 흐릿하게 늘어놓은 색들은 이를 따라 떠다니다 하나가 된다. 원근법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수평선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수련이 아닌 수면, 연못 그 자체다.

영화 속 울창한 녹빛을 띠는 스크린 속 실제 연못 역시 아름다웠지만, 실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미지로 그려낸 ‘수련’ 연작 역시 저마다의 녹색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연을 모방한 그림이지만, 그림이 때로는 자연에서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줄 때도 있다.

모네 作, ‘수련’, 1900.
모네 作, ‘수련’, 1900.
모네 作, ‘수련’, 1907.
모네 作, ‘수련’,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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