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각형으로 꿈꾸는 순수예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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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10.0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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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말레비치_절대주의 구성
말레비치 作, ‘절대주의 구성’, 1916.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말레비치, 칸딘스키, 샤갈의 색’ 무대를 눈여겨본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동물 가면을 쓰고 키를 한껏 높인 댄서들과 거꾸로 뒤집어진 채 떠다니는 마을은 샤갈의 작품을 재현한 것이다. 중계방송의 자막으로 말레비치와 칸딘스키의 소개가 나오기는 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형태로 표현하기 쉬운 샤갈의 작품 위주로 만든 무대였다.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소개할 만큼 러시아가 자랑하는 화가지만 말레비치는 나머지 두 명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한 편이다.

말레비치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생으로 가족이 모두 러시아로 이주했다. 미술교육 과정을 마친 후 초기에는 인상파, 야수파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1912년에 파리를 방문한 뒤로는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잭 오브 다이아몬드’라는 단체의 일원으로서 러시아 입체파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1913년에는 ‘절대주의’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기하학 추상형식을 만들었는데, 대상을 극도로 간략화하고 순수한 감정을 절대시한 이 사조는 자연형태 그대로를 묘사하지 않고 기하학적인 색채, 평면, 형태만을 다룬다.

말레비치 作,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 1912.
말레비치 作,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 1912.

그는 기초 기하학적 형체 중에서도 사각형을 가장 순수하다고 여겨 “가장 완벽한 형태는 사각형”이라는 말도 남겼다. 말레비치는 화가가 그리려는 대상에 얽매이는 한 대상 자체가 작품을 짓누른다고 보았기에, 짐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정사각형만 남은 것이다.

1913년에서 1919년까지 그는 흰 바탕 위에 사각형을 주로 그렸다. 제목도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 등 직관적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훗날 미니멀리즘의 효시로도 불린다.

‘절대주의 구성’은 그 절대주의가 꽃을 피운 대표작 중 하나로, 색채와 형태가 다른 사각형들로만 화가의 감정을 표현하려 한 시도가 엿보인다. 얽히고설킨 입자들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역동성이야말로 예술의 극대화라는 것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말레비치는 1920년대에는 샤갈의 초청을 받아 교편을 잡고, 바우하우스에서 칸딘스키를 만나 ‘비구상의 세계’라는 이론서를 출판하는 등 이론 확립과 후학양성에 힘썼다. 하지만 스탈린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그의 미술을 부르주아 미술이라고 탄압하자 그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았다.

1930년에는 키예프에서의 회고전이 폐쇄되고 당국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1935년에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채 가난에 허덕이다 죽음을 맞이했다. 러시아의 대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죽음에는 러시아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말레비치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요소로 이루어진 그림을 발표한 최초의 화가였다. 그는 미술에서 모든 관능과 묘사를 배제하고, 순수하며 지적인 구성 작품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폐막식에 이름이 올라 다시 한번 그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그의 작품이 구체적으로 무대 공연에 오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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