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실린 그리움
바람에 실린 그리움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10.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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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모네_야외에서 인물 그리기 습작 -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모네 作, ‘야외에서 인물그리기 습작 -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1886.
모네 作, ‘야외에서 인물그리기 습작 -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1886.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지난 2014년 5월3일부터 8월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오르세미술관展,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의 포스터를 장식한 그림은 ‘야외에서 인물그리기 습작 -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이다.

보고 있으면 밝고 상쾌한 기분과 행복감까지 느껴지는, 따뜻한 봄과 햇살이 조금씩 따가워지는 여름 그 사이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1880년대에 이르러 모네는 풍경과 어우러져 있는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이 작품은 모네의 그러한 결심 이후 가장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지베르니로 이주한 뒤 그 풍경 속의 인물을 그린 습작으로, ‘야외에서 인물그리기 습작 -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과는 세트를 이루고 있으며 ‘양산을 쓴 여인’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연푸른 하늘과 흰 드레스, 희미하게 채색된 풀밭은 정오의 풍부한 햇볕이 만물을 하얗게 퇴색시킨 순간을 포착한 것만 같다.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은 빛을 등지고 있어 모델 앞면에 그림자가 져 있지만,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은 빛을 향해 서 있어 양산을 쓰고 있는 상체 부분에 그림자가 졌다. 작품의 모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 알리스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수잔이다.

수잔은 카미유가 세상을 떠난 후 모네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했던, 그가 가장 아끼는 모델이었다. 작품 속 수잔의 얼굴은 거의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릿하게 표현돼 있는데, 이러한 표현 방법 덕분에 감상자들은 이를 단순한 인물화가 아닌 배경의 하늘과 언덕에 인물이 동화돼 있는 하나의 풍경화로 느끼게 된다.

모네는 작품 속 3/4이 넘는 부분을 붉은색과 흰색을 섞은 연파랑, 파스텔 톤의 밝은 분홍, 크림빛이 도는 연두색 등으로 표현했다. 이 색들을 미묘하고 섬세하게 배치해 인물과 하늘, 풀밭을 구분했다.

지평선 부분을 살펴보면 모네는 하늘과 구름을 그리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거칠게 붓질했다. 구름에 칠한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린 후, 그 위에 분홍색 물감을 두껍게 칠해 풀잎을 표현한 것. 연한 색으로 칠했지만 구름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이 분홍색 풀잎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동시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마치 빛이 남긴 흔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수잔의 드레스 및 바람에 나부끼는 투명한 베일 또한 하늘과 거의 같은 색으로 칠했지만,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풍부한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배경 위에서 바람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수잔의 모습은 모네의 1875년작 ‘산책’을 떠올리게 한다. ‘산책’의 모델은 죽는 순간에도 남편의 뮤즈였던 첫 번째 부인 카미유로 모네의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담은 그림에 단골로 등장했다.

카미유의 따뜻한 느낌을 가장 많이 닮았던 게 수잔이었던 것일까, 흐릿한 그림 속 얼굴을 보며 그는 어쩌면 카미유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네 作, ‘산책’, 1875.
모네 作, ‘산책’,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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