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보다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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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10.2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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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몬드리안_꽃이 핀 사과나무
몬드리안 作, ‘붉은 나무’, 1908.
몬드리안 作, ‘회색 나무’, 1911.
몬드리안 作, ‘회색 나무’, 1911.
몬드리안 作, ‘꽃이 핀 사과나무’, 1912.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요즈음의 이런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그림이 바로 몬드리안의 ‘꽃이 핀 사과나무’가 아닐까 한다. 꽃이 활짝 핀 사과나무가 어떻게 이 꿉꿉한 날씨에 맞나 싶겠지만, 그림을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몬드리안은 원래 미술 교사였다. 35세에 뒤늦게 본격적인 미술을 시작한 그는 초기에 사실적인 화풍의 풍경화, 정물화를 주로 그리다가 점차 마티스, 피카소 등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큐비즘에 입문했다.

고국 네덜란드에서는 순수 추상운동을, 파리에서는 신조형주의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함으로써 자기만의 특징을 갖게 됐다.

재현적인 회화에서 추상적인 회화로 변해 가는 과정은 나무 연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몬드리안의 나무는 점점 단순화돼 가더니, 마지막 연작은 수평과 수직을 이루는 선만 남았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손이 가는 대로, 즉 자유자재로 그렸다. 몬드리안은 “순수한 조형적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형태를 불변의 형태 요소로, 자연적 색채를 근본적 색채들로 환원시켜야 한다”며 일체의 구상성을 버리고, 수직선과 수평선에 구조의 원리를 두어 원색의 정방형·장방형 배치로 질서와 균형을 구했다.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으로 채우고 수직, 수평선으로 나눈 대표작들의 ‘절제된 구성’은 엄격한 칼뱅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이 크다. 주로 칸딘스키와 비교하면서 칸딘스키는 ‘뜨거운 추상’, 몬드리안은 ‘차가운 추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번째 나무 연작인 ‘꽃이 핀 사과나무’는 수줍게 분홍빛을 띠는 사과꽃의 고유한 색채 대신 무채색에 가까운 흐린 색들로 채워졌으며 간략한 형태와 리듬을 이루는 곡선이 수없이 겹쳐 나뭇가지와 나무를 이룬다.

큐비즘으로 노선을 전환하기 전에 그렸던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이 강했던 풍경의 핵심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사진이 등장하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본질을 꿰뚫고자 한 것이다.

몬드리안의 대표작으로는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이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주로 꼽지만 나무 연작을 거치지 않고는 몬드리안의 추상세계를 전부 이해하기 어렵다.

비구름이 지나간 끝에 비추는 햇살이 더욱 눈부시듯이, 그의 추상화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작이 된 나무 연작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몬드리안 作, ‘나무’, 1913.
몬드리안 作,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1930.
몬드리안 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942~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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