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끄트머리에 찾아온 현란한 스텝
생의 끄트머리에 찾아온 현란한 스텝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11.15 2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몬드리안_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몬드리안 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942~1943,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영화 ‘원스’의 존 카니 감독의 영화 ‘비긴 어게인’이 화제였던 적이 있다. 약 9년전 이던가. 영화 흥행과 함께 ost 음악차트를 죄다 장식했을 정도로 그 여운이 길게 이어졌었다.

이 영화 남자 주인공의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라는 대사에 바로 떠오르는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몬드리안이다.

절제된 세련미를 담고 있는 몬드리안의 작품은 20세기 미술과 건축 및 그래픽디자인, 심지어 패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가 말년엔 대도시의 활기에 흠뻑 취해 춤을 즐겼다는 사실은 그렇게 널리 퍼져 있지 않다.

작품의 화풍처럼 군더더기가 없고 청빈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를 춤추게 한 원동력은 바로 ‘음악’이었다.

1938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불안을 느낀 몬드리안은 파리를 떠나 런던에 잠시 체류하다 뉴욕으로 갔다. 그가 꿈꾸던 신조형주의를 재현한 것만 같은 직각 거리와 마천루가 이루는 장관이 노화가의 눈에 펼쳐졌고, 그는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뉴욕의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음악과 춤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다. 제목인 ‘브로드웨이’는 뉴욕의 중심가고, ‘부기우기’는 당시 유행했던 재즈 음악의 한 종류다.

자유로운 뉴욕의 활기와 미국 음악에 차가운 추상화가도 녹은 것인지 엄격하게 구획을 나누던 검은 구분선은 색채가 다양해지고, 색선의 연속적인 흐름은 작은 사각형의 연속으로 바뀌었다.

이 사각형들은 서로 결합해 다채로운 수직선과 수평선의 율동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으로 몬드리안이 그동안 추구해 왔던 단일 평면과 결별하고 더욱 음악성을 가미한 작품 세계로 파고들었음을 알 수 있다.

칸딘스키 作, ‘노랑, 빨강, 파랑’, 1925.
칸딘스키 作, ‘노랑, 빨강, 파랑’, 1925.

즉 수평·수직·삼원색이라는 기본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욱 복잡하고 경쾌한 리듬과 구조의 풍부함을 담은 것이다. 엄격하고 무거운 구성과 절제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생한 감성과 즐거움을 화면에 표현한 이 작품은 흥겨운 음악을 주제로 삼아 ‘따뜻한 추상화’를 그리던 칸딘스키의 ‘노랑, 빨강, 파랑’과는 같은 색을 쓰면서도 분위기나 기법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비교하며 감상해 볼 만하다.

그는 연합군의 승리를 염원하며 ‘빅토리 부기우기’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1944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재즈 리듬에 맞춰 즐겁게 춤을 추며 화풍에도 변화를 맞이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은 그를 더 기다려주지 않았다.

뉴욕에 오지 않고 계속해서 유럽에 머물렀다면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가 조금만 더 뉴욕에 일찍 왔다면 ‘빅토리 부기우기’는 물론 더 변화무쌍하고 발전된 느낌의 몬드리안을 더 만나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오히려 더없이 환한 색채로 빛난 그였기에 아쉽기만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