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의 공포가 빚은 왜곡
죽음에의 공포가 빚은 왜곡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12.10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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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뭉크_절규
뭉크 作, ‘절규’, 1893.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이모티콘이 널리 쓰이기 전에는 특유의 표정 묘사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이기도 했던 뭉크의 ‘절규’. 뉴스에서는 잦은 도난 사건의 주인공이자 2012년에는 세계 경매 사상 최고가 1300억원(약 1억2000만달러)를 기록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이다.

‘죽음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노르웨이 출신의 에드바르드 뭉크는 6살에 어머니를 결핵으로 잃었다. 이때의 슬픔을 신앙으로 극복하려 했던 아버지는 점점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으며 형제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그의 곁을 떠났다.

가족의 죽음으로 찾아온 공포 때문에 악몽과 환상에 시달리곤 했던 뭉크는 죽음의 미학에 몰입했고, 이는 그의 작품 전체에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깔리게 했다. ‘병실에서의 죽음’이나 ‘지옥에서의 자화상’만 봐도 작품 전반에 깔린 ‘죽음’ 이미지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

건강문제로 기술공부를 접게 된 뭉크는 화가가 되기 위해 예술학교에 들어가는데, 파리에서 처음 인상파를 접했을 때는 밝은 색채의 풍경화와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하지만 이후 화가들의 축제에서 만난 허무주의자 한스 예거와 교류하며 ‘영혼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뭉크의 화풍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 기록한 유년기의 기억, 사랑, 죽음의 모티브는 작품에 반영됐고, 이를 통해 개인전까지 열게 된다.

그의 대표작인 ‘절규’는 소리지르며 절규하는 뭉크 자신의 내면을 그려낸 것으로, 북유럽 특유의 우울함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명작 중 하나다. 뭉크는 ‘절규’를 그리게 된 배경을 같은 주제를 그린 소묘에 글로 덧붙여 놓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쪽에는 도시가 있고 내 발밑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했고 몸이 안 좋았다. 나는 멈춰 서서 피오르드 저쪽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름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마치 내가 절규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 그림을 그렸다. 구름은 진짜 핏빛으로 칠했다. 색깔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것이 ‘생의 프리즈’ 연작 중 ‘절규’라는 그림이 되었다”

‘절규’ 속 그는 유령 같은 모습의 인간이다.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는 공포에 찬 절규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온다.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을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형태를 왜곡했다.

화면 구성은 사선으로 대담하게 처리했으며, 얼굴선의 동적인 처리와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 등으로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 강렬한 효과를 나타낸다. 붉은 구름은 마치 불타고 있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화면을 나타내는 동시에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생전에 ‘절규’만을 변형시킨 작품 수가 50종이 넘는다하니 그가 ‘절규’에 얼마나 많은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뭉크는 보는 이들의 감성을 집요하게 자극하며 회화라는 양식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표현한 화가다. 작품으로 내면을 전달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 역동적인 선 표현 등의 기법을 사용해 본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었다.

뭉크의 작품은 지난 2014년 국내 최초의 뭉크 단독 전시회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가 개최된 바 있다.

뭉크 作, ‘병실에서의 죽음’, 1893.
뭉크 作, ‘지옥에서의 자화상’, 1903.
지난 2014년 국내 최초 뭉크 단독 전시회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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