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를 품은 매혹적인 진주
수수께끼를 품은 매혹적인 진주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3.12.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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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베르메르_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베르메르 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6년경.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를 잘 모른다 해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라고 하면 알 정도로, 소녀의 초상화는 화가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릴 만큼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이 매혹적인 작품에 한 역사소설가는 상상력을 더해 하나의 문학으로 재탄생시켰고, 이 움직임은 영화로도 이어졌다. 영화가 개봉한 건 2004년의 일이며, 소설이 발간된 해는 1994년이다.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보면 꽤 늦은 재조명인 셈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더불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힌다. 평생을 그림 소재를 찾기 위한 여행을 일삼으며 유랑하던 화가들과 달리, 베르메르는 평생을 작은 도시 델프트에서 머무르며 그 하나의 세계를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주제도 한정적이고 작품 수도 적다. 그림들은 완성된 직후에 바로 후원자나 미술 애호가들에게 판매되었기 때문에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볼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그림만이 가진 햇빛과 어우러진 고요한 실내 정경은 지극히 일상적임에도 신비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 속에 흐르는 고요한 일상의 순간을 나타내는 대표작들로는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등이 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그릇에 우유를 담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그려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우유를 따르는 단순한 여인의 동작 하나하나가 엄숙하고 숭고해 보인다.

이는 그림 속 왼쪽에 위치한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의 역할이 크다. 화면을 반으로 나누는 빛은 어둠과 대비돼 긴장감과 엄숙함을 끌어들였으며, 장식 없는 벽과 간소한 빵들이 소박함과 익숙함을 불러일으켜 전체적인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그렇게 상반되는 두 느낌이 하나의 그림에서 어우러지는 것이다.

베르메르 作,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1660~1665년경.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은 노란 비단옷을 한껏 차려입고, 마지막으로 목걸이를 보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설렘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따뜻한 빛은 더욱 그녀를 화사하게 만든다. 사진 속에 그때의 순간을 간직하듯이, 그림 속 여인의 설렘도 그림 안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진주 귀걸이 소녀’는 이렇게 따뜻한, 노란빛이 도는 델프트를 배경으로 한 베르메르의 그림 중 가장 독특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화면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여인이 뒤를 돌아보고 있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 살짝 벌린 붉은 입술. 젖어 빛나는 눈망울. 실제 크기는 작은 데 비해 그 흡인력은 베르메르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

절로 작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화가의 딸일까? 아니면 소설처럼 몰래 예술적 교감을 나누던 하녀일까? 그것도 아니면 의뢰인의 정부? 지금까지도 소녀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소녀를 들여다보고, 각자의 이야기를 그 안에서 찾을 것이다.

만약 네덜란드에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진주 귀고리 소녀가 기다리고 있는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직접 그 동그란 눈을 보면서 무엇을 그렇게 보고 있냐며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싶다.

그림 속 진주 두 알처럼 반짝거리며 빛나는 설렘과 아련함을 품고서….

베르메르 作,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1660년경.
베르메르 作,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16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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