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의 사랑
날것 그대로의 사랑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4.01.26 0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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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브랑쿠시_입맞춤
브랑쿠시 作, ‘입맞춤’, 1912.
브랑쿠시 作, ‘토르소’..
브랑쿠시 作, ‘공간 속의 새’, 1927.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미니멀리즘’은 예술계의 화두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돼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미니멀리즘을 최초로 조각에 구현한 작가가 바로 루마니아 출신의 콘스탄틴 브랑쿠시다.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민속 조각과 현대 조각을 결합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대 미술의 역사가 곧 추상의 역사’라는 명제에서 보더라도 조각가로서 그의 업적은 남다르다.

일찍이 조각은 구상성에 바탕을 둔 장르였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며 제작된 수많은 조각작품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수많은 천재적 화가들이 구상을 벗어난 추상 회화의 세계를 개척했는데, 브랑쿠시는 조각 분야에 추상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다.

어린 시절에 전통 목각을 배웠던 브랑쿠시는 파리 미술학교에서 본격적인 조각수업을 받았다. 이때 근대 조각의 거장인 로댕의 조수로 일하며 그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브랑쿠시는 로댕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 당시엔 흔히 조각가들이 석고상이나 점토상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석공들이 직접 조각하는 방식이 선호됐는데. 브랑쿠시는 재료 그 자체로부터 공감을 얻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러한 성향은 민속 예술과 입체주의 화가의 그림과 아프리카 흑인 원주민의 토속조각에서 받은 영감과 결부되어 ‘입맞춤’, ‘토르소’, ‘물고기’와 같은 기하학적 조각의 밑바탕이 됐다.

브랑쿠시는 평생 ‘두상(頭像)’, ‘새’, ‘기둥’과 같은 몇 개의 공통된 주제를 시리즈로 반복해 제작했다. ‘입맞춤’이란 주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1907년 처음으로 ‘입맞춤’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다가 1937년에 마지막 ‘입맞춤’을 선보였다.

스승과 비교하자면 로댕의 ‘입맞춤’은 사실적인 인체 표현이 돋보이는 구상 조각의 걸작이고, 브랑쿠시의 ‘입맞춤’은 추상성과 구상성을 한 몸에 지닌 새로운 조각 작품이다.

브랑쿠시는 원석의 사각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입을 맞추는 남녀의 형상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간결하게 포착해냈다. 돌의 한가운데는 수직으로 나뉘었고, 서로 부둥켜안은 남녀의 양팔은 수직으로 연결됐다.

단순하게 표현된 눈과 입은 오히려 더 강렬하다. 묵직한 무게감과 딱딱하고 견고한 돌의 재질을 살리면서 선명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브랑쿠시의 작품은 구상 조각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난 2010년 서울, 한가람 미술관의 ‘모네에서 피카소까지’전(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컬렉션 전시)에서 브랑쿠시의 ‘입맞춤’을 봤었다.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돼 있어 주변부를 돌면서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서로 키스를 나누는 두 연인은 남매처럼 퍽 닮았다.

서로 닮아가는 것이 사랑이라 했던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날것의 사랑을 눈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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