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도 좋지 아니한가
소박해도 좋지 아니한가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4.02.0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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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브뢰헬_농가의 결혼식
밀레 作, ‘만종’, 1857~1859.
밀레 作, ‘이삭줍기’, 1857.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주로 ‘농촌’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한 서양화가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건 ‘만종’이나 ‘이삭줍기’를 그린 밀레일 것이다.

하지만 브뢰헬이라는 화가에 대해서 모른다 할지라도 그의 대표작인 ‘눈 속의 사냥꾼’은 계절감을 살린 잡지나 쇼핑백 등에서 많이 마주쳤을 것이며, ‘바벨탑’은 현재까지도 바벨탑을 그리는 모든 그림의 원형이 되고 있다.

거대한 전체 그림 안에서 말 그대로 깨알같이 풍자적인 면을 넣는 것은 보쉬와 비슷하면서도 그가 ‘농부 브뢰헬’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농민의 일상과 농촌풍경을 즐겨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당시 플랑드르 농민들 특유의 에너지와 신랄한 유머, 해학과 기지가 가득하다.

플랑드르란 현재의 벨기에의 한 지방명이지만, 미술사에서 플랑드르 미술이라고 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16세기까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발전한 미술을 가리키며, 17세기 초의 네덜란드 독립 이후엔 벨기에 미술의 대명사로도 쓰이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경도돼 플랑드르만의 특색이 사라져가는 풍조 속에서 전통의 자연주의와 사실정신의 맥락을 지켜온 사람은 브뢰헬 뿐이다.

16세기의 대표적인 플랑드르 화가 피테르 브뢰헬은 서민의 풍속을 잘 표현한 대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얀 반 에이크 이래로 세워진 북유럽의 견고한 전통과 현실의 기반 위에서 ‘풍속화’라는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브뢰헬 作, ‘농가의 결혼식’, 1568.

그 중 ‘농가의 결혼식’은 어느 시골 마을의 즐겁고 흥겨운 결혼식 장면을 묘사했다. 혼례식은 허름한 곡식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창고의 문을 통해 사람들이 드나들고, 자리를 먼저 차지한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에 여념이 없다.

음식으로는 술과 빵, 수프 한 그릇이 전부인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식사지만, 이렇게 보잘것없는 음식에도 백파이프를 든 악사는 시장기가 도는지 연주를 하다 말고 음식 나르는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술병 앞에 천연덕스럽게 앉은 어린아이도 맛있게 그릇을 핥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는 안쪽 탁자 한가운데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신부의 뒤쪽으로는 녹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머리에는 종이 왕관을 쓰고 있다. 발그레한 두 볼과 마주잡은 손이 잔뜩 긴장한 신부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신부를 보듬어줄 신랑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결혼식 저녁까지는 신랑이 신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16세기의 플랑드르 전통 때문이다.

브뢰헬은 종종 농부로 변장을 하고 농촌의 떠들썩한 축제에 참여하곤 하였는데, 가까이에서 관찰한 농촌의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 농부들을 바라보는 화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주로 종교화를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그의 회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그는 인물 중심의 전통적 회화 장르인 역사화나 초상화, 누드화를 그린 적이 없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옷을 입고, 조각같은 몸매가 아닌 현실적인 체중으로 묘사되며, 자연과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 신들처럼 아름답지 않더라도, 고된 노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쁨을 누린다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 진한 ‘인간 내음’ 나는 그림들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니, 이 소박함이 좋지 아니한가?

브뢰헬 作, ‘눈 속의 사냥꾼’, 1565.
브뢰헬 作, ‘바벨탑’,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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