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슬픔도 없다
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슬픔도 없다
  • 백영주 편집위원
  • 승인 2024.02.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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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샤반_가난한 어부
샤반 作, ‘가난한 어부’, 1881.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우리네 인생사에는 희노애락으로 기쁨과 슬픔의 감성이 점철돼 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듯이 영원한 기쁨도 없지만 영원한 슬픔도 없다. 이번 칼럼은 혹시라도 상처받은 모든 이들이 어둡고 좁은 배에서 홀로 기도하는 샤반의 ‘가난한 어부’ 속 어부처럼 담담히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술해 본다.

피에르 퓌뷔 드 샤반은 서양 미술사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미술사가들에게는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그는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벽화가 중 하나로 색채, 기법, 구성에서 근현대미술사의 거장들인 피카소, 마티스, 쇠라, 고갱 등의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독특한 화풍을 지녔다.

그는 젊은 시절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프레스코화에 영감을 받아 유채물감을 사용하면서도 흰색이나 회색을 섞어 오래된 프레스코화 느낌을 냈다. 불투명한 창문에 비친 것처럼 느껴지는 파스텔풍 색조와 명암이 거의 없는 단순한 풍경 등에서 프레스코화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샤반 作, ‘예술과 자연이 한창일 때’, 1890~1895.
샤반 作, ‘예술과 자연이 한창일 때’, 1890~1895.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샤반의 우아하고 유려한 그림은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연물을 대상으로 한 상징적, 낭만주의적 작품으로는 ‘신성한 숲’, ‘예술과 자연이 한창일 때’ 등이 있으며 고갱은 샤반을 스승으로 삼아 그림의 전체 구도나 에덴동산 같은 배경 묘사를 샤반의 이러한 작품에서 많이 차용했다고 한다.

그중 샤반의 또 다른 대표작인 ‘가난한 어부’는 샤반이 이 그림을 1861년에 처음 살롱을 통해 공개했을 때 이 작품은 심한 비판을 받았다. 그때 당시의 관념으로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던, 주제가 굉장히 비현실적인 그림이라 시대의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887년에 화상 뒤랑 퀴엘이 이 작품을 대중에게 다시 공개하기 전까지 팔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현대미술관에 소장하기 위해 처음으로 구입한 샤반의 그림 역시 이 작품이라 하니 놀랍다.

이 그림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바로 감상자들에게 알 수 없는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 속에서도 배 위에 홀로 서서 경건히 기도하는 어부의 모습은 예수를 떠올리게끔 한다.

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곧 끝날 슬픔을 담담히 견뎌내는 모습이 인상 깊다. 땅 위에서 꽃을 따는 소녀와 잠든 듯한 아기의 모습에서는 곧 다가올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

직접적인 내용 서술 없이 그림의 상징만으로 감상자를 감동시키는 상징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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