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봄] 백영주 겔러리봄 대표 =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가상결혼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필두로 가상재혼, 북한 여성과의 가상결혼같이 조금씩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등 세대가 여러 번 바꿔도 ‘결혼’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이혼율이 치솟고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동경하고 꿈꾸는 마음은 여전하기 때문일까, 그런 의미에서 샤갈이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담은 작품은 ‘잉꼬 부부’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난한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샤갈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면서 가끔씩 고향에 오곤 했는데, 여자친구 테아의 집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바로 샤갈의 아내이자 평생의 뮤즈가 된 벨라.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불타올랐다.
샤갈보다 9살 어린 벨라는 보석상의 막내딸로 촉망받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벨라의 부모는 가난한 샤갈과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파리와 베를린에서 전시회를 연 후 둘은 결혼했고, 이듬해에는 딸 이다를 낳았다.
결혼식 열흘 전이었던 샤갈이 생일(7월 7일)의 행복한 풍경을 담은 그림이 바로 ‘생일’이다. 벨라가 그림 앞에 남긴 글에 따르면, 남편의 생일을 기억하고 말을 건네자 샤갈이 기뻐하며 그녀를 ‘색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여 바닥에서 떠오르게 하고, 그 자신도 날아올라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떠다니는 채로 키스했다’고 한다. 샤갈의 날아다니는 멋진 모습(?)에 감격한 벨라가 그림의 제목을 ‘생일’로 지었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날아갈 것같이 기쁘다’고 하지 않는가, 샤갈은 그 감정을 문자 그대로 ‘날아다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러시아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그중에서도 유대인인 샤갈은 늘 감시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암울한 시기에도 그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격려와 사랑 덕분이었다.
흰색 깃의 검은 드레스와 검은 구두는 그녀의 순결하고 깨끗한 영혼을 나타내며, 붉은 바닥과 곳곳에 걸린 화려한 스카프들은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을 현란하게 감싸고 있다. ‘산책’, ‘에펠탑의 신랑 신부’ 등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결혼생활의 행복이 그림 너머에도 전해져 온다.
부부의 기쁨은 평생 이어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벨라는 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남편의 곁을 먼저 떠난다. 샤갈은 깊은 슬픔을 ‘과거에의 경의’에 담는데,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던 슬픔의 색은 이후 점차 다듬어져 그를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게 한, 어둠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색채의 경지에 도달한다.
“평생토록 그녀는 나의 그림이었다”면서 그녀의 마지막까지도 예술로 승화시킨 샤갈. 이렇게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기에, 결혼에 대한 환상과 그 여파는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