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현대문명이 빚고 있는 쇼크
[평설] 현대문명이 빚고 있는 쇼크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0.12.28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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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충돌 현상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화가·행위예술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화가·행위예술가] 첨단과학의 후유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쇼크로 불거진 문제는 전 세계에 낮 설은 이변을 낳으며 충격적인 경고를 암시하는 사태로 불확실성, 공포, 불안, 비대면, 탈 세계화 같은 인식들이 부지불식중에 이미 우리의 마음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여타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수도 최고치를 경신하며 하루 1300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내 확진자수 1000여명 상회는 처음 거리두기 3단계 기준을 넘어서고 있어 3차 위험고비는 더 큰 위기를 맞을 태세다.

‘셧다운(봉쇄조치)’없이 버텨온 K방역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며 백신 확보까지 뒷걸음쳐 구입이 늦어지면서 혼란만 초래하는 등 내년에도 한동안 백신과 함께 코로나19와의 사투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요인 중 가장 큰 이유는 수차례 반복하지만 자연생태계 파괴가 부른 이상기후와 온난화 현상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막연한 상상을 알아차리는 원인과 이유에 접근이 용이하다.

지구촌 인류 문명에 다가온 다양한 변화는 자연이 던지는 불안과 초조의 집단적인 인식과 사고에서 인간들은 이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추구하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이는 지구온난화현상이 불러온 대 지각 변동과 변화는 지구 전체의 각도를 달리 내다봐야하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는바 바로 인간들이 자처한 참상으로 뒤늦은 후회와 자발적 안전을 선택하는 대다수 인간이 갈망하는 선제적인 입장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는 우리 삶의 곳곳에 강조해도 지나치던 혼란한 사태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물론 일상의 인간생활 흐름에서도 낮 설고 막다른 방향으로 예기치 못한 가파른 길을 가고 실정이다.

한마디로 극과 극이 부딪치는 변화들이 발생하는 사태들의 징조는 불길함마저 농후하게 드러나고 있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상현상이 도래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런 현상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무의식적 사고에 머물고 있는 의식을 점령하고 있는 비이상적 자연계의 순리적 결과들은 지구촌의 공생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며 따지고 고민해도 틀림이 없어 머릿속에 그려지는 예견들을 과거의 실상에서 찾아봐도 그렇다.

일찍부터 우리 모두는 선진국을 지향해가며 그들의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가는 산업사회에서 자연주의 방식을 쫒아가며 최대한의 방식을 연구하고 모색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더불어 자연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각자 우리 쪽은 질서와 자연보호를 지켜가며 진행됐다고 말하곤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이미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종의 변백(辨白)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다.

환경오염, 행동오염, 생명오염, 정신오염에 이르러 바야흐로 과학오염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저버린 첨단에 깊이 물들어버린 현재의 결과물들이라 여겨져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 또한 없을 것이다.

이런 소산은 총체를 규정하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발달과 첨단만을 지향했다면 긍정적인 인식에서부터 바라보더라도 아무 혼란과 우려 없이 인간에게 이로운 첨단과학만이 세상에 존재해야 맞다.

인간기계들의 신품종들

그러나 첨단의 기기들을 의지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위협적이고 안전보다는 불안을 안기며 언제 어떠한 현상이 도래할지 모르는 상황들 속에서 선을 넘고 이성을 잃어가며 지구환경 속을 헤매는 인간기계들이 자연을 버린 사막화의 공백은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조건이 생물학적으로 규정되고 인간의 육체가 유전학적인 구성체로 만들어지는 것이 이상적 현상으로 형성돼 있다고 믿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연적인 생명의 탄생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원래 인간 육체를 소(小)우주론으로 보는 경향이 커 질서를 강조하지만 이도 허망한 망상밖에 되지 못하고 있으며 영혼의 신과 세계의 만남과 같은 정신적 가공성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가 앞서 사고의 공백이 커지는 사유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 문명사회에 등장한 가짜인간과 진짜인간상들이 혼재해 나타나고 있는 실상으로 감성적 기능의 판단마저 잃어버린 인간들이 기계화돼 간지 오래돼 갔었다는 본질적인 문제에 부연할 이유가 없어 비판적이라는 견해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적인 우주적 생성원리가 인간체가 아니고 임의로 휴먼적인 가상을 입력한 일정한 형태로 배열된 가공된 물질로 잠정적인 운동체(運動體)에 불과한 기기들일 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인간기계학(로봇)을 굳이 해석하는 차원에서 이를 본다면 인공지능을 입력시켜 탑재한 단순 움직이는 운동물체에 불과한 것으로 반복 생산되는 기계적 양산(量産)으로 과연 환경론적인가를 해부해보면 인간기계학의 신품종이라는 논리 외에 달리 말할 수 없다.

한때 수증기가 괴력을 과시하며 증기기관차가 질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기불빛 네온등이 불야성을 여기저기 굴뚝마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생산하던 철(鐵)들로 컴퓨터와 손전화 등 인간두뇌를 닮은 각종 가전제품 등이 등장하며 앞으로 다가올 혼란을 뒤로하고 환호성을 쳤던 것도 인간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었다.

필자가 수년 전 실연한 지구환경과 인간생명을 주제로 한 행위예술 장면.
필자가 수년 전 실연한 지구환경과 인간생명을 주제로 한 행위예술 장면.

언제인가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인간기계들의 알파고와 소피아를 다뤘던 적이 있다. 2016년 전 세계에 이목을 집중시키며 충격에 휩싸이던 때가 벌써 5년이 지나고 있다.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이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을 탑재한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5전3승으로 이세돌이 연속 3번이나 패했었다.

이후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신의 한 수라 불리는 돌 하나를 던지면서 그나마 대국에서 1승해 인간의 체면을 세웠지만 결국 세기의 대결은 인공지능의 보유자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이러한 광경은 인간기기 AI 승리의 시대를 도래라도 하는 듯 인간과 지구를 정복한 첨단기기의 개발과 동시에 인간을 뛰어넘는 성취에 충격적인 역사를 창조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하며 장담했다.

바로 이것이 첨단과학이 낳고 있는 함정이라고 보는 것이 필자의 유감이다.

태권브이 로봇처럼 인간에게 해악을 주는 나쁜 악당들을 물리쳐 아이들에게 최고의 우상이 되었던 것처럼 나약한 인간들을 위해 무엇인가 이로운 역할을 하는 인간기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덜거나 말동무에 그치지 말고 위험에 무릅쓰는 인간기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인간한계를 정복하고 지능을 넘어섰다고 떠들어 댄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생각해보자! 지금 천재 바둑기사를 이긴 알파고가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표정을 짓고 대화를 나눈다는 소피아가 위기에 봉착한 인간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결국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불과하다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용이한 기능을 맡고 있는 기기들도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화재 시 인간을 대신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로봇이랄지, 군용으로 테러를 제압하기 위해 투입되는 중무장한 기기랄지 병원에서 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의료기기랄지 다양한 곳에서 쓰임의 역할을 다하는 첨병들도 과학기술의 발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인간생명을 대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기라는 것에는 의문이고 지구환경복원이나 자연생태계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문명의 첨단기기들은 왜 없느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인간들은 바야흐로 세계를 정복하는냥 천하를 얻은 것처럼, 부를 걷어 들이는 상징인냥 목소리를 높이며 모든 영광과 행복의 안락한 삶을 추구한 시대인 줄 착각하고 있어 문제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들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무엇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면 물질의 새로움은 정신의 새로움을 막는 물질적인 기기들로서 과학의 힘이 인간정신의 힘을 억압했고 모든 것들이 인간정복만을 위해 존재했다는 것 외에 무엇이 자랑스러운 것이냐는 거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역사가 자랑하는 문명은 물질의 풍요 뒤에 인간의 빈곤이라는 불구(不具)라는 정신적 비토에서 인간에게 불행을 안기었고 인간정신의 장애를 만들어 낸 것뿐 무엇이 미래적이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비약한다면 솔직히 현대문명은 정신의 공업화, 사고(思考)의 산업화로 자연의 황폐화, 지식인들의 저급화로 기형문화를 탄생하게 했고 저출산과 고령화, 지구의 온난화 및 사막화로 이어진 모든 문제까지 지구환경의 위험한 길만을 이어지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전인간학과 과학인간의 비현실화

이러한 이면 뒤엔 유전적인 인간학과 과학의 정신론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게 돼 이것이 지성의 휴머니즘이며 생명을 전제로 하는 생명공학임을 추켜세우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나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재한 난관에서 우리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 모두를 현실 속으로 묶어 놓고 있다는데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황금물질이 만들어 낸 황금색 벽이 인간을 가두면서 차디찬 물질의 온도가 인간의 체온을 대신하고 있는 의미에서 적지 않은 파장과 오류를 발생시키고 있어 불가피하게 아름다운 언어까지 종식시키며 인간의 역사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은 인간기록이 아니고 인간창조의 기술이다. 더불어 인간진화론에 후예가 아니고 창조론의 후예라는 애기이며 현미경 속의 인간이 아니라 우주 안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을 현미경 실험 속에서 미세한 분석으로 과학의 조건과 희망의 적응에 귀속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말 그대로 자연은 과학이 추구하는 인간을 위한 진실한 자세와 미래를 예견하는 견인차 역할을 자임했어야 하며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사실에 관한 신중한 의식에서만 실현이 이뤄져야 했고 확신이 있을 때만 추진력에 동력이 실려야 했다.

한때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지성인들의 신뢰와 관심은 지대해 그 수많은 발견과 개발은 지구표면의 전반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지름길이었고 과학으로 인한 다양한 곳에 발전을 추구하려는 노력 또한 성과를 이뤘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인격 전체가 과학의 전진에 휘말려 이상세계를 꿈꾸며 보다 나은 삶의 본질적 의미에서 환상을 보였고 인간에게 강력하고 신기한 신르네상스의 상상이 현실이라며 어필을 행사하고 주장한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잠시 멈칫해져 보면 과학은 어디까지나 과학으로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자연과학적 존재는 유전학에 의해 일정한 배열형태에서 물질의 잠정적인 운동구성체이다. 이런 인간세계에서는 과학도 복제도 인위적인 것은 이야기할 거리가 못 된다는 말이다.

체내 깊숙이 자리한 우주의 숨결도 없고 심장이 뛰는 맥박의 발자국 소리나 지금처럼 지구에 상처가 나도 아픔의 고통을 토로하는 소리를 동반하는 천체의 움직임도 없으며 우주를 잉태하는 육체도 아닌 다만 과학의 기판에 배열된 회로대로 구성한 한시적인 물질과 기계에 한정된 운동체에 불과하다.

그래서 내부에 꿈이 흐를 수도 없으며 욕구충족의 본능도 없으며 무의식의 정신세계도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다.

원래 욕구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의 표시이며, 잠재능력의 발동이며 이에 따르는 경탄할만한 정신의 부분, 이를테면 무의식의 성좌가 빛나는 정신작용으로 이어지는 감정과 감상의 마중이며 속삭임으로 여타 다른 생명체도 존재한다고 증언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위기가 기회다

어느 해 보다 다사다난했던 힘겹고, 어둡고, 우울한 한 해를 보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노라면 무수한 사건 사고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우리들의 면목을 잃게 하고 있다.

정치를 비롯해 법률, 사회 자연, 과학, 지구, 바이러스 등 어느 곳 하나 온전치 못한 한해였다. 그중 가장 큰 이슈는 올해 초 발발해 지구촌을 뒤집어 놓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일 것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 멸종을 피하려거든 세기가 바뀌기 전 지구를 떠나라”라는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기후변화를 염두에 두고 이른 말이다.

인류 역사를 뒤돌아볼 때 문명을 붕괴시킨 수많은 대국은 기후조건의 정도에 따라 흥하기도 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그때의 사태로 지금보다도 비교조차 안 될 때의 일임에도 지구 밖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우리 인간들은 너무 많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는 중이라고 성토하는 이가 많다. 가장 큰 당면과제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메시아처럼 지구의 위기론과 지속가능해야 할 인간생명의 위기 또 삶의 터전인 지구촌이 과제들일 것이다

‘시작이 반이고, 위기가 기회이며, 늦을수록 빠르다’라는 격언은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따라서 첨단과학은 과연 무엇을 위해 발전해야 하는지 모두는 심사숙고하고 숙연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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