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앞선 화가, 현대보다 더 현대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던 화가
시대에 앞선 화가, 현대보다 더 현대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던 화가
  • 백영주
  • 승인 2023.05.06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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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화가들의 수다] 알브레히트 뒤러

[대전=뉴스봄] 백영주 갤러리봄 대표 = 현대미술에 있어서 화가의 이데아(생각)는 사실상 자의식의 표현이자 작품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모방해 표현하는 기술자의 의미로만 생각했던 시대에 자의식과 정신을 표현하는 것은 철학과 종교, 아카데미의 권력 등에 밀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품에 있어 화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본적으로 자화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을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기술공으로만 여겼던 중세의 관점에서 보면 자화상으로 자의식을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화가들은 물론이며 르네상스 이후 많은 화가들은 자신의 자화상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표현해왔다. 대중들에게 유명한 고흐의 자화상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고흐의 내면을 스스로 자른 귀를 수건으로 가리고 그린 것으로 표현됐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은 기본적인 수업으로 간주되고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대의 분위기나 사조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는지는 과거 역사를 보면 조금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시대의 규율이나 풍습이 지금시대에 통용된다고 한다면 이질감뿐만 아니라 아예 시행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화가가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중세시대, 그리고 그 이전시대에는 자화상에 대한 개념이나 욕구에 대해서도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作,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목판에 유채, 67×48, 뮌헨 알테 피나크텍 소장.

여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신성하리만큼 강하게 표현한 르네상스시대 독일 출생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뒤러는 독일의 화가로 판화가이자 철학과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미술이론가이기도 하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가 가졌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업적은 지금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그가 르네상스 회화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전의 신 중심사회였던 중세의 분위기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을 회화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작품 ‘아담과 이브’에서도 신의 금기를 깬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가진 모습이 아니라 온화하고 평화로운 포즈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아담과 이브의 모델을 인간으로 해 9등신의 완벽한 고전적인 균형미를 추구하지 않고 인간과 닮아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이전의 신 중심사회에서 벗어나 근간을 인간에게 두는 르네상스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뒤러는 미술에 대한 열정을 시대의 흐름과 앞선 의식으로 표현했으며 더욱 발전해 화가의 자의식을 확연히 드러내는 자화상을 그려 자신의 입지와 신념을 확고히 했다.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에서 화가의 나르시시즘의 표현을 살펴볼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주관적 태도로 외부세계를 주관화하고 내재화시키면서 이상화된 자아를 탄생시킨다. 개개인의 활동영역이 폭넓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고 의사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워진 현대에서는 자연스러운 화두지만,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의 싹이 트는 시대에 나르시시즘의 화두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상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뒤러의 자화상은 당시 미술계에서 많은 주목과 한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어떤 사상이나 미술 흐름에서 아방가르드하다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고 기존의 관념을 깨고 발전해 나가는 촉매로써 작용하기 마련인 것이다.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을 살펴보면 뒤러는 그림에서 모피를 덧댄 갈색코트를 입었고, 귀족을 짐작케 하는 잘 다듬어진 머리모양과 수염을 하고 있다. 그는 당시 성공한 화가로 부유했고 모피는 그의 환경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또한 화면 정면에 얼굴을 배치하고 완벽하게 좌우 대칭하는 방식으로 이는 그리스도 초상화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화법으로 뒤러는 무엇을 의도했던 것일까.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표현한 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완벽한 균형과 조화의 이론에 의해서 구성된 초상화는 예술가의 천재적 창조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가의 천재성을 자부하기보다는 종교적 신념의 하나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뒤러가 신의 아들인 인간의 모습 또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후자의 견해 또한 신의 아들이라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화가의 나르시시즘이 바탕이 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다가 그 자의식이 싹트던 르네상스 시대에 대담하게 그리스도의 초상화법으로 자신을 표현한 뒤러의 태도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담한 자기 어필이 아니던가.

이러한 그의 태도의 현대의 관점에서도 뒤처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뒤러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는 자신만의 아우라를 몸소 그가 실천적으로 행했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으로 뒤러는 그림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만큼이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화가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이 지금까지 뒤러를 기억하는 이유일 것이다. 실재로 미술에 쏟았던 열정과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는 그의 자화상에 감동을 더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作, ‘아담과 이브’, 1507년, 목판에 유채. 아담 209×83, 이브 209×81,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우리는 과연 자신이 내세운 자존심이나 자신감만큼 노력하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알브레히트 뒤러를 다시 짚어보며 그가 대담히 표현한 모습에 놀라지만, 사실 그가 이뤄놓은 의심할 수 없는 업적과 천재성에 다시 한번 놀란다.

현대의 유명한 문학 작가 알랭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은 내세운 것과 이룬 것 사이의 비례 관계가 곧 자존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내세운 것만큼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것이 불안감이며, 불안하지 않기 위해 두 가지 행위에 대한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뒤러의 자화상에서 겸허하게 보이는 화가 자신의 눈빛을 보라. 흔들림이 없는 자신감에 찾지만 자만심이 아닌, 신의 모습을 띄는 듯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뒤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선도한 화가 뒤러. 그는 현대인보다 어쩌면 더 현대적이다. 그러기에 그의 자화상은 지금까지 보편성을 가지고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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