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변인 행동의 이중성과 다양성
[칼럼] 주변인 행동의 이중성과 다양성
  • 류환
  • 승인 2020.05.04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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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호니’가 넌지시 교훈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뉴스봄=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세상이 분분하고, 자연이 어지럽고, 사람들은 야속하고, 모든 게 우울하다. 돌아가는 지구촌 도처에 비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들리는 모든 소리가 다급한 경적을 울리는 듯 불안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니는 사람들마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마다 환한 웃음이 사라지고 우울한 표정들만 가득하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한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간이 가차 없이 흔들리고 인공AI가 범람한다. 이것이 최첨단 4차산업의 지름길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사이 우리 인간들의 서정과 사랑, 이해와 나눔이 사라지고 나만 있고 너는 없는 소용돌이로 팽배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체감이자 말하지 않는 하소연이고 아우성의 속내다. 물론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지구환경 이야기나 정치이야기는 더욱이 아니다.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환경보존과 진저리나는 정치이야기도 더이상 모두는 냉소적이어서 지금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이웃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최소한의 담소 정도라도 훈훈해지고 싶은 심정으로 여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더라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동정의 눈빛들이 선하게 드러나 보인다. 혼자만 그러할까?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풍토 중 하나는 하도 써먹은 이야기의 하나로 물질만능이 가져오는 탈 인간중심의 개인주의로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고 자본(돈)만이 최우선 시 되고 있다는 건 이젠 아주 오래된 애기다.

다원주의를 꿈꾸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기주의가 부르는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가치관 상실로 불행한 사람들이 늘고 있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명해 회피할 수 없으며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도 감출 수 없는 분명한 짓이다.

사회의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무지에서 오는 성인지 감수성이나 스토커, 살인범, 학대, 흉악범, 마약 등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충격적인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확대되고 있어 주변을 놀라게 해 심각성이 확연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가리켜 생각하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 누가 애기했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긍정적인 것을 수긍하고 실천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버려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투쟁하는 인간이라 해야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사람들 사는 게 예전모습과 달라졌고 점점 다른 방법과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이렇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기보다 이용의 가치로 삼다가 차후에 적대적인 대상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의 징후가 나타나 적재되기 때문이다.

왜 이지경이 되어가고 있을까?

인간들은 그 마음속에 있는 핵심감정이 있다고 한다. 마치 과일의 속에 씨가 들어있는 것과 같이 누구나, 그래서 이를 가리켜 정신분석에서는 붉은 실(red thread)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간의 핵심감정 중심역동은 다른 건강한 감정 속에 파묻힌 한 올의 붉은 실처럼 언제 어디서나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인간의 감정 전체를 지배하기도 한다. 다급해지면 현상이 심화되는 인간의 핵심감정, 중심역동은 사랑과 미움, 곧 의존심과 적개심으로 나타난다.

‘붉은 글씨의 비밀’ 저자 ‘도난 코일’은 책에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친구인 퇴역 군의관 ‘왓슨’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무색의 실타래 속에 파묻혀 감겨있는 살인의 붉은 실오라기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그것을 풀고 따로 떼놓아야 비로써 모두 다 인간의 심성을 드러내놓게 되는 것이다” 라고 지적한다.

독일의 정신분석자 ‘카렌 호니’(k homey)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크게 인간 지향적 행동과 인간 대항적 행동으로 구분된다고 밝힌다.

“인간 지향적 행동에는 의존성, 이타성, 양육, 동조 등의 행동이 포함되는 반면 인간 대항적 행동에는 공격성, 지배성, 압도성 등 경쟁과 같은 행동이 포한된다고 한다. 갈등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 대항적 행동은 인간 지향적 행동보다 갈등 요소를 더 포함하고 인간관계에서 남을 지배하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인간들의 심리중 하나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주 선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매우 비정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도 양면적인 것이 있다고 내다본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도와주려고 모든 행위 및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려는 친사회적 행동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반사회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친사회적 행동으로 도움행동과 이타적 행동을 들 수 있고, 반사회적 행동으로 공격성을 들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격행동도 사회적 규범을 기준으로 반사회적 공격행동, 친사회적 공격행동, 그리고 허용된 공격행동으로 나뉘며 반사회적 공격행동은 폭행, 살인, 강간 등과 같이 사회규범을 위반한 행동을 말할 수 있다.

친사회적인 공격행동은 인질범과 흉악범을 체포하는 행위, 불법시위를 해산시키는 행위, 법률에 따른 집행 행위와 같이 사회규범에 대한 행위 등이다.

류환 시인·예술평론가·행위예술가.

친사회적이라 해서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나치정권의 유태인 학살, 독재정권의 인권탄압 등과 같은 공격행위도 정부의 공식명령에 따른 친사회적 공격행동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자제력 없는 권력은 자제력 없는 일반인만큼이나 위험하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질주하는 모습과도 닮아있어 위험하기 그지없다. ‘카렌 호니’가 넌지시 교훈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권이 무너지고, 예의나 도덕이 타락하고, 존중과 사랑의 가치가 상실되고,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우리들의 가슴엔 무엇이 양면성을 드리우고 있으며 또 사회적 행동으로 어떠해야 신세계로 가는 바른 길인가?

또 반사회적 행동으로 거꾸로 디스토피아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물음에 침침하게 불빛이 보이지 않는 길목에서 사회통념상 그나마 희미하지만 용인되는 우리 모두는 다 같이 행복의 길을 모색하는 존중과 배려, 이해와 소통이 우선시 돼야 할 때가 아닌가 희원(希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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