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월은 왜 ‘호국보훈의 달’인가
[시론] 6월은 왜 ‘호국보훈의 달’인가
  • 류환 전문기자
  • 승인 2021.06.14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훈의 달’ 의미를 되새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의 명칭은 1985년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대전=뉴스봄] 류환 전문기자 = 달력이 넘어가고 숫자가 바뀌기 무섭게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불려 익히 알고 있다.

12개월 동안 많은 기념일과 공휴일 중 6월은 정부가 지정해 기억하고 상기해야 하는 날이 특별히 모여있다.

국난극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조국 사랑에 대한 애국심과 유공의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이유는 막상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지만 다수는 왜? 생겨났는지 무슨 날들이 있어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호국보훈의 달’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 공로를 보답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6월이 ‘호국보훈의 달’로 언제부터 어떻게 불리게 되었는지 의미와 이유를 되새겨본다.

‘호국보훈의 달’ 제정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명칭으로 정해져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을 되새기며 예우하기 위해 1961년 도에 설립된 군사원호청(1962년 원호처 승격)이 1985년 국가보훈처로 개칭되면 6월이 ‘호국의 달’로 지정돼 이어지고 있다.

당시 6·25전쟁에서 희생된 분들과 상이군인을 돕기 위해 ‘군경원호강조기간’이 6월로 정해졌으며 원호처 설립 이후 국가유공자를 위한 본격적인 지원사업이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추모의 기간(6월1일~10일)’, ‘감사의 기간(6월11일~20일)’, ‘화합과 단결(21일~30일)’으로 나눠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보훈행사를 개최해 이어지고 있다.

잊지 못할 ‘6월의 그 날들’

6월이 호국의 달로 지정된 것은 우리나라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날들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현충일과 6·25전쟁, 제2연평해전은 물론 의병의 날까지 포함해 함께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6월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이날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의 독립군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항한 의병의 정신을 기념하는 날이다.

2010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날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병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붉은 옷을 입고 왜구와 맞서 싸운 ‘곽재우 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

6월1일이 ‘의병의 날’로 지정된 것도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인 음력 4월22일(양력 6월1일)에서 유래됐다.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영면하고 있는 호국 영웅들, 푸른 신록 속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영면하고 있는 호국 영웅들, 푸른 신록 속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6월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장병들과 순국선열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날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과 아픔을 겪어왔다.

그리고 휴전 이후 1956년 국가의 존립과 국난의 극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충일이 지정됐다.

현재 현충일에는 조기를 게양하며 6·25전쟁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6월25일’은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이 남북 군사분계선인 3·8선 전역을 불법으로 남침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당시 한국군과 유엔을 포함해 77만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되고 이 전쟁으로 인한 이재민이 1000만여 명이 넘을 정도로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컸다.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준전시) 상태이며 6월25일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날로 상기되고 있다.

2002년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포격으로부터 서해를 수호하기 위해 벌어진 해전이 바로 제2연평해전이다.

당시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 선재 기습포격을 한 북한 경비정을 상대로 우리 해군은 약 30분 간격의 치열한 교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제2연평해전의 영웅들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돼 있으며 이들의 활약은 2015년 영화 ‘연평해전’으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방위산업과 자주국방

오랜 세월 침략과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주국방

(Self-defence)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주국방은 우리나라의 국방태세를 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성을 갖고 실시하는 것을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분단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간단치 않다.

따라서 현재의 복잡한 국제정치 상황에서는 자주국방의 배경에 전반적인 국방력, 군사력은 필수 불가결로 이뤄져 진행되고 있다.

1970년대 국방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우리나라는 한국형 신무기들의 꾸준한 개발과 군 전력증강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최상에 이르렀다.

특히 국내에서 개발이 완료된 신무기들은 세계 최고의 무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군사 시장 진출에 앞장서고 있다.

6·25전쟁 당시만 해도 북한군에 열세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세계 정상급 방위체계를 선두 하며 나아가고 있는 상태까지 도달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우리 민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희생과 고통으로 지켜온 이들에게 오롯이 고개 숙여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의미를 부여하는 달이다.

우리의 현재가 오늘에 있기까지 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국토방위와 자주국방의 의의를 잊지 말고 아로새겨 국가를 위한 안보와 자주 평화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